토박이 민자와 영남출신 평민 싸움 정치혐오가 변수
  • 영광 함평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0.11.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광ㆍ함평 보선 2강2약… 평민은 현지반응 떨떠름해 고심

‘농사꾼’魯金盧 후보 농정 질타하며 바람 일으키려 안감힘

  겨우 9만5천여표의 향방을 놓고 정치권이 심판을 받는다.  11월9일의 영광ㆍ함평 보선은 빈 의석 한자리를 메우는 단순한 보궐선거차원을 넘어서 민자당과 평민당을 심판하는 일종의 ‘심판선거’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이다.

  현지 주민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그러나 일관성이 있다.  어느 누구도 쏙마음에 드는 후보 또는 黨이 없다는 점에 거개의 의견이 일치한다.  민자당은 ‘농민에 등돌린’당으로 따돌림당한 상태이고, 평민당 역시 영남인사 공천에 대한 현지의 떨떠름한 반응에 부딪혀 내심 당혹해 하고 있다.

  농민후보를 표방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魯金盧 후보(42)가 그나마 특정당의 정치색에 대한 유권자들의 공격에서 벗어나 있고, 그 점이 바로 노후보의 출마동기 중 하나이긴 하지만 엄밀하게 따져볼 때 민자·평민당의 대안으로 선뜻 손꼽힐 만큼 강한 흡인력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상태다.

 

평민당선 “현상유지만 해도 성공작”

선거전 양상은 한마디로 2强2弱이다.  민자당 曺淇相 후보와 평민당 李壽仁 후보가 여야의 대표주자로 현지 여론을 양분하고, 무소속의 노후보와 金起秀 후보가 자금동원에 애를 먹는 등 악조건 속에서 분투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 가장 신경을 쓰는 진영은 물론 평민당이다.  호남인사나 해당지역 출신이 아닌 경북 칠곡 출신의 李壽仁 교수(영남대)를 공천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평민당은 ‘안방’이나 다름없는 지역의 선거에서 김대중 총재의 표현대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현지 유권자들이 김총재의 영남인사 공천을 예상밖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함평읍 기각리의 朴實洙씨(45ㆍ사업)는 강한 반발을 보이는 축에 든다.  박씨는 “서경원씨가 공천되었을 때 사람은 안보고 黨 보고 찍었다.  이번엔 또 경북사람을 데려다 놓았다.  우리를 뭘로 보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우리를 핫바지저고리 취급하는 것 아니냐’고 목청을 돋운다.

영광읍 유권자인 최차주씨(39 ㆍ운수업)는 “지역발전을 바라는 사람은 여당인 민자당을 선호하고, 대체적인 분위기는 평민당 우세”라고 두 당을 저울질하면서 “이수인씨는 인물이 아니고 黨”이라고 평가한다.  이후보가 우세하다기보다는 평민당이 우세하다는 말이다.

이번 선거를‘총력전’으로 규정해서일까, 평민당은 당 소속 전의원 및 당직자들을 영광ㆍ함평 2개군의 20개 읍면에 투입해 마치 중앙당을 현지에 그대로 옮겨다놓은 듯한 열띤 분위기다.  13개 총선에서 서경원 전의원이 얻은 6만4천여표(74.8% 득표율) 이상 득표가 목표선이다.  그러나 선거대책기구 선발대로 지난 24일 현지에 내려온 고위당직자 ㅇ씨가 파악하기로는 “압도적으로 당선되어야 한다는 중앙당 차원의 주문이 있었는데 현지에 내려와보니 배부른 소리라는 것을 알겠다.  한표라도 많이 얻어 당선이나 됐으면 좋겠다”정도에 그친다.  ‘엄살’이라고 보기는 힘든 것이, 선거운동원들의 태도 하나 하나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홍보담당으로 현지에 온 趙洪奎 의원도 “정치 이슈를 들고나와 섣불리 욕심을 부려서는 안된다.  유권자들도 알 만한 것은 다 알고 있다.  그들의 정치권 불신감정을 자극하지 않고 현상유지만 해도 성공작이다”라고 조심스러운 자세를 보였다.

지난 26일 평민당 이수인 후보는‘평민당 사람’이 된 후로 처음 현지에 내려와 지구당 당직자와 읍면동책 등 당원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영남인을 공천했다는 평민당의 설명대로라면 이후보와 현지 당원들과의‘상봉’자리는 웃음이 없을 수 없는 자리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정은 전혀 딴판이었다.

평민당 선거대책기구의 총사령탑인 위원장자격으로 나흘 전부터 현지에 미리 내려와 있던 李龍熙 부총재는 이후보를 대동하고 단상에 서서 당원들에게 ‘사죄의 말씀’을 두번씩이나 거듭했다.  “이번 보선에서는 지역구민 여러분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해 후보를 내겠다던 당초 약속을 못지켰다.  죄송하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부총재는 또 “이후보는 죄없다.  죄가 있다면 나와 평민당, 김총재에게 있을 뿐이다.  이후보는 징발당했을 뿐이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김총재가 내려와 이후보 손 한번 잡아주면 당선은 틀림없을 것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당원들의 선전을 당부하기도 했다.

평민당이 이수인씨를 후보로 내놓고 겉으로는 짐짓 태연한 척하지만 내심으로는 바짝 긴장해 있다는 사실을 읽게 하는 상징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부총재는 김총재의 영남 인사 공천을 “김총재만이 둘 수 있는 手”라고 평하고 있다.  차기대권 도전을 위해 김총재가 선결해야 할 최대과제는 지역성 탈피로 보인다.  이번 보선이 비호남권, 특히 영남지역에 대한 교두보확보 차원으로 풀이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보는 보선에서 당선될 경우 14대 총선에서는 출신지역인 경북 칠곡에서 평민당 후보로 나오기로 당 지도부와 사전 묵계가 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정치일정대로라면 다음 대통령 선거는 2년2개월 후에 닥친다.  김총재가 그 안에 지역문제를 말끔히 해결하거나 영남쪽에 광범위한 지역기반을 다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영남출신을 호남에서 당선시킨다 해서 지역감정이 해소된다고 보기도 힘들다.  이 점은 현지 주민의 반응에서도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김총재로서는 영남인사를 후보로 내세움으로써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과시할 필요가 있을 성싶다.

평민당의 영남인사 공천이 지역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역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고, ‘호남=김대중’이라는 도식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뿐이라는 지적도 이런 배경과 분석에서 나온다.

 

노후보 진영에선 내놓고 김총재 공격

노후보를 지지하는 민중당(가칭)의 張琪杓 정책위의장은 여론탐색차 현지에 내려와 “평민당은 이미 이번 보선의 결과를 얻은 셈”이라며 평민당 金台植 대변인의 발표내용을 예로 들었다. “김대변인은 평민당이 이수인 교수를 공천하자 현지 주민들의 반발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김총재가 내려가면 무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말 한마디로 평민당은 이번 선거의 성격을 규정지었다.  즉 지역감정이 확고하다는 것과 김총재의 위상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장의장은 또 김총재가 이수인 교수를 공천했다는 것은 야권통합의 종결을 뜻한다고 지적한다.  “평민당이 야권통합에 진정한 뜻이 있었다면 후보를 내지 않은 채 민주당으로 하여금 후보를 공천하게 해서 그 후보를 지지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역의 대표임을 강조하며 농민이익을 대변하겠다는 노금노 후보 진영은 아예 내놓고 평민당과 김총재를 공격한다.  노후보는 “이 지역 유관자의 80%가 농민이다.  후보선택권은 선거구민에게 있다.  김총재는 그 권리마저 앗아갔다.  한심한 직태다”라고 김총재를 질타한다.  또 그는 “농민에게는 지역감정 같은 것이 없다.  생존권 수호가 당면과제다.  이 지역 주민들이 농민후보에게 던지는 표는 개인이 아니라 8백만 농민에게 주는 표다.  농민은 있어도 농민대표는 없다는 소리가 이제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고 자신감을 보인다.

노금노 후보는 그 자신이 논 2천여평과 밭4백여평의 농사를 짓고 있는 농사꾼이다.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를 돌며 농촌문제에 관한 모임이라면 거의 빠짐없이 모습을 나타내 농민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적어도 1년에 1백여회의 세미나에 참석하며 지금까지 모두 1천5백여회의 강연기록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 보선 참여를 ‘선거투쟁’이라고 명명한다.  선거를 통해 농민운동의 대중적인 힘을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여야를 막론한 현 제도정치권의 農政부재는 노후보가 겨냥하는 최대의 ‘먹이’가 되고 있다.  노후보는 민자당이나 평민당에서 농민후보인 자신의 역량을 과소평가하는 것에 대해 “건방진 자신감”이라고 역공격한다.  “기존 정치인들이 농민을 전혀 잘못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1인당 쌀 한가마니씩 내기 운동’은 노후보 진영이 개발해낸 선거자금 모금 아이디어이고, ‘추천은 곧 득표’라는 전략하에 2만명 서명을 추진하고 있다.

노후보 진영에서는 “지역감정을 해소하겠다면서 어째서 경상도에서는 평민당 후보를 한명도 내지 못하느냐” “호남인이 김총재 사조직이냐” “농민은 죽어가는데 단식이 다 뭐냐” “결국 민자당과 타협하려는 것 아니냐”는 등 평민당과 김총재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토로하면서, 농민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계기로 삼는다는 데 이번 보선 참여의 의의를 들고 있다.

함평농민회의 千南秀(30)씨는 “평민당이 진정으로 농민입장에 선다면 따로 후보를 내지 말고 이 지역 출신의 농민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며 “농민후보의 승리는 전체 농민에게 자신감을 줄 것이고, 지더라도 농민의 목소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아무튼 노후보의 출마는 평민당에‘위협’적인 요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견제대상이 되고 있다.  선거자금 동원력이나 조직력에서 노후보가 평민당에 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노후보가 농민대표 자격으로 출마했다는 사실과 노후보측에서 내세우는 구호들은 나무 위에 오른 평민당을 밑에서 흔들어대는 격이기 때문이다.

함평 농민회원인 鄭奉熙(31)씨는 “다른 대안이 없어 마지못해 평민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노후보의 출마로 선택의 여지를 찾게 되었다.  만약 노후보가 나오지 않았다면 차라리 기권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말하는 유권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면서 노후보측의 선거전략을 ‘두더지 작전’이라고 귀띔했다.  농번기에 선거를 치르는 탓에 모임을 자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주로 밤을 이용해 개인별로 유권자를 접촉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자 조후보 “이번엔 영광사람을”

가장 먼저 후보등록을 마친 데 이어 분주하면서도 차분한 발걸음을 보여온 민자당 조기상 후보측은 ‘영광군의 영광’을 내세워 표밭을 다지고 있다.  이번에는 영광군에서 국회의원을 내자는 것이다.  서경원 전의원의 방북사건이 터진 직후부터 칠산지구 종합개발계획을 제시하는 등 지역구 표관리에 힘을 써온 조기상 후보측의 姜種晩 조직부장(39)은 “13대 총선 때와는 아주 딴판으로 대다수 유권자가 입을 다물고 있다.  이 함구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면서 조후보의 ‘조용한 변혁’을 눈여겨보라고 강조한다.

영광 11개 읍면과 함평 9개 읍면의 수치 비교가 상징하듯, 영광군의 군세는 함평보다 다소 앞서 있으나, 국회의원은 줄곧 함평에서 나왔다.  평민당 辛基夏ㆍ鄭祥容ㆍ梁性右 의원 등이 모두 함평 출신이며, 영광ㆍ함평 지역구 선거에서도 서경원 전의원 등 함평출신이 당선됐다.

평민당에 공천신청을 냈다가 탈락되자 무소속으로 출마한 金起秀(49)씨 역시 지역대표성을 주무기로 삼고 있다.  그는 김대중 총재가 단식에 돌입하자 삭발로 김총재의 단식을 지지할 만큼 확고부동한‘평민당 사람’이었다.  “처녀가 순결을 지키듯이 김대중 노선을 지켜온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한 김후보는 그러나 현재는 김총재의 ‘품안’에서 뛰쳐나와 영광ㆍ함평의 광산 김씨 2천8백세대와 기독교인 4만8천여명을 상대로 득표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조직력과 자금동원에서 열세이고 ‘무소속’이라는 한계 때문에 힘겨운 경주를 하고 있어 도중하차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김후보는 결코 중도에 후보를 사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오히려 “이수인 후보가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현지 분위기가 어떤지 정확하게 판단해서 하루빨리 후보를 사퇴해야 할 것”이라고 평민당을 겨냥한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잠정집계에 따르면 총유권자수는 9만5천명선.  이중 민자당이 대략 1만5천~2만여표의 고정표를 겨냥하는 동시에 영남후보 공천에 따른 평민당의‘동요’표를 끌어들이는 쪽에 힘을 쏟고, 무소속의 노ㆍ김 두 후보가 민자ㆍ평민당을 공략하고 있으나 여권성향의 고정표나 평민당의 ‘바람’을 크게 잠식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농민 이익이냐 평민당이냐를 가름할 농민회의 조직력과 평민당의‘돌풍’맞대결도 변수의 하나이며, 지역개발을 우선시하는 민자당 선호와 평민당 우선순위 고수의 양자택일은 선거양상을 결정지을 가장 큰 분수령이다.

평민당과 민자당 선거대책본부의 실무 관계자들은 유권자 50%가 50대 이상인 데다가, 민자당이나 평민당의 고정표가 확고하다는 분석에 따라 표 분산의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고, “유권자 성향이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결국은 노태우냐 김대중이냐 하는 선택으로 압축될 것”으로 분석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