院內의 고독한 농사꾼
  • 김재태 (전<시사저널> 정치부 기자· 현재 프랑스유학 ()
  • 승인 1990.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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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꿈 되살린다”

농어촌총각 짝짓기 열심인 민자당 朴炅秀 의원

민자당의 朴炅秀 의원(52)은 뜻깊은 일하나를 치러냈다.  그가 사는 강원도 원주군 부론면 정산리의 한 야산에 1만2천여평의 초지를 조성, 한우 70마리를 처음으로 들여놓은 것이다.  지난 10월12일의 일이다.

그가 조성한 이 ‘한우번식단지’는 여타 축산단지와는 다른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은 모두 그가 10여년 동안 정성을 쏟아 벌여온 ‘농어촌총각 장가들이기운동’을 위해 쓰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곳에 내년 6월까지 한우 1백30마리를 더 입식시켜 거기서 번 돈으로 송아지를 구입, 농촌으로 시집오는 도시처녀들에게 한마리씩 결혼선물로 줄 생각을 갖고 있다.  결혼문제로 고민하는 농어촌 청년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싶었던 그의 오랜 꿈이 이제야 비로소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셈이다.

 

사랑방좌담회서 UR 걱정 나눠

한창 보람의 땀을 흘려야 할 건장한 청년들이 하나둘 도시로 떠나버리는 바람에 이제는 황량한 ‘노인들의 땅’으로 쇠락해버린 마을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는 농촌에 꿈을 되찾아주는 일이 곧 농촌문제 해결의 시발점임을 깨달았다.  그가 지난 80년부터 농어촌총각 장가들이기운동에 앞장서게 된 것도 바로 그런 까닭에서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금배지를 달았지만 국회의원에 출마했던 때보다 더 오래, 더 열정적으로 이 일에 매달렸다.  지난 82년부터 농촌총각과 도시처녀의 ‘만남의 광장’을 주선해오면서 지금까지 결혼을 성사시킨 부부가 줄잡아 70여쌍.  오는 11월에도 그가 맺어준 농촌총각 도시처녀 12쌍이 결혼식을 올리기로 되어 있다.  주례는 물론 이번에 한우번식단지에 입식시킨 소 70마리 가운데 12마리를 빼내 당장 그들에게 결혼선물로 주는 일이 그의 몫으로 남아 있다.  소 한마리가 통상 5~6년이 지나면 13마리쯤으로 불어날 터이므로 새 가정을 꾸리는 그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살림밑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경수의원, 그는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논 1천9백여평과 담배밭 2천1백평을 가진 평범한 농사꾼이다.  국회의원이라 해서 남에게 미룰 수 없는 소중한 논이며 밭이다.  집 뒷편 산중턱에 있는 그 논에서 그는 지난 9월말에 추수를 끝냈다.  냉해에 강하다는 ‘운봉’이란 품종의 올벼를 심은 탓에 다른 곳보다는 조금 일찍 서두른 편이다.  국회의원의 추수라면 거드는 사람도 많을 법하지만 일손이 달리기는 그도 다른 농부들과 마찬가지다.  품앗이로 나온 동네주민 너댓과 그의 비서관 셋, 그리고 탈곡기와 트랙터를 임대하면서 딸려나온 기술자 두명이 논에 나온 일꾼의 전부였다.  혹 그의 비서관이 벼이삭이 아직 붙은 볏단을 모르고 옮기기라도 하면 “쌀 한톨이 얼마나 소중한데 함부로 버리느냐”며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유난히 비가 많은 해여서 걱정도 컸지만 이정도 수확이면 대충 어림잡아도 예년수준인 35가마는 너끈히 거둘 듯하다.  이것을 쌀로 찌면 17가마쯤 나올 터이므로, 항상 생각이지만 논농사는 담배농사에 비해 남는 것이 없다.  일찍 수확을 끝낸 담배에서는 그래도 한 5백만원쯤 벌었으니 나쁜 편은 아니다.

그는 매일 저녁 원주ㆍ횡성군의 2개 里를 단위로 사랑방좌담회를 연다.  국회의원으로서 지역구 주민들의 의견을 직접 청취하는 일이 별달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겠지만 그에게 이 자리는 “돈도 없고 특출난 것도 없는 사람을 선량으로 뽑아준 은혜에 보답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고 있다.  이 사랑방좌담회에서 그는 농사를 함께 짓는 동업자로서 주민들과 마주앉아 최근에 쟁점이 되고 있는 우루과이라운드협상문제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그가 느끼는 한,이 우루과이라운드문제에 대한 농민들의 걱정은 대단하다.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 따른 농산물개방의 유예기간이 10년이므로 그동안에 농촌의 자생력을 키우는데 힘쓴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그로서도 이들을 설득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원주시내에 있는 그의 지역구 사무실에는 여느 국회의원 사무실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요란한 선전벽보 따위는 아예 없다.  입구에 ‘농어촌청년 장가들이기운동본부’와 ‘민자당 원주군연락사무소’같은 현판이 붙어 있어 그나마 국회의원 사무실임을 겨우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국회의원 朴炅秀’라는 표시는 사무실문 모서리에 명함보다 더 작은 크기로 엉거주춤 붙어 있을 뿐이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여비서가 내어놓는 접대용 차는 하나같이 ‘국산’ 일색이다.  커피를 끓여 손님에게 내어놓다 박의원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영락없이 날 벼락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 농민들이 피땀 흘려 생산한 국산차를 놓아두고 ‘외제’를 왜 마시느냐”는 호통에는 여비서도 할 말이 없다.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그에게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변한 게 있다면 그전보다 “흰머리가 훨씬 더 늘었다”는 것 뿐이다.  그 점은 그의 마을이나 이웃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이 나온 곳이면 뭔가 좀 달라진 것이 있겠거니 하고 막연히 믿었던 주민들도 이제는 그의 우직한 고집을 웃음으로 이해할 줄 안다.  이웃에 산다는 朴聖巨(60)씨는 “국회의원이 같은 동네 산다고 나아진 것도 없지만 옛날같이 계속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것만 해도 기쁘다”고 말한다.  박의원이 그렇듯 그의 아내도 그저그런 촌부일 뿐이다.  남편이 국회의원이 된 후로 더 농사일에 바빠진 동갑나기 아내 全貞順씨는 그래서 늘 의원부인회 같은 모임에는 유일한 불참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박의원의 집은 원주에서 문막을 거쳐 비포장도로를 10여리 들어가야 나오는 오지에 있다.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마자 도지사가 포장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여기보다 더 급한 곳이 많을 텐데 특수한 사람이 산다고 그래서는 안된다”며 딱잘라 거절했다.

 

지나치게 세부적 농정개선에 집착

초선의원으로서 그는 아직 정치에는 ‘초보’이다.  특히 합당이 된 후로는 더욱 입지가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민주당의원시절에는 그래도 당총재 등이 그가 벌이는 농어촌청각결혼운동에 자금지원도 해주고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으나 합당 이후에는 여태 이렇다할 도움을 못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는 낙담하지 않는다.  민자당의원이기 앞서 자신을 ‘8백만 농민의 당’의원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돈 안쓰고 당선된”만큼 다음 선거에서 떨어지더라도 농어촌총각결혼운동에 전념하면서 “농민을 위해 일생을 바칠”각오가 되어 있다.

徐敬元씨의 의원직해임으로 이제 유일한 농민의원이 된 그에게는 아직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다.  당장 올 추곡수매가 인상률을 얼마나 농민들에게 합당하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과제는 지금까지 지나치게 지엽적이라 할 만큼 세부적인 농정개선에 집착해온 그가 ‘거시적인 농업정책’ 수립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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