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민주화 올가미” 재임용 파문 확대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90.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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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수 73% 재임용 지지’보도 사실과 거리 멀어

최근 한 일간지에 보도된 어느 설문조사 결과가 교수들 사이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교육관련법 중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혀왔던 ‘교수재임용제’에 대해 조사대상자의 73%가 “지지한다”고 응답한 것이다.  더욱이 설문조사의 대상자들이 재임용제의 폐해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이 아니라 바로 서울대 교수들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뜻밖의’결과에 접한 타대학 교수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특히 보도시기의 미묘함을 지적했다.  개정된 사립학교법에 의해 올들어 최초로 덕성여대의 성낙돈 교수가 재임용심사에서 탈락(《시사저널) 46호 32~33면 참조), 재단과 학생ㆍ교수들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시점에, 일방의 편을 들어주는 듯한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저의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저조한 응답률 무시한 채 ‘73%’만 강조

이런 의혹 속에서 서울대 행정대학원이 작성한 문제의 설문조사자료 ‘교수인사제도 개편방안에 관한 연구’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 내용 자체는 별로 놀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응답자의 73%가 “교수재임용제를 지지한다”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이같은 답이 나오게 된 데에는 몇가지 전제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식적인 수준’의 설문조사 결과가 ‘충격적인 것’으로 둔갑하게 된 원인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기사에서는 이런 전제조건들이 알기 쉽게 설명되기 있지 않았으며 ‘매우 중요한’한가지 요소는 아예 빠져 있었다.  그 한가지 요소란 바로 설문조사의 신뢰도를 가늠한다고 할 수 있는 응답률이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이 서울대에 재직중인 전임강사 이상의 교원 1천3백13명(89년 4월1일 현재ㆍ명예교수 제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의 응답률은 39%(5백15명)에 불과했다.  (표 참조).  그러므로 5백15명 중 73%라는 수치는 전체 교원들을 기준으로 볼 때 놀랄만한 지지율은 아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재임용제를 찬성한 응답자들 중 대다수인 65%는 “제한된 범위내에서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제한된 범위’가 갖는 의미는 교수임용 방식을 물은 항목에서 응답자들 중 79%가 ‘절충형’을 택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절충형을 택한 응답자의 과반수 이상이 부교수ㆍ정교수의 경우 종신제로 하고 전임강사와 조교수에게만 계약제를 적용하자는 데 동의, 부교수나 정교수는 재임용 심사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전체교원 중 부교수 및 정교수의 숫자(1천26명)가 압도적으로 많은 서울대에서 재임용제의 실시 범위는 극히 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학별 교직원의 응답비율도 음대ㆍ가정대ㆍ사범대가 각각 76%, 75%, 62%로 높은 반면 인문대ㆍ사회과학대ㆍ경영대는 31%, 25%, 29%로 낮아 모집단의 대표성도 고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둘 때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서울대 교수들의 의견을 대표한다고 보기 힘들며 응답자들 중 재임용제를 “제한된 범위내에서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1백79명이 통상적으로 불리는 ‘재임용제’찬성파라고 단정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이번 작업에 참여했다는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한 교수는 “교육공무원법이 개정될 것에 대비, 바람직한 인사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실시했던 조사 결과가 오해의 소지를 내포한 형태로 보도되는 바람에 적잖은 곤욕을 치렀다”며 “설문조사에서 인용된 재임용제는 부교수와 정교수의 종신제를 기초로 하고 있어 지금까지 문교부에서 실시해온 재임용제와는 엄연히 의미가 다르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임용제의 철폐를 둘러싼 교수들과 재단의 싸움은 이와는 별도로 올들어 한층 가열되고 있다.  지난 3월16일 임시국회에서 사립학교법이 날치기로 통과됨으로써 재단에 의해 악용될 길을 더 열면서부터이다.  개정된 사립학교법 53조의 2는 “학교법인의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기간을 정하여 임면할 수 있다”고 명시, 재단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1년 단위로 교수를 재임용 심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사립학교법이 전격 처리된 직후 사립대학교수협의회연합회 등 평교수 단체들은 “오히려 개악됐다”며 심하게 반발했고 당시 문공위원장이 정대철 의원(평민)이었음에도 불구, 야당이 이를 적극 저지하지 않은 데 대한 비난 여론도 높았다.

이처럼 논란이 계속되자 문교부는 지난 8월 과거임기제(부교수ㆍ정교수 6년, 조교수 3년)를 단축하지 않도록 정관개정준칙을 각 사립대학에 시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양건 교수(한양대ㆍ헌법학)는 “정관개정준칙은 행정지도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 강력한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어서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려했던 대로 재임용제는 존폐 여부가 재단에 일임됐음에도 불구, 없어지기는커녕 재단이나 정부의 비위를 거스르는 교수들을 합법적으로 쫓아내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올 들어서만도 성낙동 교수를 필두로 서태호ㆍ심명석(부산성심외국어전문대) 김호정(부산대) 양서진(송원실업전문대) 교수 등 전국해직교수협의회에서 파악한 숫자만도 9명에 이르는 교수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와 함께 재임용심사에서 탈락했다.  박영근 교수 (중앙대ㆍ불문학)는 “한때 사문화됐던 재임용제가 6공화국 들어와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며 “정부가 재단에 압력을 넣어 급히 자르고 싶은 교수는 징계위원회를 통해, 화급을 다투지 않는 사안과 관련된 교수는 재임용제를 이용해 학교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유양선 교수(덕성여대ㆍ국문학)는 “부당하게 징계조치를 당할 경우 법적 절차를 밝거나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구제받을 수 있지만 재임용에서 탈락되면 어떤 억울한 사유가 있어도 구제 받을 길이 없다는 점에서 재임용제는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립학교법 재개정 외에는 달리 길 없어

  실제로 재임용제는 일종의 계약제여서 법률적으로는 임용기간 중 아무 잘못이 없었다 할지라도 꼭 기간을 연장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것으로 해석돼왔다.  이 때문에 동료교수와 학생들의 전폭적인 성원 속에 수업을 강행하며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성낙돈 교수를 제외한 나머지 재임용 탈락 교수들은 속수무책으로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는 상태다.  변진홍 해직교수협의회 부위원장은 “다른 피해 교수들이 성교수처럼 수업투쟁을 벌이지 못하는 이유는 동료교수들과 학생들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한 뒤 “성교수가 올해 첫번째 희생자였던 만큼 복직되는 선례를 남겨준다면 다른 교수에게도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중요성 때문인지 성교수가 지난 8월 25일 재임용 탈락 통고를 받은 이후 덕성여대 평교수협의회(회장 김명호) 소속 교수들은 이에 항의하는 농성에 들어갔으며 민교협ㆍ전교조 등 교육 관련 민주단체들의 성원도 이어졌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의 성교수의 재임용 탈락을 놓고 재단측과 성교수측은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일부 학생이 혈서를 쓰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끈질긴 항거에도 불구하고 재단측은 성교수와 동료 교수들에게 불법수업과 해교적 행위에 대한 경고장을 발송하는 등 현재로선 ‘복직의 희망’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원래 교수재임용제는 지난 75년 “교수들의 무사안일한 근무자세를 지양하고 학술연구활동을 진작시키며 대학의 면학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취지로 제정됐다(교육공무원법 11조의 3, 사립학교법 53조의2). 이후 교수임용제가 적용된 첫해인 76년 무려 1백50여명의 교수들이 해임됐으며 문교부 자료에 의하면 88년까지 총 2백71명의 교수들이 재임용심사에서 탈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교협 공동의장인 김진균 교수(서울대ㆍ사회학)는 이에 대해 “재임용제가 제대로만 운영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성낙돈 교수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까지 이 제도는 교육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교수들을 잡아매는 올가미로 작용해왔다”고 단정지었다.

교육계에서는 이번 겨울학기가 끝나면 더 많은 재임용탈락자가 생겨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앉아서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교수들의 자조적인 푸념이다.  국회가 정상화되는 대로 야당쪽에서 사립학교법에 대한 재개정작업을 벌여주지 않는 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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