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확대되는 ‘사용자 책임’
  • 신기남 (변호사) ()
  • 승인 1990.11.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택시기사의 ‘폭행사건’에 회사 손해배상 논란

강력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세태의 반영이다.  그래서 범죄인 개인의 책임을 넘어서 사회적 책임이라고 일컬어진다.  더구나 요즘은 범죄도 기동화하여 자동차 같은 문명의 이기를 이용한 범죄가 급증하는 추세이다.

지난 8월말 서울고등법원에서는 택시운전수가 여자승객을 강간했던 일로 해서 피해승객과 그 가족들이 운전수와 택시회사를 공동피고로 하여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  밤중에 여자승객을 실어 나르던 택시운전수가 엉뚱한 생각을 품고 교외의 외딴 곳으로 택시를 몰고가서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물론 운전수는 형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징역을 살고 있다.  운전수가 피해자에게 민사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문제는 운전수를 고용한 택시회사도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만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민법상 사용자책임이라는 이론이 있다.  타인을 이용하여 사무에 종사하게 한 자는 그 피용자가 사무집행에 관하여 제3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위 민사소송에서 원고(피해자와 가족들)는 택시회사가 사용자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제1심 법원인 서울민사지방법원에서 선고된 판결은 택시회사의 사용자책임을 부정하였다.  사용자책임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범죄행위와 사무집행간에 관련성이 있어야 하는데 운전수의 강간행위는 운전이라는 본래의 사무와는 아무런 관련성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원고가 항소를 제기하여 열린 제2심의 법원인 서울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뒤엎고 택시회사에 대한 청구까지 인정하는 판결을 하기에 이르렀다(양자의 연대책임을 선고함).  택시회사의 사용자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고등법원은 운전수의 강간행위는 운송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으나 사무집행과 관련성이 있다고 보았다.  똑 같은 사실을 놓고서 1심 법원과 2심 법원간에 사무집행과의 관련성에 대한 판단이 엇갈린 것이다.

사용자책임의 한계를 어느 선에서 설정하느냐를 판단하는 것은 일도양단적인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우리 법원의 판례나 학계의 학설은 대체로 ‘외형이론’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고 있다.  피용자의 행위가 객관적인 외형으로 보아 사무집행과 관련이 있다고 보이면 사용자책임을 인정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 이론의 구체적 적용은 역시 케이스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운전수가 운전행위자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그거야 당연히 회사가 사용자책임을 져야 하겠으나, 전혀 엉뚱한 범행을 저지르는 것까지 어떻게 회사의 손이 미치겠느냐 하는 택시회사의 항변에도 일리는 있어보인다.

그러나 한편 산업사회에 들어서 한창 강조가 되고 있는 소위 기업자책임이론에 의하면 사용자책임의 범위는 종전보다 더 넓혀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수긍이 간다.  기업자책임이란, 대량소비시대에 즈음하여 기업이 대규모 이익을 얻는 대신에 사각지대에 있는 사회적 손해에 대하여 공적인 입장에서 책임을 분담하여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것은 범죄에 대한 사회적·국가적 책임을 강조하는 분위기와도 맞아떨어지는 이론이다.  고등법원의 판결도 이러한 시각에서 사용자책임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결과라고 본다.

이 사건은 피고(택시회사)가 상고를 하여 대법원에 올라가서 최종판결을 앞두고 있다.  운전수에게 일일이 감시병을 붙여둘 수도 없는 입장인 택시회사, 그리고 운전수는 재력이 없어 재력가인 회사로부터 실질적 배상을 얻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인 피해자, 양측이 대법원 판결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