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쿠데타가 아닙니다”
  • 정리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2.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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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周永 통일국민당 창당준비위원장과의 대담

묻는 이 : 朴權相 《시사저널》 편집고문
 아무튼 鄭周永은 기업인으로 대성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 30년 동안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환골탈태하는 과정에서 무명의 건설업자가 세계적인 재벌총수로 자라났고, 개인의 성장이 곧 나라의 성장에 연결될 정도로 숱한 신화를 남겼다.
 당연히 그에 대한 ?譽와 시비가 끊임없이 엇갈리고 근자에는 무려 1천3백억원이라는 미증유의 과세추징금으로 뉴스의 초점이 되더니, 해가 바뀌면서 통일국민당의 깃발을 올려 민자 · 민주의 양당체제에 도전해 정계를 뒤흔들고 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것이 그가 걸어온 인생행로였다. 말도 많았지만 성공과 승리의 기록이었다. 과연 그의 성공 신화가 정계진출에도 그대로 이어져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인가. 아니면 이미 혼탁한 정치권에 ‘돈의 쿠데타’로 일시적 태풍을 일으킬 뿐 얼마안가 항속력을 잃고 말 것인가.

대통령선거에 나가실 참입니까?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이야기입니까. 우선 총선이 목표인데 그 이야기부터 하지요.

정권획득을 목표로 하지 않은 정당이란 있을 수 없다고 보는데요.
제가 정당을 만든 목적은 그것과는 의의를 달리합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잘되고 우리들의 모든 미래가 희망적이라면 내가 정계에 뛰어들지는 않았지요. 6공이 91년말까지 4년 하지 않았어요. 그동안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봐도 부채가 4백억달러, 흑자를 내던 나라가 1백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냈습니다. 그런데도 민자당이 5년을 더 하려고 뛰고 있잖습니까. 그렇게 되면 경제뿐 아니라 이 나라의 모든 부문이 재기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나라 망하는 게 뻔히 눈에 보이는데 혼자 잘 살고 편할 수가 없어서, 가만 있을 수가 없어서 우리가 정당으로 출발한 겁니다.

대통령선거에 나가는 문제를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는 거지요?
우리 당은 우선 총선에 전력을 다할 참입니다. 국민이 어떻게 바로 인식해서 표를 던져주는가가 문제지만, 제1당이 우리 목표입니다. 제1당이 못되면 제1야당이라도 돼야지요. 구태의연한 현 정부가 우리를 방해하고 싶겠지만 워낙 모든 것을 법에 따라 진행하고 있어서 직접적인 방해는 못합니다. 우리에게 협조하는 모든 동지들한테는 개인적으로 많은 방해가 있습니다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리라고 봅니다.

제1당, 제1야당은 못되더라도 제3, 아니 제2야당은 될 거 같은데….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우리 사기 꺾어놓지 마세요.

정위원장이 직접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할 의향은 없습니까?
저는 되도록 많은 사람을 당선시키기 위해 전국을 누빌 것입니다.

오직 제1당을 바라보신다는 건데, 제1당이 되든가 제1야당이 될 경우 당연히 대통령선거에 나가는 거 아닙니까?
물론 우리 당은 대통령후보를 냅니다. 당내 의견을 수렴해보고 국민의 의사를 수렴해서 우리 당에 몸담은 사람 중에 국민이 원하는 인물을 내보낼 작정입니다.

민자당의 김영삼씨와 민주당의 김대중씨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2년 전 프레스센터에서 “우리나라에 현재 대통령을 맡길 만한 사람을 발견 못했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라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해두지요.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과는 친한 사이 아닙니까?
김대표와는 인간적으로 친한 사이지요. 저도 인간적으로 그 분을 존경하고 그 분도 인간적으로 저를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양반 고집이 참 대단해요. 박철언 의원과 틀어져 있을 때 이야기인데요. 방북 관계로 박장관에게 개인적으로 진 신세도 갚을 겸 해서 두 사람간의 중재에 나섰더랬는데…. 한 서너 차례 만났는데, 다른 부탁을 몰라도 그것만은 절대로 안된다고 끝내 고집해요. 결국 두손 들었죠.

지금까지 두번에 걸쳐 군사쿠데타가 일어났고 그 쿠데타의 주역들이 정치를 한 30년 하면서 경제면에서는 많은 걸 이루어놓았지만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정치를 못하는 바람에 오늘의 상황이 대단히 어지럽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기업인으로서는 가장 성공한 재벌총수가 정치에 나선 것은 ‘금권 쿠데타’가 아닌가 하는 비판도 있습니다.
금권 쿠데타라…. 전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새로운 말을 잘 만들어내시는군요. 경제적으로 부를 축적하고 성공한 건 사실입니다. 기업에서 대성하지 못했다면 이런 일도 성공적으로 추진하진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축적한 부를 갖고 이 나라 정치를 한번 깨끗하게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이 금권 쿠데타입니까. 우리는 누구보다도 철저히 선거법을 지키고 자금의 출처도 공표하고 돈 쓰임새도 공개할 작정입니다.

국민당은 여당입니까, 야당입니까?
지금으로선 집권당이 아니니까 분명히 야당입니다.

지금의 야당하곤 어떻게 다릅니까?
현재의 야당은 정책으로  여당을 이기려는 게 아니라 주로 여당의 약점을 공격합니다. 우리 당은 여당을 공격하는 동시에 국민의 공감을 얻고 실질적으로 국민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내세우는 야당이 될 겁니다.

넓은 의미에서 범여는 이 사회의 기득권을 갖고 세도를 누리면서 이 나라를 다스리는 세력을, 야권은 기득권에서 소외되어 있고 따라서 현실을 타파하자는 세력을 말합니다. 정위원장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우리 국민을 보면 현실을 유지 보존하자는 쪽이 30%, 현실을 완전히 타파해서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보자는 쪽이 70%라고 봅니다.

국민당이 내건 정책은 민중당 못지않게 진보적인데 막상 참여인사는 정반대의 구성인 것 같습니다. 조직책 선정 결과도 기대 이하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땐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 여 · 야당의 공천자처럼 명망가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은데요. 여 · 야당과 달리 우리는 구태의연한 명망성에 구애받지 않고 각계각층을 대변할 사람들을 공천한 겁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5공 인사도 눈에 띄고 여 · 야당 공천에서 떨어진 사람들도 끼여 있고….
정반대입니다. 여 · 야당 공천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은 사람들만 공천한 겁니다.

노태우 정권이 이끄는 6공의 특색 · 실체 · 본질을 어떻게 보십니까. 여당이 이루어놓은 일은 무엇이고 잘못한 일은 무엇입니까?
6공 정권은 사실 경북고등학교 붕당이라고 봅니다. TK군단이라는 말도 있는데 차라리 붕당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겁니다. 개인적인 이야기 하나 하지요. 저희 정씨가 본이 스물여섯이고 남북한 합치면 4백만명이 넘습니다. 그중에 여당 국회의원만도 18명이나 되는데 그 분들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외세의 힘으로 38을 잘라놔서 남한만 통치했고 북한은 통치 못했다. 박대통령은 남한에서도 나라를 동서로 갈라놓고 경상도만 다스렸다. 전대통령은 다시 경상도에서도 경상남도 중심으로 나라를 통치했다. 그런데 노대통령은 경상북도에서도 특히 경북고를 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고들 합디다. 역대 통치자들의 범위가 그렇게 점점 좁아진 겁니다.

정위원장은 내각제와 대통령제 중 어느쪽을 선호하십니까?
현행 헌법은 대통령제이므로 이번 대통령선거까지는 그대로 간다고 봅니다. 현재 우리 당이나 제 개인이나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정치는 의회 중심이어야 하고 행정부는 물론 모든 부서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두환 전대통령이나 노대통령의 참모 정치는 군대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직 안하신 셈인데요. 권력집중형을 선호합니까, 아니면 권력 분산형입니까?
정치 권력은 국회로 분산돼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현 권력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국민의 흐름, 국민의 바람에 의해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그룹이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정위원장 개인의 지도력, 불도저식 추진력과 개인적 상상력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 스타일은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이기도 합니다. 정위원장이 이끄는 국민당 역시 그런 정당이 되지 않을까요?
기업이나 정당이나 어떤 문제를 가장 많이 생각한 사람의 의견을 따라가게 된다고 봅니다. 왜냐, 가장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좋은 의견을 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 당 안에서 제가 가장 많이 생각을 해서 좋은 생각을 가지고 나오면 그것은 자연히 통과될 것입니다. 전 나폴레옹전을 참 좋아해서 수십번이나 읽었고 지금도 여행할 때는 늘 가지고 다닙니다. 그 책을 보면 나폴레옹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한 사람입니다. 그가 전쟁만 많이 했습니까. 전쟁뿐만 아니라 파리 시가지 계획에서부터 나폴레옹 법전 그리고 문화에 이르기까지 한 일이 참 많습니다. 그 사람 이상으로 생각한 사람이 그 시대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정위원장의 지난 이력이 어떻든 지금 이 순간 적어도 몇 천억, 몇 조원을 가진 재산가로 분명히 보수 반동쪽입니다. 그럼에도 정강정책은 민중당 못지 않게 진보적입니다.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눈가림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흔히 우리 보고 어디를 대변하는 정당이냐고 물어요. 우리는 누구를 대변하는 정당이 아닙니다. 말을 꺼낸 것은 꼭 실천하는 정당입니다. 우리가 토지공개념제도를 도입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개인적인 소유권은 인정하지만 토지를 놓고 부동산투기를 못하도록 모든 법령을 정비해서 하겠다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서 좋은데 왜 안합니까. 금융실명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부정부패의 온상인 검은 돈을 없애겠다는 것인데 왜 안합니까. 제가 보수 반동으로 굉장한 부를 축적했는데 미래 지향으로 저런 이야기를 하느냐, 저건 말뿐이 아니냐고 하는데 그것도 조금만 지켜보면 알게 됩니다. 완전히 탈피합니다. 더욱이 제가 혼자하는 일이 아닙니다. 과거에 노동 현장에서 몸담고 고생한 사람들을 많이 공천할 겁니다. 우리가 공천한 사람들을 보면 우리 당이 진정으로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도우려 한다는 것이 확실히 드러날 겁니다.

우리도 통일국가에 대한 비전은 있어야 할텐데요. 개인적으로는 남의 자유와 북의 평등이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 한국에 대한 개인적 소망이나 꿈, 비전을 밝혀주시지요.
남북이 통일되면 우리가 북한의 짐을 너무 많이 진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물론 짐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북에 가서 느낀 건 우선 집단농장만 해체하고 당분간 식량을 원조하고 자유만 주면 최소한의 문제는 해결된다 이겁니다. 집단농장만 해체해주면 식량은 2년 안에 자급자족된다고 봅니다. 물론 남한이 경제력이 있다면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돌봐주는 것이 좋지요. 그러나 우선 초보적으로 자유를 주고 식량을 주고 집단농장만 해체하면 북한 주민은 천국을 만났다고 할 겁니다. 남북의 경제력 균형은 그 다음에나 생각할 문제입니다.

새한당의 김동길 전 교수와 합친다고 하고, 5공세력 및 6공에 몸담았다가 밀려난 많은 사람들을 흡수한다고도 합니다.
새한당과 합친다는 의논을 구체적으로 해본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당의 목표나 김동길씨의 목표가 다를 게 없이 똑같으니까 국민이 합치는 게 좋겠다고 원하면 합치게 될 거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날짜를 못박을 수는 없지만 그렇게 되는 게 틀림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봐서 국민당의 지지층은 어느 계층이고, 어느 지역이라고 판단하십니까. 양당체제에 염증을 느껴 조건반사적으로 새로운 정당 출현을 기대하는 층입니까?
우리 당의 기반은 특정 지역이 아닙니다. 물론 호남은 민주당 때문에 당선율이 아주 저조할 겁니다. 영남은 괜찮을 것으로 봅니다. 구태여 따지자면 중부, 이를 테면 충남북 경기도 서울 강원도에선 잘될 것으로 봅니다.

청와대 정치자금 헌납과 관련해 궁금한 부분이 있습니다. 2년 전까지만 내고 끊었다고 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왜 안냈습니까?
뭐…. 현대가 부동산투기에 손댄 일도 없는데 부동산 투기했다고 몰아서 완전히 부동산투기꾼으로 만들잖아요. 부동산투기 한 사실이 없는데도 현대가 조사를 가장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다 알다시피 세무조사를 우리에게만 자꾸 하잖아요. 그래서 기분도 덜 좋고 낼 돈도 없고 해서 안냈지요.

어느쪽이 먼저입니까. 정부의 탄압 때문에 안낸 겁니까. 안내니까 탄압받은 겁니까?
그건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자꾸 조사하고 탄압하고 불명예스럽게 만드니까…. 사실 탄압보다도 우리 현대를 불명예스럽게 만든 거지요. 뭐 재벌의 부동산투기다 하고 현대를 가장 선두 주자로 몰아세우니까 국민은 재벌이라면 부동산투기나 하고 못된 짓을 하는 집단으로 받아들여요. 그러니 “어려운 사람들 돕는 데 보태쓰십시오”하고 돈을 갖다드릴 생각이 안나는 거죠.

정위원장과 노대통령 두 분의 해명에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불우이웃돕기라면 정위원장이 직접 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직접 하기도 했지요. 3공 때 박대통령께 들은 얘긴데 정치를 해보니까 연말연시에 돈 쓸 데가 너무 많다고 걱정하시더군요. 통치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통치를 한다니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치 폭로’가 잇따를 것이라는 풍문이 나도는데….
그런 일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날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정치인에게 돈을 준 적이 있느냐고 묻길래 정직하게 대답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는 이러이러한 때에 이러이러한 이유로 대통령한테 돈을 준 일이 있다고 이야기한 거죠. 예정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정치인도 좀 도와주었겠지요. 불우이웃돕기는 아니더라도.
선거 때가 되면 여 · 야당에 있는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들, 장래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액수는 미미하지만, 많게는 1억원까지 준 사람도 있습니다.

정치인 입장에서 언론을 어떻게 보십니까?
언론이 있어서 이만큼의 정치 수준이라도 유지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권력을 무조건 지지하는 일부 언론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기업도 크게 잘하면 공기지만 언론은 정말 공기 중의 공기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큰 기업에 속한 언론은 그 공정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자기 모체를 보존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정론을 못 펴는 것이지요. 어쨌든 언론은 언론만하는 사람의 언론이 되어야만 그 나라의 모든 정도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문화일보〉도 대기업의 언론 아닙니까?
그것도 만약에 그런 위험성이 있다면 다 없애야죠. 저는 〈한국경제신문〉의 대주주이기도 합니다. 이사회 이사장이지만 임원들 인사 때 한 차례만 결재하러 나갑니다. 그 신문에서도 현대 관련 기사를 턱도 없이 쓸 때가 많았어요. 그래도 뭐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언론에서는 정 · 경 · 언유착이다 뭐다 그러는데,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언론은 국가의 공기이므로 누구든지 간섭하면 절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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