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통일의 두 정상 새 시대 협력의 악수
  • 본·김호균 통신원 ()
  • 승인 1990.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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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고르비에 국제경제지원 약속‥·‘우럽 공동의 집’ 첫발

 베를린장벽 개방 1주년에 맞추어 통일 독일을 방문한 미하일 고츠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독일과 협력강화를 위한 3개의 조약을 맺음으로써 독·소 관계의 발전은 물론 ‘유럽공동의 집’ 건설에 있어서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고르파초프와 헬무트 콜독일 총리는 ‘선린우호협력에 관한 조약’에 서명했고, 시타리안 소련 부총리와 하우스만 독일 경제장관은 ‘경제·산업 및 과학·기술분야에서의 광범한 협력에 관한 조약’에 서명했다. 그릭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과 블륌 독일 사회장관은 ‘노동·사회제도 분야에서의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고르바초프의 이번 독일방문에는 공식적인 일정 이외에 사적인 일정이 병행됨으로서 두나라 사이의 각별한 관계가 크게 부각되었다. 고르바초프는 바이츠제커 대통령을 방문, “자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대담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콜 총리의 고향을 방문,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셰바르드나제는 겐셔외무장관의 고향을 방문, “오늘부터 겐셔 장관의 선거전을 위해 뛰겠다”는 농담을 해 만장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두 나라는 공동관심사에 관한 각자의 의향을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의미있는 변화를 보였다. 콜 총리는 독일계 소련인 문제를 언급하면서 과거와는 달리 ‘촉구’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부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고르바초프도 여러 차례에 걸쳐 독일 주둔 소련군이 갈수록 反蘇 분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어려움을 지적하면서 이해심을 갖고 이들을 대해줄 것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콜은 “소련군인과 그 가족이 이곳에 있는 동안 편안하도록 가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이를 위해 콜 자신이 관계 장관을 대동하고 소련군 병영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겐셔와 셰바르드나제도 금년중으로 소련군 병영을 방문키로 했다.

 고르바초프는 통일독일에 축하를 보내면서 독일과 소련은 이제 더 이상 ‘잠재적인 적’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소련 내에서도 개혁에 의해 국제경제적 협력의 조건이 마련되고 있다고 밝히면서 독일에 대해 “용기와 대범성, 미래지향적 사고와 건전한 모험의욕”을 촉구함으로써 소련이 독일에 거는 기대를 표현했다. 이에 대해 콜은 “우리가 당신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니 우리도 가능한 범위 안에서 당신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회담에서 소련이 새로 약속받은 구체적인 지원은 소련경제가 시장경제로 존환하는 업무를 돕기 위한 자문위원단을 독일 경제부가 소련에 파견하겠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과거 동독이 소련과 맺은 무역협정 중에서 통일독일이 어느 부분을 물려받을 것인지에 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주기를 희망했다. 소련은 특히 통일독일에 석유를 계속 수출하기를 희망하고 있는데 독일로서도 중동산 석유 의존도를 낮추려하고 있기 때문에 가까운 장래에 합의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시타리안 부총리가 독일 재계와 가진 간담회에서 독일의 대표적인 에너지기업인 루르가스주식회사의 클라우스 리젠 사장은 소련의 에너지산업 근대화 참여뿐 아니라 독일이 그동안 기피해온 구상무역에도 참여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이 자리에 참석한 많은 독일 자본가들은 소련연방이 재편되고 있는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고 있는데 과연 연방정부와 체결한 계약을 나중에 공화국들이 인정해줄지, 또는 어느 당국을 상대로 협상을 벌여야 하는지 불확실한 상태라는 점을 지적했다.

 

콜 총리 “EC 차원 지원 위해 노력하겠다”

 독일 경제계에서는 무이자 등의 조건으로 소련을 지원하는 것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는 의견이 높다. 정통보수지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독일이 이미 소련을 위해 재정적으로 많은 모험을 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보다 목표지향적인 방식으로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독일으 전경련격인 산업연맹의 틸 네커 회장이 소련에 대한 지원을 엄격히 프로젝트와 결부시킬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콜 총리에게 보냈다고 보도했다.

 콜 총리도 독일의 부담을 덜 뿐만 아니라 EC회원국의 이해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앞으로는 소련에 대한 경제지원을 이들과 협의한 후 실행할 것임을 밝히는 한편, 고르바초프를 돕겠다는 의지가 EC 등 국제기구에서 이제는 실천에 옮겨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임을 고르바초프에게 약속했다. 이를 위해 콜 총리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 참석하기에 앞서 독일을 방문하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서방의 對蘇 지원을 조정하기 위해 회담할 예정인데 이 자리에서는 지금까지보다 더 적극적인 미국의 대소 지원계획이 밝혀질 것으로 독일은 기대하고 있다.

 또한 콜 총리는 오는 12월 로마에서 열리는 EC 정상회담에서 EC 차원에서 소련에 대한 지원이 강화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EC 안에서는 독일 이외에 이미 이탈리아정부가 30억마르크의 차관과 약 13억마르크의 수출신용을 공여키로 했으며 프랑스가 15억마르크의 차관을 제공키로 했다. 이처럼 고르바초프가 서방으로부터 경제지원을 얻는 데 성공하면서 국내에서 그의 입지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군축문제와 관련해서 고르바초프는 “나는 소련에 대해 전쟁준비를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적이 이제는 없다고 본다”고 말하면서 재래식무기 감축에 관한 빈협상은 거의 완결되었으며 전략핵무기를 절반으로 줄이기 위한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곧 합의점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고르바초프는 국제정치에서 앞으로 독·소 관계의 비중이 커질 것으로 예견하면서 독·소조약이 갖는 국제정치적 의미에 관해 “세계의 새로운 비전이 승리를 거두고 있다. 대결의 시대는 끝났으며 유럽과 세계의 면모가 변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콜 총리도 소련과의 조약을 “유럽 평화질서를 위한 또 하나의 주춧돌”로 평가하면서 “유럽 전체와 미국·캐나다를 포함하여 광범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수적” 이라고 강조했다.

 ‘독·소 우호협력조약’은 적어도 1년에 한차례의 ‘고위급 회담’과 두 차례의 외무장관회담, 정기적인 국방장관 회담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현 국경의 인정이 규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독일이 일부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의 불만을 무릅쓰고 소련과 무력포기에 합의한 것은 고르바초프의 ‘유럽공동의 집’ 건설이 일단 독일과의 관계에서 실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소련은 이미 스페인 및 프랑스와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했고 이탈리아와는 조약을 준비중이며 영국과는 협의에 들어가는 등 나토 가맹국들과의 관계개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한편 독일은 소련과의 조약에 서명한 직후 폴란드와 국경조약에 서명했고 폭넓은 우호협력조약을 내년 2월까지 체결하기 위해 막바지 작업에 들어갔다. 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도 독일과 다각적인 협력관계를 수립하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추세는 ‘유럽공동의 집’ 건설과 관련, 중요한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즉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결합이 아니라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는 소련이, 나토에서는 독일이 중심이 되어 쌍무관계를 발전 시켜나감으로써 ‘유럽공동의 집’ 건설의 큰축이 될 것임을 예견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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