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王 즉위식에 들려온 “천왕제를 타도하자”
  • 도쿄· 채명석 통신원 ()
  • 승인 1990.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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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좌파 사제 박격포 공격… 우익은 ‘지위강화’ 움직임

아키히토(明仁) 일본국왕의 즉위식이 거행되던 지난 12일, 도쿄의 중심부는 계엄령이 선포된 거리처럼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른 아침부터 3만7천명의 경찰병력이 즉위식장인 왕궁 주변과 즉위행렬이 통과하는 5㎞의 도로를 두겹 세겹으로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영인파보다 더 많다는 ‘사상최대의 경비진’의 동원에도 불구하고 “텐노(天皇)제 타도” “즉위식 분쇄”를 외치는 극좌 과격파그룹의 파상적인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날 삼엄한 경비망을 뚫고 과격파가 감행한 방화 및 사제 박격포 공격은 모두 36건에 달했다.

 이같이 ‘텐노제’를 둘러싼 좌·우세력의 대립 속에 치러진 일왕 즉위식 관련행사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이른바 ‘상징 텐노제’는 일본사회에 어떻게 정착되어가고 있는가.

 아키히토 일왕은 작년 정초 전왕 히로히토(裕仁)의 사건에 따라 제125대 국왕에 즉위했다. 이때 그는 즉위와 함께 왕위의 상징이라는 3종의 神器(거울 칼 구들)를 계승하는 의식을 치렀다. 이 의식은 당시 일본의 종교계 학계 야당으로부터 神道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종교적 행사로 헌법의 ‘정교분리원에 위배된다“는 비난을 받았다.

 즉위 후 약 2년만에 거행된 이번 즉위식서도 똑같은 ‘위헌논쟁’이 되풀이되었다. 위사실을 일본 국내외에 선언하는이 의식서 “왕위와 함께 계승돼야 할 유서깊은 물건이라는 3종의 신가가 다시 등장해 위헌시비불을 붙인 것이다. 또한 가이후(海部) 총가 일본국민을 대표해서 행한 즉위식 축하사와 만세삼창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 인사하고 만세삼창한 장소가 아키히토왕의 치보다 1.3m나 낮게 책정된 것은 ‘상징 텐노상’보다는 ‘권위주의적인 텐노상’을 재부각시키려는 저의가 엿보인다는 비난도 있었다.

 

야당·학계 “즉위의식 헌법에 위배된다”

 위헌시비의 초점은 22일 저녁부터 23일 아침까지 열리는 ‘다이죠사이(大嘗祭)에 모여지고 있다. 3종의 신기를 계승받는 즉위, 그리고 즉위식을 거쳐 이 다이죠사이를 마치 ’완전한 텐노‘가 된다고 할 만큼 이 의식은 근본 왕위계승의식에서 중시되는 행사다.

 일본정부는 이 의식을 “텐노가 즉위 후 처음으로 햇곡식을 조상에게 공양하며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 이라는 해석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야당은 “신도의 원리에 입각, 텐노가 신이 되는 종교의식”(사회당) 혹은 “텐노가 태양의 여신인 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와 침식을 같이 함으로써 신의 자격을 얻는 종교의식” (공산당) 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일본의 야당과 학계 종교계에서는 왕실의 사적인 정교의식을 공적 행사로 확대해석해 국가재정에서 행사비로 약 26억엔을 지출하고 있는 것은 정교분리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1946년 11월 미점령군사령부의 지시하에 작성된 현재의 평화헌법이 공포되자 일왕의 지위는 “일본국가와 국민이 통합의 상징”이 라는 존재로 한정지어졌다. ‘상징 텐노제’는 약 반세기를 경과하는 동안 우익으로부터는 ‘텐노제 강화압력’을, 좌익으로부터는 ‘텐노제 폐지압력’을 받아오면서도 일반대중으로부터는 폭넓은 지지를 획득해왔다.

 <아사히신문>이 작년초 아키히토왕의 즉위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본국민의 83%가 현재의 ‘상징 텐노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이 대다수 일본국민은 텐노의 지위를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상징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의사를 견지하고 있다. 그 여론조사에서는 텐노의 지위가 현재보다 약화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10%, 강화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4%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 4%다. 이들의 정체는 “현행 헌법을 개정해 텐노를 실질적인 국가원수로 한 ‘텐노제 국가’를 지향한다”는 극우세력일 수도 있다. 또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 문제를 야기시키며 작년 봄에는 각급 학교에 일장기 게양과 기미가요 제창의 의무화, 최근에는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시도하며 부단히 ‘戰前희귀성향’을 보이고 있는 집권 자민당내 수구세력일 수도 있다.

 보수우익세력은 이번 아키히토 일왕즉위식 관련행사에도 깊숙이 관여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즉위식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작년부터 전국 신사조직을 동원, 각지에서 축하행사를 개최해왔다. 또 ‘상징 텐노제’를 명시한 현행 헌법하에서는 처음으로 치러지는 즉위식 관련행사가 신화·종교적 색체가 강했던 다이쇼(大正)·쇼와(調和)의 전례를 그대로 답습하도록 압력을 넣어왔다.

 이들은 일본왕실이 시대적 요청에 따라 개방화되는 이른바 ‘대중 텐노제’에도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패망을 맞이한 아키히토왕은 처음으로 민간인과 결혼하는 전례를 세웠으며 왕실의 ‘父子不同居원칙’을 깨고 2남1녀를 손수 길러 ‘샐러리맨 가정의 가장형’이라는 평도 들었다. 작년 왕위에 즉위한 후에는 시의가 식사 때마다 음식검사를 하는 제도를 폐지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히로히토 전왕에 비해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며 “왕실의 개혁·개방화는 곧 왕실을 세속화시킨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보수우익세력의 집요한 ‘신격화’ 내지는 복고적인 ‘지위강화’ 움직임은 앞으로 부단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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