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돌려 떠나며 재야에 손짓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0.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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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민주 야권통합 대신 부분통합 모색 ··· 갈팡질팡한 재야도 비판 못면해

 야권통합의 결렬을 공식 인정한 민주당 李基澤 총재의 15일 사퇴를 계기로 평민·민주 양당의 ‘결렬 이후’ 대비책이 그 구체적 모습을 드러낼 조짐이다. 야권통합이 사실상 결렬로 판정난 것은 이미 지난 9월 중순께, 평민·민주양당은 구긴여론을 의식해서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명분 축적용 제안만을 거듭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은밀히 결렬 이후를 상정한 대책을 강구해왔다.

 양당이 세우고 있는 대비책은 여차하면 당명까지 바꾼다는 각오하에 재야세력 등 외부에 문호를 대폭 개방, 확대 신당을 창당하거나 제2의 창당을 시도한다는 시나리오까지 발전해 있다.

 

이기택 총재 사퇴는 제2창당 전주곡

 우선 민주당의 경우, 이총재의 사퇴 자체가 사실상 제2창당을 위한 전주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총재의 사퇴결심 배경에는 “이총재의 전략적 사퇴야말로 야권통합 결렬의 책임을 평민당측에 완전히 전가하는 동시에 외부 세력과의 통합에 돌파구를 열 수 있다”는 통합파의 권고가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이총재의 사퇴가 있기 훨씬 전에 민주당의 한 통합파 의원은 “이총재가 사퇴하는 그날이 바로 민주당이 재창당하는 기점이 될 것이며 민주당에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사전 예고한 바 있다.

 통합파 의원들이 제2창당에 끌어들일 수 있다고 장담해온 대상세력은 민자당 내 민주계 일부, 평민당의 서명파 그리고 재야 세력 일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각서유출 파동 때 집단이탈 움직임까지 보여온 민주계 의원들 그리고 김총재의 통합노선과 단식에 반발해온 평민당 서명파 의원들의 경우 이들이 보인 저항이 타당과의 합류를 겨냥했다기보다는 소속당파의 위기에서 비롯된 ‘한계 속의 반발’이었음을 감안하면 합류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집단은 재야뿐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에 비교적 호의적인 입장을 취해온 이부영, 제정구, 유인태 씨 등 통추회의 민주연합파들이 당사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합류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총재 사퇴와 등원거부라는 평민당과의 차별화 전략으로 제2의 창당, 체제 정비를 노린 ‘승부수’는 金光一 의원 등 등원파들의 반발에 부딪혀 그 순항이 불투명하다.

 한편 평민당은 평민당 나름대로 야권통합 이후의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평민당 일각에서는 그동안 김총재가 여러 차례 밝힌 ‘머지않은 시일내에 야권통합구상 발표’와 관련, 당의 간판을 내리고 외부인사를 대폭 영입하는 확대신당의 복안이 머잖아 나올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영입 대상으로는 민주당에 불만을 갖고 있는 일부 원외지구당 위원장, 전민련 및 친 평민당성향인 통추회의의 기독교 운동권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재야세력을 끌어당기기에 초점을 맞춘 제2의 창당, 또는 신당 구상은 야권통합에 실패한 두 야당에겐 ‘꿩대신 닭’식의 차선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신당구상은 통합 결렬의 책임추궁을 피해나가면서 국민을 또다시 기만하는 호도책이라는 일부의 비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즉 통합의 한 당사자였던 재야세력 일부를 끌어들여 부분통합을 실현시킴으로써 통합의 명분을 일부 충족시키는 한편, 상대당에 대한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같이 양당이 재야영입 소통합을 시도하고 있는 저변에는 그동안 야권통합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自黨이기주의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재야의 책임도 크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재야세력이 평민·민주 양당의 결합을 유도할 산파역을 자임하며 ‘범민주통합추진회의’(통추회의)를 발족한 것은 지난 6월28일. 그러나 87년 대통령선거에서 친DJ 대 반DJ 로 갈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던 그 세력들이 한데 모인 집단이라는 점에서 이 재야세력이 과연 언제까지 행동통일을 유지할 수 있을지 저으기 의문시돼왔다. 또 확고한 대중적인 지지기반을 갖지 못한 채 70년대식의 ‘재야의 도덕성’만을 내건 한줌의 명망가들이 양정당에 발휘할 수 있는 현실적 정치력이 과연 어느 수준이 될지 의혹의 시선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통추회의측도 이런 비판을 감안, ‘객관적 중립성과 행동통일’을 전면에 내걸었던 것이나, 두차례에 걸쳐 내놓은 협상시안을 양측에 설득하는 과정에서 정치력의 미숙을 드러냈다. 게다가 김관석 대표의 마지막 협상안마저 ‘내부수렴을 거치지 않은 평민당 편향’이라는 민주연합쪽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 통추회의 발족 넉달반만인 지난 13일 기독교운동권이 대거 이탈하고 민주연합쪽이 ‘국민적 운동방식으로 전환’을 선언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같은 재야의 양당 편향성과 정치력의 미숙은 결국 양당으로 하여금 ‘재야는 우리것’이라는 아전인수식의 인식을 갖게 만들었고, 마침내는 최근 거론되고 있는 평민·민주의 신당 창당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야권 일각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사정이 급해지면 야권통합론이 부활한 것으로 낙관하기도 한다. 오히려 그때야말로 사소한 문제에 매달리지 않고 본질적인 야권통합이 가능하리라는 원칙론이다. 그러나 이번 야권통합 과정에서 드러난 양당의 自黨이기주의와 재야의 정치력 미숙은 야권통합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확신쪽으로 기울게 만든다. 설사 야권통합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오래가지 못하며, 오히려 또다른 갈등을 예고하는 임시봉합에 불과하리라는 비관론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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