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습 당한 ' 역공작'
  • 김당 기자 ()
  • 승인 1994.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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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매 간첩 조작'폭로에 공작 시비 휘말려

자기가 안기부 프락치라고 밝힌 백흥용씨의 '남매 간첩 조작'양심 선언은 안기부가 끄나풀을 내세워 '분홍색'또는 '흰색'을 '빨강색'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준다. 백씨는 말로만 듣던 이른바 역공작의 가능성을 내보인 셈이다.

역공작이란 용어는 92년 대통령 선거 직전에 터진 이른바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에서 관심을 끌었다. 아직도 숱한 의문점이 남아 있는 이 사건을 역공작으로 보는 핵심 고리는 이선실(여.북한 권력서열 22위)의 실존 여부이다. 당시 안기부 발표에 따르면, 북한은 한국에 지하당 조직을 만들려고 이 장관급 거물간첩을 남파해 김낙중.황인오 등을 포섭했다는 것이다.

물론 김씨가 돈(공작금)을 받고, 황씨가 방북(밀봉교육)한 것은 당사자들도 법정에서 인정한 움직일 수 없는 간첩 혐의이지만, 문제는 그 돈을 전달하고 동반 월북케 한 이선실이 과연 북한에서 보낸 거물 간첩인지는 법원에서도 규명되지 못했다. 어쨌건 안기부는 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핵심 고리인 이 '할머니'를 놓쳤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재야에서는 당초부터 존재하지 않은 가상의 간첩이기에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라는 반론을 폈다.

한편 김삼석.김은주 남매 간첩 사건의 경우, 김씨 남매는 비록 대학가 등 시중에서 복사본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이른바 이적 표현물을 조총련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혐의는 법원에서 유죄를 인정받았다. 문제는 그 사이에서 중간 연락책 노릇을 한 백흥용씨가 안기부 프락치라고 고백한 것이다. 백씨의 양심선언에 따르면 안기부에 포섭된 백씨의 역할은 한총련과 조총련, 사민청과 조총련을 연계시키는 것이었다. 이 양심선언이 사실이라면 김씨 남매는 순진하게도 '역공작의 덫'에 걸린 셈이다.

그러나 김은주씨가 집행유예로 풀려나오고 프락치(안기부에 따르면 제보자) 백씨가 양심 선언을 한 것에서 보면 문제의 '덫'은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처럼 탄탄하지는 못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그만큼 안기부의 역공작이 허술했다는 의미가 된다. 흰색을 빨강색으로 조작했다는 것이 당사자와 민변의 주장이라면, 분홍색을 빨강색으로 만들지도 못한 채 프락치 공작 시비에 휘말린 점이 안기부가 인정하기에는 너무 고통스런 실책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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