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핵폐기물, 공포대상 아니다
  • 김제완 (서울대교수·본지객원편집위원) ()
  • 승인 1990.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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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사태, 과학지식 ‘홍보부족’에서 비롯

습관적으로 저녁 뉴스를 보려고 텔레비전을 켜는 순간 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이 전격 경질되었다는 보도가 귓전을 스쳤다. 아나운서는 담담한 어조로 안면도 사태의 책임을 지고 해임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정장관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과학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날의 다른 모든 뉴스가 희석되어 버릴 정도로 그 짤막한 발표가 퍽 충격적이었다. 민주화 시대라는 도도한 물결 속에서 과학의 홍보부족으로 일어난 불행한 사태라는 생각이 언뜻 떠올랐다. 원자력 발전의 부산물인 핵폐기물에 관하여 일반 국민이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필요 이상의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닌가.

 지난 19세기는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전기와 자기의 이론을 만들어낸 시대였다. 헤르쯔(Hertz)의 실험을 통하여 전자파를 검증함으로써 자장(磁場)의 변화가 전력을 유도한다는 막스웰 방정식(전자기 법칙을 지배하는 마스터 방정식으로써 영국의 물리학자 J.C. Maxwell의 이름을 딴 방정식)이 정립된 시대였던 것이다. 막스웰 방정식의 일부인 화라데이의 법칙에 의하여 자장 속에서 전기회로를 돌리면 자력선(자석에서 나오는 힘을 가시화한 가상의 선)의 변화가 일어나 전력이 나온다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은 20세기 과학의 자산

 수력차를 이용하여 터빈을 전자장 내에서 돌림으로써 전력을 끌어내는 수력 발전소는 19세기 기초과학 연구의 부산물이다. 그러나 수자원은 제한되어 있고 석탄이나 기름을 이용하는 화력발전 역시 지하자원 자체가 무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 아황산가스 같은 부산물이 지구의 환경을 변화시킬 정도로 다량 배출되고 또 악성이므로 이제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마담 퀴리, 벡크렐씨 등이 대체연료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원자력 발전은 후세에 물려줄 20세기 과학의 자산이 되었다.

 수력이나 화력 대신 원자핵 깊숙이 들어있는 에너지를 추출하여 발전기의 터빈을 돌리는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는 것이 원자력 발전이다.

 19세기가 전기와 자기의 이론을 기초하여 20세기의 찬란한 전기문명(전파, 컴퓨터)의 토대를 이룩한 시대였다면 20세기는 한 발 더 나아가서 물질 속 깊숙이 숨어있는 원자핵과 더 깊숙이 있는 소립자(물질의 궁극적인 요소)의 이론을 개척하는 기초과학의 시대라 할 수 있다.

 모든 원자핵은 양성자(수소원자의 핵으로 +전기를 띤 입자이며, 무게가 10g에 불과한 가벼운 입자이다)와 중성자(양성자와 질량은 거의 같으나 전기는 띠고 있지 않다)의 복합체이다. 예를 들면 헬륨 원자핵(알파선의 구성요소)은 두 개의 양성자와 두 개의 중성자로 되어  있다. 한 개의 양성자로만 이루어진 수소에 비하여 중수소는 한 개의 양성자와 한 개의 중성자로 되어 있다. 중수소의 질량은 수소의 두배이지만 화확적인 성질은 수소와 같다. 이처럼 양성자의 수는 같지만 중성자의 수가 달라서 그 잘량수가 다른 원소들을 동위원소라고 하며 화학적 성질은 같다.

 동위원소들 가운데 중성자수가 과잉이어서(일반적으로) 불안정한 핵이 있다. 이러한 방사선 동위원소는 더 안정된 핵으로 붕괴하면서 중성자, 전자 및 감마선을 방출하며 이때 방출되는 에너지로 터빈을 돌리는 것이 원자력 발전이다.

 원자력 발전에는 우라늄 235(기호로는 U²)가 사용된다. 자연에 있는 우리늄 중에서 극히 일부인 우라늄 235를 농축한 후 중성자로 가격하면 우라늄 236이 되며 이 불안정한 우라늄 236은 분열하면서 몇 개의 중성자를 방출하는 동시에 에너지를 방사선의 형태로 방출한다. 이 반응에서 나온 중성자가 다시 우라늄 236을 만들고 이런 반응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된다(Chain reaction이라고 함). 이렇게 에너지를 방출하고 남은 우라늄의 등위원소와 위의 반응 과정에서 생긴 다른 원자핵들은 모두 불안정하므로 방사선 동위원소이며, 살인적인 감마선 등을 방출하므로 인체에 해롭다.

 

방사능 방출, 과학으로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감마선은 본질적으로 짧은 파장의 전파이므로 이를 차단하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대 과학자들은 핵반응을 원리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므로 핵반응을 이용하여 방사능의 수명(반감기라고 함)이 긴 ‘트란스 우라늄’ 같은 핵 폐기물을 처리하여 수명을 몇 개월로 단축시킬 수 있다.

 모든 방사물질은 중간처리하여 방사선을 막을 수 있는 물질(예를 들어 포세린)로 포장한 후 드럼통에 담아 지하 깊숙이 묻으면 안전하게 처리될 수 있다. 표에서 보듯이 원자력 발전소 부근의 방사능은 안전하다. 많은 나라가 폐기물 처리를 하고 있지만 아직 피해사례가 없다는 점이 이를 웅변해주고 있다.

 하지만 ‘핵 폐기물은 죽음의 방사선’이라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마치 서울고 부산간의 비행기 여행이 자동차 여행보다 사고율이 적고 안전하다는 통계에도 불구하고 비행기에 타면 본능적으로 불안해지는 것과 같다. 핵 폐기물이 공포의 대상이 아님을 설득하면서 “그래도 지국는 도는데‥·”라고 중얼거리던 갈릴레오의 기분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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