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실따라 ‘닮은 꼴’
  • 여운연 기획특집부 차장 ()
  • 승인 1992.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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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표정 따라짓기가 동화 요인

 올해로 결혼생활 15년째인 최희현(47 · 사업) · 지금숙(42 · 국민학교 교사)씨 부부는 주변사람들로부터 “꼭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이 부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별달리 닮은 데라곤 없다. 그런데도 이들을 처음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너무 닮은 꼴이라며 감탄한다.

 부인 지금숙씨 말을 들어보면, 결혼 후 6~7년까지만 해도 남편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날 사진을 들여다보니까 과연 자신이 생각해도 두 사람이 너무 닮게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최씨 부부는 지난해 한 여성지가 주최한 ‘사랑의 닮은 부부찾기’ 콘테스트에 참가해 ‘다복상’을 받기까지 했다.

 “닮았다는 건 바로 사랑이 무르익었다는 증거”라며 금실을 과시하는 이들은 ‘공인된 닮은 부부’가 된 후부터는 부부간의 일치감이 더해진 것 같다며 활짝 웃는다.

 사람들은 서로 닮은 신혼부부를 보면 “앞으로 잘 살 것”이라며 덕담을 던진다. 전혀 다른 모습의 부부도 서로 기대가며 오래 살다보면 모습이 닯아간다고들 한다. 전혀 이질적인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어 살면서 서로 닮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과학적 근거로 이를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미국의 심리학 전문지에 게재된 한 보고서는 눈여겨볼 만하다.

美 심리학자, 뇌의 혈류와 상관 관계론 주장
 미시간대학 심리학 교수 로버트 지온즈 박사가 25년 이상 해로한 50~60대 부부 24쌍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결혼 초엔 전혀 공통점이 없었던 부부의 모습이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엔 비슷한 분위기를 보였으며, 더욱이 결혼생활이 행복할수록 닮은 정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조사 대상 부부의 현재 모습과 신혼 초 사진을 비교한 지온즈 박사는 부부가 닮는 이유를 수십년동안 서로 희로애락의 감정을 함께 나누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배우자의 얼굴 표정을 무의식적으로 흉내내게 되는 것이 부부동화의 큰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얼굴표정에 따른 근육의 이완과 수축은 뇌의 혈류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가령 미소를 지을 때는 행복한 느낌을 자아내는 뇌물질이 분비되고, 그 표정을 따라짓는 상대방에게도 동일한 감정이 솟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얼굴표정을 따라 짓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감정이입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얼굴표정과 뇌의 혈류와의 상관관계는 지나친 비약이란 반박의 소리도 높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는 사람과 같은 표정을 짓게 된다는 데는 이의가 별로 없다. ‘금실좋은 부부는 서로 닮게 마련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한국임상심리치료센터 이진우 원장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형제가 닮는 것도 우생학적 요인 때문이지만 환경과 여건이 매우 비슷하다는 측면에서도 설명돼야 한다는 얘기다. 환경과 배경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살면서 서로 깎여지고 맞춰가다 보면 식성에서부터 사고방식 신념 철학에 이르기까지 비슷해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는 것이다. 87년부터 ‘부부치료 아내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이원장은 “실제로 문제가 있는 부부를 만나면 자신의 일을 고집하고 융화되기를 거부한 탓인지 첫인상부터 다른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배우자 선택시 용모의 조건을 두 경우로 분류하고 있다. 김애순씨(서울신학대 강사 · 심리학)는 미국의 심리학자 머스타인의 조사를 예로 설명한다. 하나는 첫 인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자기와 닮은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 경우다. 또 하나는 일종의 보상심리로 자신이 갖지 못한 부분을 상대방으로부터 구하고 거기에서 심리적 충족감을 느끼며 닮아가는 부류가 있다는 것이다.

 부부관계를 연구하는 박미령씨(수원대 강사 · 가족학)는 “부부가 닮는다는 것은 과학적인 얘기는 못 되나 두 사람이 잘 적응하고 있다는 하나의 척도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외모가 닮았다는 것은 분위기가 표정, 태도가 비슷하다는 것인데 이는 서로에게 반감이 없다는 뜻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얼굴은 그 사람의 ‘얼의 꼴’이라고 한다. 그 사람의 생각 말씨 생활습관 행동양식이 얼굴에 반영된다면 한 울타리에 사는 부부의 모습이 닮아가는 것은 자연스런 풍화작용의 결과로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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