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당한 헝가리 개혁
  • 부다페스트 금성진 통신원 ()
  • 승인 199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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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치솟고 기업은 도산 직전 택시는 길 막고 시위

인구 2백 10만의 도시 부다페스트가 정적에 휩싸였다. 지하철을 제외한 모든 대중교통수단이 멈췄다.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다뉴브강의 8개 다리 중 7개가 그 기능을 잃었다. 개혁의 열기만큼이나 떠들썩했던 다운타운 바치거리는 통행인의 발길마저 뜸하다. 슈퍼마켓마다 넘치던 빵마저 찾기 어렵게 됐다. 동유럽 개혁의 기수 헝가리가 멈춰 서버린 것이다. 이것이 개혁 1년을 맞은 헝가리의 요즘 모습이다.

개혁을 시작한 이래 헝가리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경제전쟁'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이번 '전쟁'은 지난달 25일 헝가리 산업무역부가 휘발유값 60% 인상을 전격 발표함으로써 불붙기 시작했다. 인구 1천1백만에 1백60만대의 차를 가진 나라. 유가 인상이 물가에 끼칠 영향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날 저녁 택시운전기사들은 시위에 나섰다. 시민들은 아무런 불평없이 묵묵히 텅빈도로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지난 1월 물가 50% 인상이라는 충격을 당한 헝가리인들은 그동안 계속해서 천정부지로 오르기만 한 물가고를 고스란히 감내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정부와 택시노조측이 이튿날 오전 국회에서 마주 앉았다.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했다. 입원중인 요제프 안탈 총리를 대신한 발라즈 호르바트 내무장관은 즉각 모든 법적 수단을 통해 질서를 회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기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산도르 바르나 부다페스트 시경국장은 시위대 체포명령이 하달될 경우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국민의 것이라는 부연설명을 하면서 이에 호르바트 장관도 한걸음 물러서 사태는 다시 호전됐다. 자유민주연합 출신의 아르파드 건츠 대통령도 성명을 통해 정부의 유가인상 연기와 시위대의 일상생활 복귀를 요구했다.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은 사바차그히드(자유의 다리)를 자신의 택시로 막은 한 운전기사는 사태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는 유가를 1l당 35.88포린트에서 59.50포린트(약 1달러)로 인상했다. 소련의 유가인상과 硬貸에 의한 대금결제 요구, 페르시아만 사태 등으로 유가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국제유가 변동과 하등 관계없는 세금이 1l당 12.90포린트나 인상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정부의 정책에 배신감마저 느낀다."

실제로 건츠 정부가 집권초에 내놓은 경제전망을 보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최소한 7년간 실질소득은 급격히 감소하리라는 것이다. 게다가 산업구조가 재편되면서 헝가리의 기업들은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종업원 30만명의 대 전자회사 비디오톤, 동유럽권 최대의 버스 제작사 이카루스까지 파산 일보 직전까지 와있다. 실업자 급증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문제는 이것이 종착점이 아니라 길고 긴 터널의 시작이라는 데 있다." 시위현장에서 만난 한 시민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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