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당권' 연말이 고비
  • 박중환 정치부차장 ()
  • 승인 199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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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꾸중'으로 계파갈등 일단 잠잠 민정 공화계 호락호락 않을 듯

국민의 질시에도 아랑곳없이 '제살뜯기' 집안싸움을 벌여온 민자당은, 만신창이의 아픔을 씻기 위해 일단 '진정제 투약'을 택했다. 그러나 진정효과란 시한이 있는 법. 그 약효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또 그새 마구 헤어진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국민 대다수가 저으기 미덥지 않은 눈으로 주목하고 있다.

진정제는 약효가 있을 동안 통증을 잊게 하는 것일 뿐이다. 우선 내각제 개헌 시비를 둘러싼 내분은 잠재운 듯하다. 그러나 민자당의 앞길에는 여전히 '산 넘어 산'이 버티고 있어 내분 해소는 간단치 않을 듯하다. 대통령중심제하에서 93년 대권경쟁을 한다면, 부딪혀야 할 첫 '산'은 92년 봄의 14대총선에 내보낼 민자당의 의원후보 공천이다.

길목을 지키려는 세 계파간의 몫싸움 재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봉우리를 설령 무난히 넘는다 해도 또다시 부닥쳐야 할 두번째 봉우리는 더욱 가파르고 험난할 수밖에 없는 민자당의 차기 대통령후보 경선이다.

 

파란 몰고올 대통령후보 경선

盧泰愚 대통령은 9일 차기 당권구도와 관련해 "차기 대권후보는 대통령의 임기종료 1년 이내인 시점에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될것"이라고 처음으로 밝혔다. 이 언급을 고려해 앞으로의 일정을 예측해보면 당내의 파란이 92년 연초부터 늦어도 그해 늦여름 사이에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예측은 14대총선이 13대국회 임기만료 시일인 92년5월29일 이전 5개월이 되는 91년 12월29일 사이에 가능하므로, 92년 연초부터는 14대총선의 후보결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또 노대통령의 임기 종료 1년 전이란 92년 2월25일이므로 차기 총재와 대통령후보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는 결국 14대총선과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차기 총재와 대통령후보를 총선 전에 결정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 노대통령이 14대 총선 전 총재직을 넘겨줄 경우 의원후보의 공천권을 행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른바 레임덕 현상의 가속화로 그의 임기 말년이 불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92년 5월은 민자당 창당 2돌을 맞아 당헌에 명시된 정기 전당대회를 열어야 할 시점이고, 이 자리에서 임기 2년인 총재직을 내놓도록 민자당의 일정표가 이미 짜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제반여건을종합하면 결국 92년 1월중 총선에 내보낼 후보를 결정한 뒤 3월중 14대총선을 치르지 않겠느냐 하는 분석이 나온다. 4~5월은 학원시위 계절이란 점에서 가급적 피할 것 같고, 결국은 5~6월중 전당대회를 열어 차기 총재와 대통령후보를 결정할 것 같다. 물론 이런 분석은 조기총선이나 지자제선거와 관련돼 생길 수 있는 정치적인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민정  공화계 청와대회의 후 '침통'

이같은 정치일정이 큰 파란없이 진척된다 하더라도 민자당내 3계파간의 몫싸움은 '산 넘어 산'을 넘을 때마다 재현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민자당이 92년 하반기까지 겪어야 할 이런 구절양장의 행로는 최근의 집안싸움 후유증을 진정요법만으로 다스릴 경우, 끝내 어느 한 계파가 뛰쳐나오는 파국으로 치달릴지 모른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당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소집한 '비상' 민자당 당무회의에서 '비상한' 어조로 밝힌 발언과 그 분위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발언은 바로 이런 파국이 6공화국의 위기로 직결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의에서 노대통령은 김영삼 대표와 당3역으로부터 간략한 당무보고를 들은 데 이어 "내각제개헌 문제를 꺼내 더이상 당내 불협화음을 만들지 말라. 김영삼 대표를 중심으로 대동단결하라. 앞으로 당의 기강을 해치는 사례를 엄중히 다루겠다"고 일갈했다.

거의 혼자 이야기하는 분위기로 끝난 이날 회의에서 대통령은 "김대표가 국정을 알도록 조치하라"고 명령성 당부를 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당직자들이 전하는 회의 분위기는 소속 계파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노대통령의 어조와 분위기가 과거 청와대 회의 때와는 사뭇 달랐다는 데 일치하고 있다.

이날 회의 분위기를 설명해주는 한 예는, 공화계의 金仁坤 의원이 회의 끝머리에 발언을 요청하며 손을 들자 노대통령이 "발언권을 주지 않았다. 회의에는 질서가 있고 권위가 있는 법인데 너도나도 발언을 하려 해선 안된다. 할말이 있으면 내 방으로 찾아와서 이야기하라"고 잘라 말했다는 점이다. 이 바람에 내각제개헌을 강력히 주장해왔던 민정  공화계 참석자들의 자세가 굳어졌고, 결국은 침통한 표정으로 청와대를 나왔다는 것이다.

민주계의 ㅎ의원은 "몇가지 문제를 이야기하려고 준비해 갔다가 말도 꺼내지 못하고 나왔다"며 노대통령의 비상한 결심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이후 민정  공화 두 계파의 내각제 개헌 주장이 쑥 들어갔고 당권을 둘러싼 세 계파간의 시비도 진정된 듯하다. 김대표의 '마산행' 이후 탈당을 주장했던 민주계 소장의원들조차 이미 준비한 탈당서명서 제출을 유보하고 김대표가 "연말까지 참고 지켜봐 달라"는 달램에 못이기는 척 자중하고 있는 형편이 됐다.

그러나 이런 겉보기와는 달리 각 계파 마다 속앓이는 여전하다. 속앓이의 핵심은 김대표의 위상을 높이 세워주고 싸고도는 듯한 노대통령의 이같은 결심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을까 하는 데에 쏠려 있다. 일부 민정계 의원들은 당권과 관련해 모종의 밀약이 있지 않았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이번 발언의 진의를 확인하려고 귀를 기울이는 눈치이다. 김대표최고위원이 마산에서 버티고 있을 당시, 민정계의 몇몇 의원이 노골적으로 민주계와의 결별을 주장하며 "노대통령이 '무단가출한' 김대표를 귀가시키기 위해 밀약을 할 경우 우리가 먼저 떠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돋운 적도 있다.

이런 점에서 민정계 의원들은 5일 청와대 노  김 단독회동 직후 崔昌潤 청와대정무수석비서관의 발표내용과는달리 이 자리에서 이른바 '책상밑 거래'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노  김간의 구체적인 '거래내용'을 캐기 위해 촉각을 세우고 있다.

 

“노  김 밀약 있을 수 없다"

그러나 9일 청와대 당무회의 이후 민정계 의원 사이에는 공개적으로 모여 계파의 목소리를 맞춰나가려는 집단행동은 거의 사라졌다. 8일 밤만 해도 이들은 끼리끼리 모여 차기당권 경선 때 민정계의 주자를 계보내에서 내지 못할 경우 외부영입을 해서라도 김대표에게 차기당권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말을 맞추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사실상 당권과 의원후보 공천권을 쥐고 있는 총재이자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길들여진 여권의 생리로 볼 수 있다.

민정계의 의심과는 달리 민주계 역시 은연중에 뭔가 '거래'가 있었을 것으로 보거나 김대표가 모종의 확약없이 그토록 쉽사리 당무에 복귀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고 싶어하는 눈치이다. 민주계의 ㅈ의원은 "김대표가 민주계의 탈당서명 의원들에게 연말까지 지켜본 뒤 결정하자고 말한 것은 5일 청와대 단독대좌 자리에서 김대표 중심으로 당의 기강을 바로잡아나갈 수 있는 모종의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김대표가 불과 2개월도 남지 않은 연말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시한으로 정해 설득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좀더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노대통령과 김대표 모두 민자당이 이대로 가다가는 함께 망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데서 나온 당연한 결론으로로 봐야 한다." 그는 9일 청와대 당무회의에서 노대통령이 "김대표 중심으로 당을 운영하라"고 지시하면서, "나도 30년간 야당생활을 하다 여당에 들어왔다면 김대표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발언한 내용을 상기시키며 "5일 청와대단독대좌에서 두분 사이에는 어떤 확신이 있었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연말까지'라는 김대표의 시한 제시에 대해 "김대표가 국회를 정상화시켜 연말까지 예산심의 등 현안을 처리해나가면서 당내 갈등을 해소해 나간다면, 여권의 생리상 2인자  당 운영권 확보  차기 총재지명  대권후보라는 진로를 보장받는 데 어렵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야권 후보로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가 나올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김대표가 여권의 후보로 나서는 것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지 않느냐"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3역 중 한사람인 민정계 중진은 "노대통령이 김대표와의 단독회동 자리에서 어떤 밀약을 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노대통령이 5공화국하에서 2인자로 있을 당시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진솔하게 털어놓으며, 김대표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시켰고 김대표도 이에 공감하는 차원에서 당무복귀를 결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설명에는 민주계가 '모종의 확약'을 믿고 싶어하고 있는 데 대해 제동을 걸려는 뜻이 깔려 있는 듯하다.

아무튼 민주계는 이같은 자위적인 낙관론을 펴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민정계와 공화계 의원들이 호락호락하겠느냐 하는 우려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여기서 민주계가 가장 우려하는 바는 김대표가 노대통령에게 또다시 말려 이용당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분당에 서명한 한 민주계 의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합당 이후 김대표는 초계파 차원에서 당을 운영해보려고 심지어는 민주계 의원들을 의식적으로 소외시키기까지 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김대표를 고사시키려 하지 않았는가."

그는 5일 청와대 단독대좌와 9일 청와대 당무회의 결과에 대해 "민주계 일부 의원들은 김 대표가 무언가 보장을 받았다고 이야기하지만 받은 것은 없다. 노대통령이 준 것이 없을테니, 김대표도 받은 것이 없었던 셈이다. 민정계나 공화계가 3당합당 정신인 민주화와 개혁의지를 갖지 않는 한 한집살림은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입조심’ 경고 이후 공화계 전전긍긍

그렇다면 공화계는 어떠한가. 한마디로 매우 불만스럽지만 드러내놓지는 못한 채 냉가슴을 않고 있다. 오로지 내각제 개헌에 전력을 다했던 金鍾泌 최고위원이 청와대 당무회의 자리에서 "앞으로 내각제라는 말을 꺼내지 말라"는 노대통령의 언명을 듣는 순간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고 한 참석자는 전하고 있다.

더구나 공화계 김인곤 의원의 발언요청에 대해 노대통령이 "직접 찾아와서 이야기하라"는 식으로 말문을 막게 했다는 점도 시사하는바 크다. 공화계 의원들은 최근 김종필 최고위원의 '입조심' 경고 이후 거의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지 않은 채 김최고위원의 '묘한 침묵'에 주시하고 있다.

3계파의 각각 다른 속앓이는 서로의 이해를 조정해 호흡을 맞춰나가지 못할 경우 머지 않아 바깥으로 터져나올 것이라는 것이 3계파의 공동된 견해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자당내 영향력이 큰 한 민정계 중진 의원의 발언이 주목된다. "이대로는 93년까지 정치를 끌고가긴 힘들 것 같다. 내년 봄 국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실시해 새로운 정국을 만들어 내든지, 아니면 지자제선거라도 실시해 국민합의를 찾아야만 될 것 같다."

발언의 심도로 미뤄 단순한 푸념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당면한 정치적 한계를 뚫고나갈, 비상탈출구를 찾는 어떤 조짐이 엿보이는 발언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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