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민 바라보며 진로선택 고심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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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비주류 "등원검토" 조심스레 거론 통합파는 "선명성 높여 당 위상 찾아야"

어떤 길을 택해야 하나. 내각제 각서 유출을 둘러싼 정치권의 대파문이 미봉책으로나마 일단 수습되고 민자  평민간 등원협상이 재개되면서 민주당의 현실적인 고민이 시작되고 있다. 민주당은 영광  함평보선에서 압승한 평민당의 등원을 '기정사실'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인식 아래 최근 민주당내에서 그동안 금기시되어왔던 등원문제가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지난 10월중순 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서 잠깐 고개를 내밀었다가 내각제 파문이 터지면서 '노정권 퇴진, 조기총선 요구'의 강경 분위기에 밀려 잠복했던 이 주장이 다시 제기된 것은 노태우  김영삼 청와대회동을 앞둔 6일 정무회의에서였다. 물론 이 주장은 소수의견에 그쳤고 그 수위도 "내각제 포기 방침이 분명하면 한번쯤 등원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한다"는 선에 그쳤다. 그러나 당내외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등원론'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평민당 등원을 전제로 등원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쪽의 가장 큰 명분은 우선은 '국민여론'이다. 즉 사퇴정국이 장기화되면서 정치복원을 바라는 국민여론이 강력하게 형성된 판에 평민당이 등원할 경우 민주당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거나 잊혀지고 만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내년 2월께로 잠정적으로 잡혀 있는 지방의회 선거도 등원 불가피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민주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소수야당이, 더구나 원외에서 선거를 치른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현실적으로 국회에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털어놓는다.

등원론은 애당초 통합파 의원들의 사퇴서 제출과 야권통합 논리에 반대해온 朴燦鍾  金光一 의원 등 당내 비주류그룹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등원 주장의 기저에는 사퇴정국 이후 당을 주도해온 소장파를 향한 비판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李哲  盧武鉉 의원 등 통합파 의원들은 이 기회에 당의 선명성 강화를 통해 제위상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 등원 불가론을 고집하고 있다. 이들의 등원 불가론은 아직도 민자당이 내각제 관철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고 사퇴 당시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인식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이철 의원은 "민자당이 내각제 개헌을 포기했다손치더라도 국회가 바로 제자리로 돌아가 산적한 민생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전제하고 "지자제 외의 모든 것은 민자당 뜻대로 될 것이므로 평민당은 등원하더라도 더 큰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못박는다.

 

“이총재 용퇴로 돌파구 열자" 주장도

정치적 명분만이 아니라 당리당략의 차원에서도 장외가 더 낫다는 게 통합파들의 주장이다. 설령 국회에 들어가도 8인의 '미니정당'이 양당구조하에서 무력하기는 마찬가지인 만큼 '당분간 장내 실종'을 감수하면서 평민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얼마 남지 않은 차기 총선에 대비하는 게 장기적으로 유리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또 등원의 현실론으로 제기되는 내년 2월의 지자제 선거만 하더라도 13대 국회 포기가 곧 의회민주주의의 포기는 아니므로 장외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통합파 일부 의원들은 최근 민주당의 차별성  선명성을 부각시키고 민주당의 활로를 모색하는 돌파구로 李基澤 총재의 용퇴를 은밀히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퇴정국 이후 당내 주류를 형성하며 이총재를 적극 보필해온 소장파들의 이총재 퇴진 건의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노무현 의원은 "이총재에게 야권통합 결렬의 정치적 책임은 없지만 포괄적으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용퇴한다면 무책임한 정치에 염증내는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뿐만 아니라, 통합 결렬이 이총재의 사심에서 비롯된   게 아님을 반증해 줄 것" 이라고 조심스레 밝힌다.

이총재 용퇴는 평민당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게 할 뿐 아니라, 이미 평민당지지세력들이 떨어져나간 통추회의쪽과의 통합을 촉진하는 돌파구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소장파들의 계산이다.

통합파들의 '용퇴론'이 비록 그동안 이총재의 지도노선에 반발해온 비주류들의 '책임론'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지만 사퇴의 실현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것으로 보인다. 이총재의 한측근은 "야권통합을 둘러싼 당내 이견이 상존했던 상황인데 유독 선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무리" 라고 반박하며, "자칫 내분으로 비칠수도 있는 비생산적인 총재 사퇴보다는 조직강화나 문호개방 등의 노력으로 당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간이 갈수록 향후 진로를 둘러싼 민주당의 고민은 본격화될 수밖에 없고, 민주당은 또다시 '8인 8색의 불협화음'에 휘말리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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