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음양론서 벗어나야 한다”
  • 이리ㆍ이문재 기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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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학술토론회에서 강순수 교수 주장…“정체성 벗고 새 분석을 찾아야”


“이제 우리는 선택의기로에 서 있다”. 지난 10월22일 ‘동서의학의 만남’을 주제로 원광대 한의학연구소(소장 강우열 교수)가 주최한 학술토론회에서 한의학의 미래를 전망한 원광대 康橓洙 교수(한의학)는 위와 같이 말하고, 만일 한의학이 과학화를 선택했을 경우 한의학이 취해야 할 첫번째 입장을 “음양론으로 부터의 탈피”라고 밝혔다. 음양의 원리에서 출발하는 한의학이 음양론의 연역체계에서 벗어나자고 발언한 사실은 한단계 한의학의 ‘위기감’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원광대 숭산기념관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에는 강교수 외에 과학자 金容駿 교수(고려대 화공학ㆍ《과학상상》 편집인)와 朴錫漣 박사(명지대 동서의학연구소장ㆍ명지종합병원 원장)가 참석했다. 이날의 주제는 한ㆍ양방 협진제도가 의료계의 쟁점인 상황(본지 154호 ‘찬반’란 참조)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어서 학계와 의료계의 주목을 받았다.

 동서의학이 왜 만나야 하며 그 구체적인 결합형태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모색한 이 토론회는 결국 미래의 한의학, 미래의 인류의학을 내다보는 논의마당이었다.

 

“물체의 과학에서 인간성의 과학으로”

 과학의 역사성에 강조점을 두는 김용준 교수는 발제논문 ‘과학과 인간’에서 서구의과학사가 이원론에서 일원론으로, 물체에서 인간으로 이행하고 있다고 보았다. 김교수는 물질세계에 어떤 질서를 부여한 학문이 뉴턴 물리학이라면, 생물세계에 질서를 확립한 학문이 다윈의 진화론이라고 지적하고 다윈으로부터 생명과학이 출발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세기의 전반부가 물질과학 시대라면, 그 후반부인 현재는 생명과학의 시대”라고 규정한 김교수는 지금까지 논리실증주의의 근거가 되어왔던 분석적, 환원적 패러다임은 분자생물학의 등장과 함께 우연성으로 변화를 겪었으며 이 우연성은 ‘혼돈의 과학’으로 차원을 달리하면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통합적이고 전일적인 새로운 패러다임”인 뇌과학이 자연과학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고 주장했다. 김교수는 르네 듀보의 ‘물체의 과학에서 인간성의과학으로’라는 명제를 인용하면서 과학과 인간의 뗄레야 떨 수 없는 관계를 강조했다. 인간성을 우선하는 과학은 ‘신과학’의 이름으로 묶여지는데, 이 신과학의 패러다임이 한의학의 세계관과 만나는 대목이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과학과 인간의 관계가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 질병의 치료이다. 의학을 최고의 합리적, 이성적 과학이라고 정의하는 박석연 소장은 일찍이 1953년부터 동서의학의 결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40년 가까이 이를 연구, 실제 치료에 적용해왔다. 서양 의학철학의 한계를 동양철학과 동의학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서양의학은 말단 분석에 치중한 의학이다. 과학적 분석 결과를 총괄하는 의학철학이 결여돼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한의학도 완벽하진 않다. 한의학은 중추적이고 종합적이지만 과학적 분석력과 객관성이 결여돼 있다. 박소장은 21세기 인류의 질병으로 떠오르고 있는 본태성(본질성)고혈압과 당뇨병(비인슐린 의존성)을 ‘스트레스병’이라고 새롭게 규정하고, 이 질병의 원인을 한의학의 음양체질론으로 밝혀냈다.

 음양을 기준으로 한 체질론은 한의학에서는 2천년 전에 나왔다는 《황제내경》에서 수립됐고 19세기 말엽 조선의 이제마에 의해 집대성되었다. 그것이 최근 들어 활발하게 재조명되고 있는 사상의학이다. 서구에서는 1909년 빈대학 내과교수 에핑가와 헤스가 주창했으나 곳 外語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한의학 내부에도 체질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없다. 한의학의 가장 큰 허점인 것이다. 박소장은 서양희학의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계를 한의학의 양인ㆍ음인 체질과 결부시킨다. 그리고 교감신경체질이 양인인데(그림 참조), “음인과 양인을 판정하는 기준은 도서의학 어디에도 없다”고 지적한다.

 

“과연 한의학은 우월한 것인가”

 그는 본태성고혈압의 원인을 ‘素地ㆍ誘因說’로 설명한다. 소지 즉 교감신경 우월성체질자(陽人)가 정신적 스트레스와 소금 과잉섭취등의 유인으로 본태성고혈압에 걸린다는 것이고, 본태성고혈압환자 중 약 40%가 당뇨병을 앓는다고 주장했다. 박소장은 질병은 스트레스 반응이 심하고 강할 때 발생한다면서 이를 스트레스 병이라고 명명한다. 이는 태극음양설에서 음양의 균형이 파괴될 때 발병한다는 동양철학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학에는 이 스트레스를 측정하는 방법이 없다. PPT(Pan-Stress Pressor Test, 범스트레스 승압시험)는 그가 독창적으로 개발한 것으로 2분 동안에 교감신경의 긴장정도를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환자의 체질을 판정한다.

 “현대 서양의학에만 집착하면 스트레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다”고 강조하는 박소장은 동서의학이 만나는 ‘전체성 의학’이 미래 인류의 의학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현재 한ㆍ양방 협진제도에서 나타나는 불협화음은 과도기적 현상일 뿐, 서로의 의학철학을 인정하고 연구한다면 전체성 의학은 예상보다 빠르게 뿌리를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강순수 교수는 한의학자이면서도 한의학의 성과와 한계를 객관적 거리를 두고 접근했다. ‘미래의 한의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그의 발제에는 “하나의 제언”이란 단서가 붙여졌다. 한의학 내에 존재하는 여러 시각들을 수렴한 대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금세기 이래 한의사 제도가 겪어온 ‘험난한 역사’를 돌아본 뒤 “과연 한의학은 우월한가”라고 뼈아픈 자문을 했다. 그는 과학기술 발달과 더불어 “기계론적 경향에 있는 과학기술이 실로 생기론적 견해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견해를 펼치면서, 서양의학은 기계론적으로 한의학은 생기론적이며 생기론은 동양 특유의 사고라는 해석은 오류라고 지적했다.

 강교수는 한의학의 미래를 설정하기 위하여 한의학의 특장과 결점을 다음과 같이 추렸다. 우선 특장은 △인간을 통일된 유기체로 파악한다는 것(생기론) △주관적 증상을 중시해 증후군을 계통적으로 해석, 판단하는 것(辨證論治) △鍼, 灸, 안마를 통해 치료효과를 높이는 것 △자연물을 분석하지 않은 채 배합하여 약으로 사용하는 것(方劑學) 등이고, 이에 견주어 △인체기능에 대한 구체적, 객관적인 知見이 없다는 것(생리학 병리학 해부학 등) △공중보건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미생물학 예방학) △예방치료에 약하다는 것 등이 그 결함이다.

 

“음양론으로는 한의학 발전 불가능”

 음양원리의 연역체계인 한의학은 소극적이고 정체되어 있는 반면, 과학적 귀납체계인 서양의학은 적극적이고 활성적이라고 동서의학을 비교한 강교수는 한의학의 미래를 과학화에서 찾자고 제안했다. 한의학이 과학화할 수 있는 길을 그는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첫째 음양원리의 연력법에서 탈피해야 하고, 둘째 현대 과학지식에 의한 인체의 機轉이론을 수용해야 하며, 셋째 변증논치의 특징도 과학적으로 검토ㆍ재정리해야 하며, 넷째 한약의 과학적 규명과 그 배합의 효능도 재정리해야 한다.

 이어 벌어진 토론에서 한의사, 한의학도들은 강교수의 음양론 탈피 주장에 대해 “그럼 한의학을 포기하자는 것이냐”라며 강력한 의문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강교수는 음양론에서 벗어나자는 주장은 해방 직후 한의학계에서 이미 제기됐던 문제라고 밝히고 “음양론은 완성된 진리이기 때문에 그 아래에서는 새로운 발전이 불가능하다. 현대의학이 규명하지 않기 때문에 한의학이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면서 음양론보다 더 좋은 한의학 분석틀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과학 패러다임으로서의 한의학, 구체적 질병 치료에서의 동서의학의 결합, 그리고 한의학계 내부의 반성 등이 제기된 이날 학술토론회는 동서의학의 ‘행복한 결혼’을 예고했다는 데서 의의를 찾을수 있지만, 그 ‘약혼식’이 언제쯤, 어떻게 치러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그 패러다임 속에서 치열한 해결책이 모색된 뒤에야 가능하다는 김용준 교수의 지적은 한의학의 미래를 가늠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이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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