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분규로 전국이 소란하다
  • 김종환 사회부차장 ()
  • 승인 199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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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곳서 주민들이 저지투쟁 보호대책 외면하고 사업승인 남발한 탓

지난 11월7일자 영자지 <코리아타임스>의 독자편지란에는 한 미국 부인이 한국 관광길에 골프장 건설현장을 지나다 느낀 소감이 실렸다.

“지난 10월1일 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으로 갔습니다. 서울에 사는 딸이 귀하의 아름다운 조국 곳곳에 있는 사적지와 시골로 나를 안내했습니다. 보경사에서 걸어나오던 우리는 광천이라는 마을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광천은 들판에 둘러싸인 예쁘고 깨끗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사진 몇장을 동봉합니다만 나는 그곳에 있는 아름다움과 고요함, 그리고 역사의 정취에 깊은 감동을 느꼈답니다. 여기서 사는 사람들은 분명히 자기네 집과 마을, 그리고 계곡을 굉장히 사랑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기행문이 아니라 이 마을을 도와주자는 호소문입니다. 집집마다 대문에는 '골프장 규탄'이라고 쓴 황색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돈있는 사람이 골짜기를 몽땅 사서 골프장으로 바꾸는 경위에 대해서 나는 아는바 없습니다. 아는 것이라곤 열심히 일하는 농부들이 자기들의 집과 논밭은 물론 생활방식까지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게 될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겠습니까. 야산에 즐비한 선조의 묘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비록 다치지 않는다 해도 선조들은 자기네의 논밭이 망가지는 것을 보고 절대로 평안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귀지는 주요 신문이기 때문에 분명히 영향력이 있을 것입니다. 이 안정되고 건전한 마을이 개성과 생기를 보존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해주십시오. 여기에 골프장을 세우는 것은 틀린 일입니다. 광천을 구원하십시오."

투고자인 캐서린 밀러씨가 말하는 광천 마을은 포항에서 25km 떨어진 경북 영일군 송라면 광천1리. 지난해 10월23일 (주)영일개발이 총면적 93만여평의 골프장 사업승인을 받아 건설을 추진중이다. 이곳은 6공화국 출범이후 사업승인이 난 골프장 1백25개 가운데 하나이다.

체육부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0월말 현재 전국에서 영업중인 골프장은 모두 53개, 승인은 받았으나 아직 문을 안 연 곳은 모두 1백14개에 이른다. 이 숫자는 같은 업체 소유의 회원제골프장과 퍼블릭골프장을 따로 계산한 것이다. 유신말기까지 13개에 불과하던 골프장은 5공시절에는 29개가 청와대의 내인가를 받아 모두 42개가 되었다. 그리고 6공출범 이후 88년 6월 골프의 대중화라는 명목으로 사업승인권을 시  도지사에게 넘겨주면서 무려1백25개가 새로 사업승인을 받았다.

 

6공 들어와1백25개 새로 사업승인 받아

짧은 기간 안에 사업승인이 남발됨에 따라 장기간에 걸친 조사연구가 필요한 환경평가와 공해대책, 골프장 주변 주민 보호대책은 애당초 도외시되고 사업주들의 이익만 대접을 받았다. 이에 따라 건설을 둘러싸고 주민들과 마찰을 빚어 저지투쟁이 일어난 곳만 해도 전국에서 30여개소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업승인권을 시   도에 넘긴 것부터가 문제이다. 5공시절 대통령이 막대한 정치자금을 받는 대가로 골프장 허가를 내주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통치권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가 권한이양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문제가 생기면 시  도지사까지만 처벌되고 그 이상의 선에 책임을 묻지 않게 된 것이다.

지금과 같이 강력한 중앙집권제하에서 종이 한장에 목이 왔다갔다 하는 시장과 도지사는 중앙에서 내려오는 각종 압력과 주변의 유혹에 약할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선산골프장 국공유지 임대 및 형질변경과 관련하여 5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金相祚 전 경북지사의 오직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선산군 주민들은 (주)구미개발이 지난해 5월 경북도로부터 27홀 크기의 골프장 사업승인을 따내자 '선산골프장반대 공동투쟁위원회'를 결성, 면사무소 지서 군청 도청 등에서 시위농성을 벌였다. 주민들의 저항이 심하자 일선 행정기관이 나서 주민들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산동면에선 부지매입실적이 신통치 않자 면장이 "땅을 안팔면 토지수용령이 내려 반값도 못건질 것이다"라고 으름장을 놓아 이틀만에 50여명으로부터 땅을 사는 '실적'을 올렸다고 주민들이 밝혔다.

또 선산군청에선 골프장용지 48만평의 81%에 해당하는 군유지 38만평을 평당 70원도 안되는 헐값에 5년계약으로 임대해준 것이 말썽이 나 부군수 등 5명이 문책을 당하기도 했다. 주민들의 권익보호보다 사업주의 방패막이와 시녀 노릇에 열중하는 공직자의 작태에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도지사 구속 12일 후인 지난 7월5일 선산군민 3백50명이 도청으로 몰려가 골프장 허가취소와 허가 당시 군수의 비리규명 및 처벌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다 강제해산당했다.

 

사업주만 일방적으로 감싸고 돈다

돈많은 사업주를 일방적으로 감싸고 도는 행정 당국에 대해 골프장 부근 주민들이 갖는 불신의 골은 전국 곳곳에 깊이 패여 있다. 경북 영일군에서 골프장 건설 반대 운동을 이끌고 있는 송라면 대전1동 金相吉씨는 "마을에서 불과 3백m 떨어진 앞산에 골프장이 들어서면 생활용수 오염 등 각종 공해가 예상된다. 환경청 기준으로 공동취수장에서 20km, 일반취수장에서 10km 이상 떨어져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허가가 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주) 영일개발이 건설하는 골프장 주변 주민 1백70세대는 착공을 저지하기 위해서 감시초소 3개를 지어놓고 3명씩 교대로 아침 7시에 올라가서 오후 5시에 내려온다고 한다.

골프장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살포하는 농약으로 인한 생활  농업용수 오염 등 건설후의 공해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건설과정에서 주민들이 입는 피해이다. (주)나산관광개발이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에 건설중인 18홀짜리 골프장 건설현장 부근에 사는 한 주민은 발파작업으로 인해 소 돼지 사슴 꿩이 죽거나 유산하고 가옥과 축사에 금이 갔지만 보상이 안되고 있다고 밝혔다. 주민 대표자는 1만2천여 일동 주민의 상수원에서 불과 5백m 정도 떨어진 곳에 골프장이 건설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야산 절개로 인한 산림 훼손도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준다. 새 민방 사업주체로 선정된 (주)태영의 계열사인 태영레저가 골프장을 건설중인 경기도 용인군 원삼면 일대 40여세대 주민들은 지난번 장마 때 산사태가 나 전답은 물론 가옥까지 파괴되는 피해를 입고 사업주에 강력히 항의한 결과 가옥 신축과 가을수확예상액을 보상받았다고 한 주민이 밝혔다.

일단 골프장을 짓기로 결심한 사업주들은 해당지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곳까지 탐을 낸다. 5공시절 골프장이 건설된 대구의 팔공산이 한 실례이다. 이곳의 정기를 타고 났다는 당시 민정당 盧泰愚 대표의 맥을 끊기 위해 건설되었다는 풍문이 아직도 나도는 팔공골프장 때문에 등산로를 잃은 시민들의 불평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부산에서는 최근 서울의 북한산격인 금정산에 골프장을 짓겠다는 사업신청이 시 당국에 접수돼 논란이 되고 있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연탄으로 유명한 삼천리그룹의 금성개발이 부산시 금정구 금성동 동래산성 북문 일대 53만7천평에 총사업비 6백97억원을 투입, 27홀짜리 회원제 및 9홀짜리 퍼블릭코스를 건설하겠다는 내용의 사업승인 신청서를 지난 10월24일 부산시에 제출했다고 한다. 이 업체는 지난해 5월에도 사업계획을 제출했다가 강력한 반대여론에 부딪히자 그해 10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자진철회한 전력이 있다. 이곳은 현행 도시계획법상 골프장을 지을 수 없는 유원지 안에 위치한 데다 사적지인 동래산성과도 인접, 인가가 사실상 어려우나 업주측을 지원하는 힘이 막강해 시장이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게 관측통들의 중론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현지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람이 한 중앙권력기관의 지역 담당 부책임자여서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골프장 건설사업승인의 감독은 체육부 소관이다. 현행 골프장 관리규정에 따르며 시  도지사는 사업승인 신청을 접수하면 지체없이 체육부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 체육부의 실무부서인 사업관리과 成祥宇 과장은 각 시  도의 승인현황을 문의하는 기자에게 "골프장 문제만 나오면 기자들이 왜 야단인지 모르겠다"며 그런 자료는 국회에서 요구하는 등 필요할 때만 작성한다고 밝히기를 거부했다. 비밀사항도 아닌 숫자까지 밝히지 않는 태도를 보면 골프장 건설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사라지기는 힘들 것 같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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