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오름세'타고 수출부진 벗자
  • 김재일 경제부차장 ()
  • 승인 199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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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 자동차 업계 대책 마련 부심 자체기술 신상품 개발 못하며 물거품

엔화강세가 맥풀린 수출에 활기를 불어넣어줄 것인가. 엔화의 가치가 연일 오르는 추세를 보이자 국내 수출업체들은 이를 그동안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는 계기로 삼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다.

지난해 연말 1백엔당 4백72원이었던 엔화는 4월말 4백44원까지 계속 떨어졌다. 그러나 4월말을 고비로 엔화의 가치가 회복되기 시작, 6월초부터 본격적인 강세로 돌아섰다. 9월초에 5백원선을 넘어선 엔화는 11월8일 현재 5백59원을 육박, 계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말 기준으로 엔화의 가치는 26%가 올랐고 우리나라 원화는 그만큼 절하된 것이다.

엔화가 강세로 돌아선 것은 달러 가치의 폭락 때문이다. 지난 4월초 달러당 1백60엔까지 거래되던 엔화는 현재 1백25~l백30엔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에 반해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국제 외환시장에서의 달러 약세와는 상관없이 지난 5월 이후 계속 7백10~7백15원선에 머물고 있어 엔화에 대한 원화의 가치가 큰 폭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금융전문가들은 엔화 강세가 내년 상반기까지, 최소한 내년 1/4분기까지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또 미국과 일본 금융당국의 시장개입이 없다면 연말에는 달러당 1백10~l백20엔, 1백엔당 5백70~5백80원선까지 엔화는 계속 오름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1백엔당 5백50원 이상이면 수출호활"

그러면 엔화강세는 우리 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수출이 대미 달러환율보다는 엔화에 대한 환율변동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분석한다. 일본 노무라경제연구소는 1백엔당 5백50원이상이 되면 한국의 수출이 호황을 이루고 1백엔당 5백원 이하로 떨어지면 수출이 부진해진다고 진단한 바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수출기업이 환율면에서 86~88년의 호경기 때보다 더 좋은 여건을 맞고 있다고 말한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수출전선의 실무자들이 느끼는 것은 조금 다르다. 환율혜택으로 인한 수출증가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엔화강세가 산업 전체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해외시장에서 일본제품과 가격경쟁이 심한 전자제품  자동차 수출은가장 많은 혜택을 볼 것으로 보인다. 대우전자 비디오 카세트테이프 레코더(VCR) 수출부의 尹仁澤 차장은 "엔고현상은 일단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호재라고 볼 수 있다"며 특히 텔레비전보다는 VCR의 수출증가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 전자제품은 우리나라 제품보다 5~10%가 비싸다. 지난 5월 이후 미 달러화에 대한 엔화의 가치가 20% 이상 상승했으므로, 상승분이 판매가격에 반영된다면 우리는 그만큼 경쟁에서 유리해진다. 아직은 일본 전자제품의 수출가격 인상 움직임이 없으나 내년초쯤에는 엔고의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9월 이후 자동차수출이 조금씩 호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엔고 때문이라기보다는 '스쿠프' 등 신종차 수출증가 때문이라고 수출기획부 崔鍾植부장은 분석했다. 그는 "미국시장에서 일본차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므로 상대적으로 조금 유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자동차회사들이 아직까지는 값을 안올리고 축적된 기술과 자금력으로 버티고 있으나 앞으로 2~3% 정도 가격을 올리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그는 전했다. 그러나 낙관할 수만은 없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원자재와 부품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고, 포드  지엠  도요타 등 세계적인 자동차업체들은 불경기일수록 판촉자금을 늘리는 등 공격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일본시장에 수출을 많이 하는 섬유업계에는 엔고의 효과가 곧바로 나타나야 하는데도 현재 별 효과가 없다. 그것은 주요 경쟁국인 중국 상품과 비교해볼 때 가격과 질에서 이미 경쟁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 섬유업체간부는 말했다.

계속되는 엔화강세로 한국상품은 일본상품과의 가격경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게되며, 그 효과는 연말부터 서서히 나타나고 내년 3월께부터 본격적으로 '환율덕'을 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엔고현상으로 일본에서 수입하는 원자재 값이 올라 생산비를 높이게 된다. 이는 물론 전반적인 도매물가 상승요인으로 작용한다. 전문가들은 국내기업의 자체기술 및 신상품개발에 의해 내부 경쟁력을 높이고 수입대상국을 다변화하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환율이 유리하게 변할 때가 구조적 조정의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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