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조작에 법은 '있으나마나'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0.11.2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 법규는 허점투성이 내부자거래 엄벌 · '증관위'에 준사법권 부여해야

어느날부터 특정 주식의 거래량이 급증하기 시작한다. 주가는 크게 상승하지 않으나 거래량은 하루에 1주일 평균거래량을 웃돌 만큼 활발해진다. 주가는 매우 조금씩 올라간다. 주가가 크게 오르면 뇌동매물이 나오지 않으므로 '작전'에 나선 세력은 1백원 정도 올렸다가 조금 떨어뜨려 사들인다. 이제는 아직 남아 있는 주식을 거둬들이기 위해 주가를 더 올려야 한다. '개미군단' 중 인내심이 많은 사람은 수수료와 금리는 챙겨야 팔기 때문이다. 이들마저 해당 주식을 내놓으면 주가는 오르기 시작한다.

조금 더 '먹기' 위해서는 오전장에 상종가로 소량의 주문을 낸다. 11시쯤이면 어김 없이 매물이 나온다. 오후장에서도 계속 상종가로 '사자' 주문이 들어간다. 상종가 행진이 며칠간 계속된다. 이때서야 대부분의 투자자는 전광시세판에서 민감하게 변화하는 이 주식을 주목한다. 그 기업이 "유무상증자를 한다" "신규사업을 한다" 등 호재성 풍문이 그럴듯하게 퍼지는 시점도 이때이다. 이유있는 주가상승으로 위장하기 위한 술책이다. 신중한 투자자도 덤벼든다. 그러나 이때는 개미군단이 잔뜩 달려들어 '사자' 주문을 내도 매물이 없다. 매물은 없는데 '사자' 세력이 많으니 주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바닥 시점에서 주식을 긁어모은 買集세력들은 천정에서 이를 몇번에 걸쳐 팔아치운다. 주식매집은 보통 3~4개월걸리고 팔 때는 통상 10여일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싸게 사고 주가가 꼭대기에 있을 때 빨리 팔아치워야 좋지만 많은 물량을 일시에 소화하기가 어렵고 감독 당국의 손길에 포착되기도 쉽다. 매집세력은 자본금이 적어 조작하기 쉬운 중소형 주식을 고른다. 대주주와 유착하면 작전은 더 쉬워진다. 작전이 성공리에 끝나면 이들의 손에는 엄청난 시세차익이 들어온다. 그리고 주가는 대폭락한다. 소액투자자들의 돈이 특정 매집세력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런 흐름을 타는 것이 '큰손의 책동전'이다.

 

“비전문가가 일으킨 작은 규모의 사건"

지난 2일 증권관리위원회(증권감독원의 최고의결 기구)는 진영산업 등 6개사 주식값을 조작한 梁會聲씨 등 6명을 시세조정 등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발표했다. 梁씨와 宋順德씨, 李漢?씨 등 전문투기꾼 외에도 상장사 대표가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삼성신약 대표 閔丙麟씨, 진영산업 대표 林炳九씨 등 상장회사 사장들이 기업경영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자사주가를 조작하는 비도덕성을 드러낸 것이다. 이들이 동원한 자금은 상호신용금고에서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은 1백20억원 등 2백억원 정도. 이들은 유동주식수가 적은 경일화학공업 진영산업 도신산업 코리아써키트 삼성신약 코리아포리머 등 6개 중소업체 주식을 '먹이'로 삼았다. 그다음 증권사 18개 점포를 '기러기떼'처럼 옮겨다니며 무려 1백92개의 계좌를 개설해놓았다. 이들의 작전규모는 4백86억원(1백95만5천주)으로 밝혀졌다. 동원 가능한 친인척 명의나 가명을 빌려 만든 이 거미줄망이 증권감독원에 포착된 것은 양씨가 고려증권 청담지점에 민용기(민씨 아들), 이한영, 송성중(송씨의 오빠)씨 명의의 9개 계좌의 반대매매에 관한 각서를 자신의 이름으로 제출한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이다.

이들은 증권거래법 규정을 여러 곳 위반했다. 우선 시세조종금지 조항이다. 89년 1월부터 올 4월 사이에 경일화학공업 등 6개사 주식을 많게는 83.3%까지 집중 매집해 주가를 올렸다. 도신산업 대표 咸仁和씨는 주식공개(올 3월16일 정기주주총회) 직전인 지난 1월15일부터 2월10일 사이에 소유한 지분 11만주(약 19억원)를 대량 매도했다. 함씨가 시장에 주식을 내다팔았음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40% 가까이 뛰었다. 11만주 중 6만6천주를 양씨 등이 집중 매수했기 때문이다. 감독원은 이들이 서로 짠 것으로 보고 있다. 함씨는 끌어모으는 세력은 아니었지만 내부자가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것으로 증권거래법 제1백5조 제4항3호를 위반했다. 민씨와 임씨는 자사주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크나 물증은 없다. 내부자거래로 걸릴 것은 피해간 것이다. 이들이 특정 주식을 대량 매집해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는 고가의 동시호가형성 매매, 체증식 고가매매 등 몇 가지 수법이 동원됐다. 물론 이 방법이 지능적이고 놀라운 수법은 아니지만 계획적으로 주가를 조작한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주가를 조작해 6개사 주식 모두가 한때 크게 상승했다.

그러나 이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단기간에는 시세차익을 올렸을지 몰라도 그동안 증시는 장기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해 이들이 소유한 대부분의 계좌는 담보유지비율(1백30%)이 미달된 이른바 '깡통계좌'가 됐다. 하지만 86~88년 같은 호황기가 계속되었으면 엄청난 시세차익을 올렸을 것이고 당국에 적발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다. 반대매매로 상호신용금고와 증권사간에 적자계좌 정리를 둘러싼 시비가 벌어지자 자연히 이들의 계좌가 자꾸 들먹여지면서 '불법'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현재 이 사건은 검찰에 넘어가 있다.

이 사건을 두고 증권가에서는 미묘한 반응을 일어났다. 우선 이 사건을 주도한 양회성이란 인물이 '큰손'이 아닌 어설픈 투자자이며 거대한 증시의 흐름을 이해하는 전문가도 아니어서 이런 큰 사건을 주도할 인물이 못된다는 것이다. 양씨와 거래한 경험이 있는 제일증권의 한 직원은 대도상사의 부도(9월19일)로 큰 빚을 진 양씨가 이를 만회하기 위해 내부자와 결탁해 욕심을 부린 것은 사실이지만 대규모 주가조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귀띔한다. 투자자 ㅈ씨는 양씨로부터 "내가 갖고 있는 코리아써키트 등의 주식이 오늘 상종가를 칠테니까 사라"는 권유를 여러번 받았지만 이같은 방법은 통용될 수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현재 양씨는 깡통계좌 정리 후 제일증권 명동지점에 갚아야 할 돈이 3억5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신증권 압구정지점에도 상당액이 물려 있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 두 곳 지점장은 문책당해 대기발령중이다. 전 제일증권 명동지점장 ㄱ씨가 양씨를 찾으려고 혈안이 돼 있을 만큼 양씨는 빚에 몰려 있는 상태다.

이 사건을 두고 증권가에는 "어쨌든 실패하지 않았느냐"하는 동정론도 있다. 이들의 행위는 우리 증시에서 계속 일어났던 일이며 이보다 더 엄청난 규모의 불공정행위가 전에도 있었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행위를 주가조작이라고 몰아붙인다면 종가(장이 끝나기 전 마지막으로 매매가 이루어진 가격)관리를 하는 대부분의 대기업은 왜 적발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ㅅ재벌의 경우 그룹계열사 주식이 3만원 이하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종가를 관리하고 있다고 ㄷ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전한다. 이를 엄밀히 따지면 시세조종이라는 것이다. ㅎ증권의 한 관계자도 증시안정기금은 '장세안정'이라는 대의명분은 있지만 최대의 시세조종세력이라는 사실과 증권사가 막 공개된 기업에 대해 일정기간 시장조성을 하고 정부가 국민주 1, 2호인 포항종합제철과 한국전력공사 주식을 떠받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ㅈ증권의 한 관계자의 말도 터무니없는 것 같지는 않다. 지난해 11월 제일증권 명동지점 정기감사 때 증권감독원은 경일화학공업 등 몇개사의 주식이 특정계좌로 집중매매됐다는 사실을 적발했는데 1년이 지난 뒤까지 가만있다가 최근에야 터뜨린 것은 어딘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민자당 내분 등 최근의 정치불안에 따른 국민의 질타를 다른 데로 돌리고 현재 금융장세를 정치자금 및 정권과 결탁한 큰손이 개입해 일으켰다는 '설'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설사 사건발표 내용이 다소 과대포장돼 있다 하더라도 이번 사건은 우리 증시의 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낸 것임엔 틀림없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공시제도가 허술하고 증권거래법상 내부자거래가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지적한다. 기업이 공시의무를 지는 것은 기업정보를 내부자가 알게 될 때 투자자도 알아야 시장의 공정성을 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등 공시의 기본인 회계정보조차 엉터리로 작성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또 증시에 떠도는 풍문을 부인하는 부인공시를 한 기업치고 번복공시를 하지 않은 기업이 없을 정도다. 얼마전 시중은행들이 자산재평가를 한다는 풍문에 대해 부인공시를 낸 바 있다. 그러나 ㄷ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자산재평가는 사실이기 때문에 번복공시를 할 수 있는 한달이 경과하기를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증시에 터무니없는 풍문이 많이 떠도는 것은 사실이므로 이를 부인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다시 번복하는 것은 기업윤리에 오점을 남기는 행위다.

선진국에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내부자거래의 성행도 문제다. 최근 민영방송 지배주주로 선정된 (주)태영의 주가가 정부의 확정 발표 한달 전부터 급등해 한때 56%까지 뛰어올랐다. 사전내정설이 사실이고 이것을 안 내부자가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는 의혹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실제로 8월 하순에 尹世榮회장 아들이 태영의 주식 3만6천5백주를 사들였다. 공보처장관은 이에 대해 매입시점이 바닥으로 내려간 때이며 당시 증권감독원이 기업 대표들에게 자사주식을 매입토록 권유해 사들인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지만 태영의 내부자거래설은 끊이지 않고 있다.

 

허술한 공시제도 보완해야

공시의무 이행이 불성실하고 내부자거래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재수없어' 적발되더라도 3일간 매매정지와 가벼운 벌금형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특히 내부자거래는 지난 88년 내부자거래(2백18억원)로 처벌을 받은 광덕물산 金星起씨가 집행유예로 풀려나온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러나 미국의 유명한 보에스키사건처럼 외국에서는 내부자거래에 대한 처벌이 엄격하다. 돈있고 정보를 미리 빼낼수 있는 내부자가 횡재하는 사태를 막지 못한다면 주식대중화는 기대할 수 없고 증시의 파행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또 자금력과 경험축적이 많은 외국자본이 들어와 내부자거래수법을 동원하면 우리 증시는 결딴날 것이라고 우려하는 전문가도 많다. 내부자거래를 막고 공시의무를 성실히 이행케 하기 위해서는 관련법규를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행위가 잦은 것은 증권감독원이 조사권만 발동할 수 있을 뿐 사법권이 없어 속수무책이 되는 데에도 원인이 있다. 검찰에 넘기면 된다고 하지만 증권관련 범죄가 복잡하고 교묘해 가까이서 지켜보는 감독원이 다루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미국의 증권관리위원회(SEC)처럼 우리도 증관위에 최소한의 사법권을 부여해 적발 및 징계업무를 강화하면 예방 효과도 클 것이다.

주가에 울고웃는 증권사의 영업기반도 문제이다. 증권사는 약정고를 올려야 하기 때문에 빨리 사고파는 투기성매매를 조장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모든 영업기반이 주가와 맞물려 있어 주가가 떨어지면 만회할 길이 없다. 단기금융시장이 극도로 불안정한 것도 '장'이 나빠지면 급전을 구하는 증권사 탓이 크다. 증권업의 수익기반을 안정시키려면 주가에 연연하지 않게 단자나 투신 업무 등 타 금융기관의 업무를 취급할 수 있는 '겸업주의'로 금융산업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증시의 질서를 문란케 만드는 증권사의 자기매매(자기의 이익을 위해 유가증권을 사고파는 것으로 업무의 하나이다. 임직원이 본인의 재산으로 매매를 하는 것도 포함된다. 후자의 경우는 특히 정보의 공평성을 해친다)에 대해서도 금지하려면 철저히 틀어막고 허용하려면 분명한 한계선을 그어 허술한 금지조항 때문에 발생하는 비리를 막아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우리 증시를 절름발이로 만든 데에는 투자자도 한몫 거들었다. 이번 사건에서 피해를 본 이들은 '주가는 기업내용'이라는 투자의 기본을 어긴 사람들이다. 도신산업 등 6개사 주식은 부채비율이 높고 계속 적자를 보는 회사의 주식, 이른바 '넝마주'이다. 불량한 기업의 주식이 상장되었다는 것도 문제다. 상장기업이라면 견실한 기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증시규모를 대형화한다는 명분으로 무분별하게 펼친 상장사(현재 6백47개사) 늘리기 정책은 중단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불특정다수의 '돈놀이'이고 어느 정도의 투기성은 있어야 하는 것이 증시의 생리이고 보면 초보자를 직접투자에서 간접투자로유인할 방안도 시급히 강구해야 한다. 장기안정투자를 유도하려면 현행 액면에 따른 배당제도를 시세배당으로 현실화할 필요성도 있다.

어느 나라고 증권시장에는 정체 모를 돈이 떠돌고 교묘한 수법이 백출하기 마련이다. 모두가 시세차익을 기대하고 증시에 뛰어드는데 이를 막는다면 증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항변도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장일수록 공정한 게임원칙은 있어야 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뒷받침이 튼튼해야 한다. 이번 주가조작 사건이 검찰에서 어떻게 결말이 나든 증시를 수술해야 한다는 숙제는 남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