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수출 갈수록 태산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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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배기가스 배출기준 대폭 강화돼

가뜩이나 수출이 되지 않아 울상을 짓고 있는 국내의 자동차업계가 '대기정화법'(Clean Air Act)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공해방지를 위해 자동차의 배기가스 배출규제기준을대폭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 법안은 지난달 27일 미 의회를 통과했고 행정부도 이 법안에 찬성하는 입장이어서 92년에 발효될 것이 확실하다.

전문가들은 이 법안이 시행되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현대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이 법안의 파급효과에 대해서 "세계 자동차산업계가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자동차업계가 제2의 도약을 하느냐, 국제 자동차산업의 '하청업계'로 전락하느냐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라고 예상했다.

이 법안은 대기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여러 규제조치를 포함하고 있으며 자동차 배기가스의 유해성분인 탄화수소 질소산화물 일산화탄소에 대한 규제기준을 단계적으로 강화한다는것이 주된 내용이다. 탄화수소는 92년 9월부터 판매되는 차량의 40% 이상이 현재 허용되는 기준치인 1마일당 0.41g의 60% 수준인 1마일당 0.25g 이하로 배출되어야 한다. 또 이 규제기준은 93년 9월과 96년 9월을 기점으로 해서 더욱 강화된다. 질소산화물과 일산화탄소도 96년 9월부터는 규제기준이 2배로 강화된다. 이런 단계별 강화에 이어 97년 9월부터는 이 세가지 성분을 전혀 배출하지 않는 무공해차량이 판매차량의 2% 이상이 되어야한다. 성분별 제어기준 외에도 배기가스 규제장치의 내구성 보증기간을 2배로 연장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 법안은 환경보호 여론에 힘입어 미국 의회에서 압도적 표차로 통과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자동차업계는 연간 2백50억달러 정도의 추가부담을 떠안게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더구나 제너럴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의 이른바 '빅3'와 일본  독일의 몇몇기업만이 새로운 규제기준을 만족시킬 만한 기술수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국제 자동차산업의 일대개편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국내 자동차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독자적인 기술개발뿐이다. 특히 이번 법 안에 따라 한층 강화되는 배기가스 규제기준을 충족시키려면 자동차 배기가스 제어기술에 힘을 쏟아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무공해차량 개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국내자동차업계는 이 법안이 미 의회를 통과하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비책 마련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기아경제연구소의 朴基榮 연구위원(38)은 국내업계의 기술 수준을 "고유모델을 생산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며 자동차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엔진의 생산은 선두기업에서나 가능한 형편"이라고 평가하면서 "배기가스 제어 기술이라든가 대체원료 차량개발에 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실정" 이라고 말했다.

국내의 기술 수준이 이 정도라면 외국의 제어기술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 이 분야의 기술은 미국의 벤딕스사와 독일의 보쉬사가 쌍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기술보호주의 경향으로 쉽게 기술을 내줄 것 같지도 않고, 내주더라도 기술도입료가 터무니없이 비쌀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국내 자동차업계의 추가부담은 약 7천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기술도입료를 지불해야 하고, 기술개발에도 투자해야 하며 관련시험설비도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외형적으로는 고속성장을 구가하면서도기술개발은 등한시해온 업계로서는 제2의 도약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자동차 배기가스규제 강화가 업계만의 노력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만큼 정부도 자동차에 관련된 기술개발을 국가적 차원의 과제로 정하고 다양한 지원방안을 강구해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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