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자가 받은 노벨상
  • 양동표 (재미 공인회계사) ()
  • 승인 1994.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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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시 박사는 11월28일 백악관을 방문하고 12월10일에는 스웨덴 한림원이 베푸는 시상식에 참석한 후 국왕 부처를 만나게 되어 있다. 모든 노벨상 수상자들이 겪는 판에 박은 공식 일정이지만 내시 박사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아무 탈 없이 이러한 공식 일정을 마칠 수 있도록 빈틈없는 준비를 하고 있다. 내시 박사는 59년 이래 35년이나 정신분열증을 앓아온 환자이기 때문이다.

내시 박사는 '게임의 원리'를 개척한 공로로 94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게임의 원리는 44년 전 그가 프린스턴 대학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제출한 27쪽 짜리 짤막한 졸업 논문에서 다룬 이론이다. 그때 나이는 스물한 살, 카네기멜론 대학에서 2년 만에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또 2년 만에 프린스턴 대학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스물두 살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교수가 되었다. 게임이론이란 경쟁 관계를 수학적인 논리로 풀어내려는 이론으로서, 세계가 동서 냉전시대로 접어들어 군비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40년대 말기에 크게 화제가 되었던 이론이다.

초창기 이론은 경쟁 관계에서 어느 한쪽이 승리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패배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었는데, 내시는 그의 졸업 논문에서 양쪽이 다 같이 승리할 수 있는 경쟁 관계를 논하였다. 그의 이론과 수학적인 접근법은 그후 경제학에서 기업 간의 경쟁과 협상을 연구하는 데 기본적인 도구가 되었다. MIT 수학과에서 당시 풀리지 않던 수학 문제를 모두 풀어버린 다음 지루해진 내시는 수학 이론을 경제학에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하였다.

강의 시간에 횡설수설…학자로서 인생 끝나
 내시 박사는 MIT에서 자기에게 고급 미적분을 수강하던 학생과 결혼하였고 학교에서 종신 교수 직도 받았다.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그는 서른이 되던 59년 정신분열 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강의 시간에 두서없이 횡설수설하는가 하면 강의를 빼먹고 불쑥 자기 고향에 내려가 있거나 해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는데, 점차 증세가 악화해 걷잡을 수 없이 이상해졌다. 당시 MIT 학생이던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플리 교수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고 말한다.

지성이 번뜩이던 교수가 어느날부터 갑자기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아무리 붙들고 이야기를 해보려 해도 말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래 여름방학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그것이 학자로서 그의 인생의 끝이었다. 그후로 그는 단 한 편의 논문도 발표하지 못했으며 강단에 서지도 않았다. 병원에서 나온 그는 곧바로 MIT를 사직하고 국내와 유럽을 방황하기 시작하였다. 우울증 환자는 증세가 발작하는 시기만 피하면 작품 활동도 사회 생활도 영위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정신분열증 환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머리 속에서 무엇인가가 계속해 고함을 지르고 생각이 단절되기 때문에 정상 생활을 할 수 없다. 특히 60년대 정신의학은 치료는 고사하고 이상 행동 억제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65세의 인간 승리
 이러한 때 그의 아내와 프린스턴 동창생 해롤드 쿤 박사가 그를 살려냈다. 그의 아내는 프린스턴으로 이사한 후 그를 집에 붙들어놓고 30여 년을 한결같이 간호하였다. 대학원 시절을 기억하며 살면서 이상 병세가 악화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 생각은 적중하여 내시는 프린스턴에서 캠퍼스를 거닐고 도서관에 들러 책도 뒤적이면서 시간을 보냈다. 70년대 프린스턴 학생이었던 국립경제연구소 연구원 핀버그 박사는 당시 내시의 모습을 기억한다. "학교 주변에서 이 정신 나간 학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단추를 잘못 끼운 옷매무새하며 영락없는 미치광이 모양으로 캠퍼스를 어슬렁어슬렁 걷는가 하면 도서관에서 무언가 열심히 읽기도 하였다."그러던 내시의 병세는 80년대 말부터 서서히 나아지기 시작했다. 노벨 경제학상 위원회는 약 5년 전부터 내시의 정신 건강 상태에 관해 은밀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쿤 박사는 정신 질환도 질환일 뿐이므로 그것이 상을 가로막아서는 안된다고 위원회에 호소했다. 어느 학자가 암 환자라고 해서 상을 안주려고 결정할 수 없듯이 내시가 정신병 환자였다고 해서 상을 안줄 수는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래도 현직이 '무직'인 사람이 노벨상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쿤 박사는 부랴부랴 프린스턴 대학에 이야기해서 내시에게 '객원 연구보조원'이라는 직책을 새로 만들어 주도록 하였다. 내시 박사는 금년 65세이다. 정신 건강이 회복되었으므로 그가 아직도 수학과 경제학 분야에 공헌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많다. 그의 이야기는 인간 승리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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