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 잠재웠지만 핵쓰레기 산적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90.11.2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환경단체들은 '핵에너지 정책 페기' 촉구

7명 구속이라는 후유증을 앓고 있긴 하지만 안면도는 일단 자기모습을 되찾았다. 학생들의 등교, 상가영업 및 관공서 업무개시, 경찰병력의 철수, 버스통행의 재개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주민의 집단행동을 야기하고 鄭根謨 과기처장관과 金榮斗 충남도경국장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핵폐기물' 처리문제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안면도에의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방침은 일단 백지화됐지만 우리나라 발전량의 51%를 원자력 발전이 차지하고 있는 이상 빠른 시일 안에 국토 어딘가에는 핵폐기물 처리장을 설치해야 한다.

핵폐기물이란 일반적으로 방사성폐기물 즉 방사능을 띤 폐기물질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생활하는 도중 자연스럽게 미량의 방사선에 접하고 이에 별 영향을 받지 않지만 한꺼번에 많은 양의 방사선을 쬐게 되면 백혈구 파괴 등 치명상을 입게 된다고 한다. 안면도 주민이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계획을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권 차원에서 받아들인 것도 방사선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다. 안면도 주민을 특히 자극한 것은 '안면도핵폐기장설치반대추진위원회' 이름으로 안면도 곳곳에 전시된 컬러사진들이었다. 출처가 표시되지 않은 그 사진들은 방사능에 오염돼 6개가 된 발가락 등 참혹한 모습들을 담은 것이었다. 핵폐기물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주민들은 '핵폐기물처리장건설=사진 속의 참상'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충청남도와 과학기술처의 책임회피식 입씨름과 거듭된 입장의 번복도 주민들의 분노를 폭발시키기에 충분했다.

방사성폐기물로 인한 위험 여부는 저장관리기술에 좌우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전세계적으로 폐기물처리기술의 완벽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폐기물을 효과적으로 격리하기만 하면 안전하다는 것이다.

방사성폐기물은 세기(準位)에 따라 중저준위폐기물과 고준위폐기물로 구분되며 관리 또한 '처리'와 '처분'의 개념으로 나누어진다. 통상적으로는 원자력발전소 작업원들이 사용하고 버린 방호복 덧신 장갑 필터 냉각수 및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비파괴검사(파이프 등의 이음새 조사가 대표적인 예)와 각종 임상검사에서 나온 쓰레기가 중저준위폐기물에 속한다. 원자로에서 타고 난 핵연료(사용 후 핵연료)는 고준위폐기물로 분류된다. 폐기물 '처리'는 폐기물의 위험성을 차단한 뒤 지속적인 감시하에 저장하는 것을 의미하고 '처분'은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된 폐기물이나 위험성이 있는 폐기물을 격리, 안전한 장소에 영구히 두는 것을 뜻한다

현재 고리 등 9기의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은 고형화처리한 후 각 발전소 부지내의 임시저장소에 보관중인데 고리는 내년, 울진은 93년, 영광은 97년에 저장능력이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 원자로에서 타고 남은 핵연료의 저장능력도 월성은 내년, 울진은 95년, 고리와 영광은 97년에 한계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안면도에 원자력제2연구소를 건설하고 그곳 핵폐기물처리장에서 우선 중저준위방사선폐기물을 처리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고체폐기물의 부피를 줄이고 폐기물에 중성자를 쬐어 반감기(방사선의 세기가 반으로 줄어드는 기간)를 줄이며 폐기물로부터 이용 가능한 방사성동위원소를 분리해내는 기술 등도 연구할 계획이었다 한다.

이처럼 다급한 실태를 감안한다해도 안면도 핵폐기물처리장 건설안을 놓고 보여준 정부의 태도에는 문제점이 많았다. 정부가 지역주민을 설득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서해과학연구단지를건설한다며 슬쩍 핵폐기물처리장을 설치하려 한 점부터 잘못이다. 고등학생인 아들이 잡혀갔다고 안면읍사무소 앞에서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한 아주머니는 "경북 영일  울진  영덕 주민들이 반대해서 그쪽에다가는 못짓고 말도 없이 우리 섬에다 지으려고 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충청도를 정말 멍청도로 알면 큰 코 다칠 것"이라고 흥분했다. 안면도는 원자력법 시행령에 규정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선정기준에도 적합치 않다. 이 규정에 따르면 핵폐기물 처리장은 화강암 지역이어야 하며 지진발생 진원지에 인접해 있으면 안될 뿐 아니라 인근에 관광휴양지나 희귀한 동식물 서식지가 있어서도 안된다. 그러나 안면도는 편마암 지역일 뿐 아니라 지진 다발 지역인 홍성에 인접해 있고 관광지로 개발중이며 천연기념물도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원전은 경북 전남지역에 밀집돼 있어 장거리 운반상의 문제도 따른다고 전해진다.

姜昌淳 교수(서울대 원자핵공학)는 "안면도 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해 적합성 여부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정부가 주민과의 대화없이 사업을 추진하다 국가적인 중대사를 망쳐놓은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강교수는 "그러나 일부에서 거론되고 있는 것처럼 무인도에 핵폐기물처리장을 건설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은 아닌 만큼 앞으로 정부는 지역주민과 환경단체 관계자에게 사업내역과 안전성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해명작업을 성의껏 펼쳐 적지에 처리장을 건설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안면도 투쟁지원 공동대책위원회(공해추방운동연합외 20개단체)는 "핵은 인간다운 삶과 양립할 수 없다"며 아예 기존의 핵에너지정책을 폐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공대위측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폐기물 영구처분장을 가지고 있는 스웨덴은 물론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에서도 국민투표를 통해 핵발전소 신규건설을 중단했다"며 "국민투표를 실시, 기존의 핵발전소와 폐기물의 합리적 처리를 위한 새정책을 채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30년까지 원자력 발전소 50기를 추가건설할 계획을 이미 세워놓은 정부에 근본적인 방향선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핵폐기물 처리가 발등의 불로 떨어진 지금, 일방적으로 사업계획을 세웠다가 주민이 반대하면 도망다니는 꼴을 계속하다간 온 국토가 언제 핵쓰레기에 묻혀버리게 될지 모를 일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