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폭등과 지도층의 몰염치
  • 이재웅 (성균관대교수 경제학) ()
  • 승인 199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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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습 부동산투기꾼으로 악명이 높아진 어느 사업가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는 조그만 제조업체를 경영한다고 앞질러 말했다. 그는 요즈음 중소기업을 하는데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자신은 성실과 신의로써 열심히 사업을 해왔다고 했다. 그러한 사람이 왜 상습적인 부동산투기꾼으로 이름이 오르게 되었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대기업을 경영하는 어느 기업가는 자기 회사가 엄청나게 많은 부동산을 갖고 있다고 자랑했다. 그만큼 많은 부동산을 사들이는데 어려움도 많았다면서 부동산이 바로 회사의 신용이며 경쟁력을 뒷받침한다고 했다. 그는 은행대출도 쉽게 얻는다. 땅만 갖고 있으면 은행이 흔쾌하게 자금을 대주기 때문이다. 지난 몇년 동안 노사분규 임금상승 생산성저하 등 어려움이 겹쳤지만 끄떡없이 버티어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부동산을 많이 갖고 있는 덕택이었다.

기업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고 돈벌기로 말하자면 부동산투기를 당할 만한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업이 부동산을 사들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틀림없는 것은 오직 토지뿐이다. 땅값은 아직 떨어져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급속하게 상승해왔다. 그래서 은행돈을 빌리면 기업활동에 쓰기보다 우선 땅을 사두어야 한다. 금융기관에서 과도하게 방출돼온 자금이 부동산투기로 몰리고 생산부문에서는 언제나 자금난을 겪는 자금흐름의 심한 왜곡현상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은행돈을 빌리면 우선 땅을 사두어야 한다?

한편 재개발지역에는 무허가 판잣집  비닐하우스들이 꽉 들어차 있다. 집이 없는 사람들이 그것을 차지하고 있으면 아파트분양권을 주기 때문이란다. 세상에는 땅 한평, 방 한칸도 없어서 정말로 어쩔 수 없는 딱한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네 땅, 내 땅 가릴 것 없이 없는 사람들도 좀 붙어서 살자는 것이다. "네 땅도 부동산투기 안하고 성실하게 벌어서 마련한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는 나름대로의 '항변'도 깔려 있음직하다. 이러한 혼돈과 갈등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사태를 빚어낸 주범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가. 부동산투기와 땅값폭등은 결코 해소될 수 없는 것인지. 또 그렇다면 앞으로 이와 관련된 정치 경제 사회문제들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불안하기만 하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땅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의 심각성을 덜 느끼고 해결하려는 노력도 크게 쏟지 않는 것 같다. 남들이 우리나라를 '제2의 일본'이라고 빈정대는 까닭이나 일본사람들이 우리를 깔보는 이유도 우리가 일본의 장점보다는 못된 것들을 더 열심히 본뜨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일본정부는 최근 땅값을 내리는 정책을 검토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동안의 땅값안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80년대 후반에 들어서 지가는 무섭게 폭등했기 때문에 이제는 위기의식마저 느끼는 것 같다. 과거에 일본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근검절약했던 이유는 내집장만을 위한 소망이 컸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근래에는 집값이 너무 올라서 평생 저축하고 노력을 해도 내집마련의 꿈을 이룰수 없다고 한다. 저축 대신에 과소비가 늘어나는 원인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저축률이 가장 높다던 것도 옛날 이야기이다. 일본사회는 땅을 가진 계층과 못가진 계층으로 단층화되고 있다.

일본의 1인당 GNP는 미국을 능가한다.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사고도 남는다. 일본자본이 세계를 지배한다 등등 별의별 이야기도 많지만 그러한 허풍만큼이나 일본경제는 '거품경제'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땅값으로 버티는 경제, 부동산문제로 內燃하는 사회가 견실하면 얼마나 견실할 것인가. 그리고 부동산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지도층이 일본사회를 언제까지 안정적으로 이끌어갈수 있겠는가.

 

‘일시적 승리'에 도취돼선 안된다

요즈음 우리사회를 휩쓰는 과소비도 부동산투기 땅값상승과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정부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돈을 많이 풀어놓은 것이 땅값을 올리고 부동산투기를 악화시켜온 근본원인이었다. 물론 이 때문에 과소비도 심해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돈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면 쓰게 마련이다. 투기로 떼돈을 번 사람은 쉽게 벌었으니 펑펑 쓴다. 반면에 아무리 해도 집장만이나 신세펴기는 영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자포자기해서 씀씀이가 커질 것이다. 정책당국에서는 요즈음 우리 사회의 과소비가 일부 계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계층이 분수에 넘는 과소비를 한다는 '신기한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도대체 어쨌다는 것인가.

땅값폭등에는 정치권  재계 등 지도층의 몰염치와 탐욕이 크게 작용해왔다고 본다. 특히 최근의 부동산 과열투기는 근로자의 임금인상 압력에 대항해서 부를 가진 계층이 자기몫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는 너무나 지나쳤다. 노사분규로 근로자의 몫은 늘어나기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과잉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땅부자들은 이러한 '일시적인 승리'에 도취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땅값을 떨어뜨리고 어느 정도의 안정적인 몫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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