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외국인 이 사 수 제한해야”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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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30인 ‘투기 자본 대책’ 설문조사/“제도 강화 필요” 60%

 
  론스타 사무실 압수 수색으로 고조된 검찰의 론스타 수사는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감사원은 엉킨 실타래를 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반면 시민단체와 국회를 중심으로 관련 논의는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른바 한국판 ‘엑손-플로리오’ 법안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단기 차익을 노려 몰려다니는 투기 자본을 겨냥한 ‘토빈세’와 이를 수정한 ‘이중외환거래세’ 도입을 주장하고 나선 이들도 있다(상자 기사 참조). 

  재계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지난 4월26일 조건호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이상경·심상정·김애실 의원 등이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적대적 합병·매수(M&A)를 방지하는 법률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들의 입법 활동을 돕기로 뜻을 모았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좀더 차분하게 이 문제에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외국 자본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해온 전문가 그룹을 대상으로 앙케트를 실시했다. 설문 조사에는 국회 정무위원회와 재정경제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10인과 전문 연구자 20인이 참여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론스타 관련 수사를 어떻게 보는지, 제안되고 있는 투기 자본 규제 방안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설문 조사 결과 론스타 수사에 대해서는 정당한 절차라는 답변이 많았다. ‘정당한 수사’라고 답한 이가 27명에 달했다. ‘국민 정서법에 기댄 과도한 수사’라는 의견은 고작 2명에 그쳤다. 특히 국회의원들은 어차피 자본에 도덕성을 요구하기 어려운 만큼, 투기 자본 자체보다 이들 주변에서 도운 관료들과 법률 전문가들이 더 문제라는 인식이 강했다. 

 
  정책 당국자 무능론도 눈에 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용기 연구원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자본 유입에 따른 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부정적 폐해를 최소화하는 장치 및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당국자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라고 꼬집었다. 고위급 경제 관료가 재경부와 금융 당국, 법무법인 및 회계법인 등을 넘나드는 ‘회전문 현상’에 대한 비판 의식도 찾아볼 수 있었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강종구 실장은 “한국에서는 각종 로비로 정책 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고위 공무원이 퇴직 후 법률 사무소나 외국계 기업 및 금융기관에 자리를 잡을 수 없도록 규제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과연 외환은행 매각 당사자들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전망은 비관적이었다. ‘조작의 정황이 파악된다고 해도 불가피한 정책적 판단으로 결론이 날 것’이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18명). 부당한 조작이 있었음을 밝혀내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한 이는 10명이었다. 아예 조작 여부를 밝힐 수 없을 것이라고 보는 이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자는 일부 시민단체의 의혹 제기에 힘을 실었다. 매각 협상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외환은행의 경영 실적이 또렷하게 호전되고 있어서 여러 가지 회생 시나리오가 가능했는데, 정책 결정권자들이 지나치게 수세적으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매각 당사자 처벌 힘들 것”

  전문가들은 ‘론스타 사건의 경우 추후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구체적으로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강경한 분위기가 우세했지만, 동시에 이런 정서가 외국 자본 배척론으로 흐르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경계했다. 금융경제연구원 전승철 팀장은 “규제 틀은 엉성하게 해놓고, 상황에 따라 지난 일을 들추어내고 이를 세계 만방에 알려지게 하는 최근 사태는 아마추어적인 처리 방식이다”라고 꼬집었다. 한국이 고통스럽게 일구어온 자본 자유화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대안은 ‘분리 대응’으로 요약할 수 있다. 외국 자본에 대해 문을 열되, 문제가 있는 행태는 제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규제하면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외국 자본이 한국에 미친 영향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로 특칭되는 이른바 투기 자본에 대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의견이 많았다. 제도를 새로 도입하거나(18명), 있는 제도를 실효성 있게 운영해 문제가 되는 행태를 감시해야 한다(10명)는 답변이 대다수였다. 

  투기 자본이 제대로 감시되고 있지 않다는 문제 의식은 비슷하지만, 방법론을 놓고는 의견이 많이 갈렸다. 특히 토빈세·이중외환거래세를 도입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호응도가 낮았다.  금융경제연구원 윤성훈 박사는 “관세조차 철폐되어가는 마당에 자본 이동에 과세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성격에 따라 세율을 달리 매길 수 있는 근거를 정하기도 쉽지 않다”라며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토빈세에 비하면 엑손-플로리오 법은 훨씬 우호적인 반응을 얻었다. 엑손-플로리오 법은 국가의 기간산업이 외국 자본에 넘어가 국가 안보를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이를 불허하거나 투자 철회를 판단할 권한을 대통령이 갖는 제도로, 미국이 1988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한국판 엑손-플로리오 법을 제정하자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매우 필요하다(9명), 논의할 필요가 있다(13명)는 의견이 많았다. 윤성훈 박사는 더 신속하고 유연한 개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별도 법안을 마련하자는 데 적극적이다. 

  외국인 투자가 위축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은 8명에 그쳤다. 투기 자본 문제에 각별한 문제 의식을 가진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엑손-플로리오 법안에 대해서 “외자 유치를 위축시킬 수 있으므로 적절하지 않다”라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이병윤 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현재 외국투자촉진법에 외국인 투자가 제한되는 업종을 정해놓고 있는 만큼 별도 법안을 마련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로비 시비가 끊이지 않는데, 로비가 횡행하는 한국 현실에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엑손-플로리오 법안’에 다수가 긍정적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은행 이사회를 구성할 때 외국인 이사 수를 제도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견이다. 이 사안은 지난해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 전문가 설문에 따르면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현재 금융 부문의 외국인 지분율은 다른 산업 부문과 비교해도 유난히 높다. 2006년 2월 기준 국민은행 86%를 필두로 하나은행이 80%, 외환은행이 75%, 신한은행이 58%이다.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은 100%이다.  이 가운데 경영권이 아예 외국인에게 있는 외국계 은행은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 그리고 외환은행 3곳이다. 이들 외국계 은행의 시장 점유율은 최근 21%까지 확대된 상태이다. 

  이와 같은 현실 때문인지 외국인 이사 수를 제한하는 방안에 대한 지지도가 꽤 높았다. 외국인 이사 수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총 18명.  미국에서도 은행 이사진의 경우 현지 체류를 요건으로 부과하는 경우가 많고, 유럽연합(EU)은 비회원국 국적 외국인의 이사 선임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이사 수 제한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금융은 오로지 현지인만을 대상으로 토착 영업을 할 수밖에 없는데 현지 사정에 정통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적 자체보다 현지 체류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요구인 셈이다. 

  현재 전문 연구자는 국책 연구소와 민간 연구소에 두루 분포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 자본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소속에 따라 편차를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재벌그룹 계열 민간 연구소는 국내 자본에 대한 역차별을 문제 삼는 경우가 많았다.외국 자본과 투기 자본에 대한 이들의 문제 의식은 재벌 오너의 경영권 방어에 쏠려 있다. 

 
  반면 외국 자본에 대한 경계심을 국내 산업 자본에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경고음을 보내는 연구자도 적지 않았다. 이병윤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특히 은행의 경우 초기 인수 자본은 모두 사모펀드들이었지만, 현재는 씨티은행이나 스탠더드차터드 등 건전한 금융 자본이라고 지적했다. 역차별 운운하며 금산(금융자본·산업자본) 분리 원칙에 도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금융은 산업을 감시하는 주체이다. 기업이 제대로 영업을 못하면 채권을 회수해 시장에서 퇴출시킴으로써 시장의 파수꾼 노릇을 하는데, 그런 감시 주체를 감시할 대상이 먹어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외국 자본에 대한 국민의 걱정을 이용해 자격이 안 되는 데도 경영권을 지키려는 재벌 등의 움직임에 언론이 비판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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