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역사의 동토 위에 새들만 홀로 자유롭구나
  • 철원.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4.12.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북 대치 현장인 강원도 철원군 철원평야 일대는 겨울이 되면 철새들의 거대한 서식지로 변한다.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평할 정도로 물고기가 많다는 이 곳 강산저수지 주변에는, 멀리 시베리아에서 밤을 도와 남하한 기러기 수천 마리가 모여들어 겨울나기 준비에 한창이다. 둑방 너머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는 ‘겨울의 진객’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사이좋게 어울려 큰 걸음으로 논두렁을 거닐다가 훌쩍 날아오른다.

  철원평야가 국내의 손꼽히는 겨울 철새 도래지로 된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원로 조류학자 원병오 명예교수(경희대)의 설명에 따르면, 이 곳은 원래부터 부들·줄풀·갈대·달역귀·억새가 많아 철새 서식처로는 안성맞춤이다. 강산저수지 등 여러 저수지와 소택지에는 철새들이 겨울 한철 충당하고도 남으리만큼 먹이가 풍부하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철원평야가 바로 6·25 최대의 격전지였고, 현재에도 남북 무력이 한 치도 양보 없이 대치한 대결 현장이라는 사실에 있다. 번성했던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갈대만 무성한 빈 들에는 전쟁 때 매설했던 지뢰가 그대로 남아 일반인의 자유로운 출입을 허락지 않는다. 군인말고는 아무도 들어와서 살 수 없는 조건, 그 부자유함이 철새들이 들어와 깃들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는 것이다.

  거기서 그들은 무한대의 자유를 얻는다. 두루미들은 편대를 지어 하늘로 오른다. 저수지에서 한창 물질하던 쇠기러기떼도 가끔씩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일제히 비상한다. 철새가 새까맣게 뒤덮은 비무장 지대의 하늘 아래서 남과 북은 갈라서고, 비무장 지대는 중무장된다. 역사의 부자유와 새들의 자유가 중첩된 그곳에서 새들은 황홀히 날아오르고, 인간은 여전히 부자유한 땅 위에 머문다.  ■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