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택 ‘김영삼 식’으로 김대중 돌파
  • 대전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4.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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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공 시절 YS와 같은 처지... ‘전부 아니면 전무’ 승부수루 양김 시대 종식 노려



  민주당 이기택 대표 측근들은 11월26일 대전역 광장집회가 끝난 뒤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의외로 사람이 많이 모였고 분위기도 뜨거웠기 때문이다.

  충남 지역 민주당 관계자들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지는 않았다고 얘기 했다. 이대표 측근들은 “70%는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라며 대회가 대성공이라고 자평했다. 민주당 박지원 대변인은 군중 수가 5만명은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경찰 추산은 대략 1만5천명 정도였다. 민주당에서 장외 집회를 많이 해본 ‘전문가’들은 대략 2만명 정도 모인 것 같다고 계산했다.

이기택 대표의 종착점은 어디인가?
  사실 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이대표 측근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전날 이대표 비서진이 대거 대전으로 내려와 학생 대표, 사회단체 관계자 들과 만나 대회 참석 여부를 타진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실제로 장외 집회 때마다 가장 많은 수가 참여해 분위기를 돋우던 학생들은 이번에 조직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날 대전역 광장은 별로 빈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70%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일반 시민”이라는 이대표 측근들의 얘기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이대표도 대전역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을 바라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그는 신명이 나는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국회의원을 일곱 번 했고 야당 대표도 했으니 이제 부러울 것도 겁날 것도 없다면서 “12·12 군사반란 관계자들을 법정에 세우지 않는 한 이 썩어빠진 정치판에 추호도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영삼 대통령이 만나자고 하면 언제든지 만날 용의가 있다고도 밝혔다. 영수회담을 다시 한번 촉구한 것이다.

  대전역 집회 성공으로 이기택 대표는 일단 한 고비를 넘겼다. 대전 집회 다음날인 27일 밤, 다섯 시간 반 동안 벌어진 민주당 최고의원 회의에서 동교동계가 비주류가 등원론을 들고 나왔지만 이대표는 일축할 수 있었다. 그는 “12·12 공소 만료일인 12월12일까지는 당력을 총동원해 장외 투쟁을 계속하고 등원 여부는 그 뒤 당의 논의를 거쳐 결정하자”고 못박았다. 그 대신 이대표는 28일 당 3역으로 여야협상 대표기구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여당과 대화할 공식 창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적어도 12월12일까지 민주당이 갈 길은 정해진 셈이다. 민주당은 12월3일 부천에서 또 한번 집회를 연 뒤 12월12일 전에 서울에서 대규모 12·12 관련자 기소유예 규탄대회를 연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그러는 한편에서는 여당과 접촉하면서 영수회담을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정가의 관심은 도대체 12월12일 이후 이기택 대표의 종착점이 어디냐는 것이다. 이대표는 대전 집회 전날인 25일 기자회견을 하고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면서 조기 총선을 요구했다. 이는 여권 처지에서 보면 12·12 관련자 기소보다도 더 황당한 주장이다. 더군다나 조기 총선은 현행 헌법 아래에서는 가능한 일도 아니다. 여야가 동시에 모두 의원 직을 사퇴하기 전에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설사 민자당이 이대표의 요구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성사될지 알 수 없다. 민자당 박범진 대변인이 ‘자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어이없다’는 논평을 낸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대표가 12·12 관련자 기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조기 총선을 주장하고 나옴으로써 그의 의도는 이제 어느 정도 분명해졌다고 봐야한다. 이대표는 결코 여권이 들어줄 수 없는 요구 조건을 내세워 ‘민족 정기를 살리겠다’는 명분을 살리고 자기를 죽이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구 정치 질서를 전면 부인하면서 그 정치 질서 속에서 누리고 있는 자기의 기득권도 모두 버리겠다는 얘기이다.

  구 정치 질서란 바로 반독재 투쟁 세력과 군부 독재 참여 세력이 공존하는 체제를 말한다. 그리고 사람 중심으로 얘기하면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한가운데에서 구 여권 세력이 여전히 안정적으로 기득권을 누리는 상황을 가리킨다. 그는 이번 12·12 공세를 통해 그런 정치 질서를 완전히 뒤바꿔놓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자기는 그런 체제를 더 이상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려는 것 같다.

  그는 11월26일 대전 집회에서도 12·12 공세를 개혁 대 수구, 정의 대 불의의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지사형 정치인을 필요로 하며 이기택이가 기꺼이 그 소임을 맡겠다”고 말했다. 그는 명분에 죽고 사는 지사형 정치인으로 거듭나겠다는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의원직 사퇴는 이대표가 자기를 죽이는 첫번째 순서인 셈이다.

  이대표는 대전 집회 당일 아침 조간을 받아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대부분의 언론이 전날 조기 총선을 주장한 그의 기자회견 내용을 보도하면서 민주당의 내분 가능성에 더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집회장에서도 “우리 언론들도 기득권 세력에 불과하다는 점을 새삼 확인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는 12·12 공세가 이대표 개인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당내용이라는 비판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대표 처지에서는 결코 당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 그 때문에 이대표의 다음 투쟁 단계는 단식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당내에서 많이 흘러나오고 있다. 여론의 초점을 다시 12·12 관련자 기소 유예 철회라는 본론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12월12일 이후에는 곧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닥쳐오기 때문에 이대표가 의외로 단식 일자를 앞당겨 잡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민주당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DJ 겨냥한 카드는 대표직 사퇴
  사실 이대표의 의원직 사퇴는 김대중 이사장을 겨냥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이사장의 등원 종용 발언, 이대표의 반박, 동교동계 권노갑 최고의원의 이대표 비난이 있은 뒤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에 그렇게 비쳤을 뿐이다. 원론적으로 얘기한다면 이대표의 의원직 사퇴에는 야당 없이 혼자서 정치를 잘해 보라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대표가 정작 김이사장을 향해 내밀 수 있는 카드는 대표직 사퇴이다. 김이사장이 달아준 대표 직을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이대표 측근들은 그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동교동계가 계속 딴죽을 걸 경우 이대표가 결심을 할 것이라는 얘기이다. 따라서 민주당 내에서는 내년 2월 전당대회 조기 개최를 점치며 각 계파가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이대표와 틈이 벌어졌던 이부영·노무현 최고위원은 이대표 노선에 지지를 보내는 모습이다. 노무현 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노최고위원이 이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이대표 노선에 지지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한편 비주류와 동교동계가 전에 없이 가까워진 양상이다. “동교동계와 처음으로 뜻이 맞는 것 같다”고 비주류측 인사들은 말한다. 이기택 대표의 당권 경쟁자들인 김상현·정대철 고문과 김원기 최고위원은 동교동계의 새로운 대리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점치며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대표가 가려는 종착지는 분명하다. 그것은 양김 시대 종식이다. 이대표는 대구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뒤로 한동안 매우 밝은 표정이었으나 곧 의기소침해졌다고 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인기가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심각한 얼굴로 측근들에게 “도대체 내가 신민당 박찬종 대표보다 여론조사에서 뒤지는 이유가 뭐냐”고 여러 번 물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대표가 장고에 들어가, 두 김씨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게 7선 의원에다 제1 야당 대표까지 맡고 있는 그의 마지막 승부수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 듯하다”는 것이 이대표 한 측근의 얘기이다.

  민주당 내에서 이대표의 지금 처지는 3당 합당 이후 민자당 내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처했던 상황과 비슷한 점이 있다. 합당 대가로 대표자리를 보장받았지만 냉정하게 얘기하면 소수와 보스에 불과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다음 당권을 거머쥐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당시 김대통령은 탈당 가능성을 흘리며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투쟁을 통해 여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따내고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두 김씨 넘어선 사람은 없었다
  만약 이대표가 대표직 사퇴와 조기 전당대회라는 카드를 빼어들 경우, 민주당 동교동계는 당시 민자당 지도부와 같은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기택 대표에 맞서 내세울 선수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대표를 주저앉히려면 분당을 각오해야 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영남 원외 지구당위원장들은 대부분 이대표를 지원하는 실정이다. 만약 이대표가 경선에서 동교동계의 ‘공작’으로 탈락하면, 이대표가 가만 있어도 영남 원외 지구당위원장들은 대거 탈당할 수도 있다. 지역 감정까지 개입해 있는 고약한 상황인 것이다. 이대표 측근들은 “이대표가 적어도 정치권의 그 누구라도 크게 흠집낼 능력은 있는 사람”이라고 공언한다. 최악의 경우엔 동교동계와 동반 자살을 꾀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결국 이대표는 김영삼 식으로 김대중을 돌파해 궁극적으로는 김영삼 대통령을 극복할 계산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이대표의 순수한 의도를 배제하고 오로지 정치판을 당리당략 차원에서 읽었을 때 그렇다는 뜻이다.

  사실 이대표 이전에도 양김씨에게 도전한 사람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지금까지 양김씨를 타고 넘지는 못했다. 두 김씨는 지금까지 어려울 때는 서로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런 점에서 이대표의 앞길은 아직 험난하다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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