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은 성적순 아니다”
  • 박재권 기자 ()
  • 승인 1994.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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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채용 신경향 / 기업들 사람 됨됨이 중시... ‘책상물림 가고 머슴들 와라’

 ‘필기시험에서 1등을 하고도 불합격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취직 시험에서는 흔히 발생하는 일이다. 한 기업 간부는 “취직 시험은 수능 시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도서관에서 공부만 한 책상물림이 아니라 일 잘하고 부려먹기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최종 결정에서 필기 시험 성적은 아예 무시되거나 10% 정도 반영되는 것이 보통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필기 시험 준비에 할예하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말이다.

  지난 8월23일 노동부는 50대 주요 기업과 23개 정부투자기관, 74개 금융기관에 공문을 보내 서류 전형이나 면접에 의한 채용보다 필기 시험에 의한 채용을 확대하라고 권고했다. 공정한 취업 기회를 보장하라는 것이 노동부의 요구였다.

  그러나 기업의 처지는 다르다. 필기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면접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추세는 해마다 심해지고 있다. 그룹 회장이 직접 면접에 참여하는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고, 최근에는 실무 부장과 과장 들도 면접에 참여하는 추세다.

한양대 · 고려대 1 ·2위, 서울대 6위
  문제는 면접의 객관적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회사마다 기준표는 있지만, 면접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인성 검사를 실시한다.

  기업마다 면접에 중점을 두는 사항이 다르다. 따라서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은 선배를 통해 자기가 지원한 회사의 면접 방식과 질문 내용을 미리 알아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면접에서 공통적으로 묻는 내용은 개인의 성장 배경과 성격, 대인관계, 일에 대한 적극성, 장래 계획 따위다. 면접관들은 수험생의 약점이 될 듯한 질문을 던져 그의 숨겨진 성격이나 솔직함, 위기 대처 능력을 파악하기도 한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는 어떤 사람일까? (주) 리크루트가 4백60개 기업체의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간접적으로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조사 결과, 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출신 대학은 한양대 이공계와 고려대 인문계로 나타났다. 서울대는 6위에 머물렀고, 지방 대학으로는 부산대와 경북대가 각각 9위와 10위를 차지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한양대와 고려대 출신들이 1,2위를 차지한 반면 서울대 출신들은 6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기업 관계자들은 이것을 명문대 출신 선호 경향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명문대 출신일수록 자기 우월감 때문에 직장 동료들과 융화하지 못하고 직장을 쉽게 그만둔다. 애써서 뽑았는데 직장을 그만두면 기업 처지에서는 직원들의 사기와 사업 추진에 타격을 입는다.

  따라서 기업은 사원을 선발 하는 단계에서 회사에 애착이 없는 사람은 과감히 배제하려고 한다. 필기 시험 성적은 둘째 문제이다. 삼성과 현대는 올해부터 ‘무자료 면접’을 실시할 계획이다. 개인 신상과 필기 시험 성적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면접을 치러서 채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필기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누구나 사원 될 자격이 있으며, 조건은 똑같다. 필기 성적은 최종 선발 기준에서 무시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취직하려고 하는 사람의 됨됨이와 회사에 대한 애정, 일에 대한 열정이다.

  그러나 명문대 출신들에 대한 기업의 미련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기업들은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추천과 인턴 사원 채용에 적극적이다. 93년도 50대 그룹의 사례를 보면, 추천으로 20.9%, 인턴 사원으로 11.5%를 채용했다. 치열한 공채 경쟁은 그 나머지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것이다.

  특히 인턴사원제에 의한 사원 선발 비율은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90년전에는 전체 채용 인원의 2.3%이던 것이 해마다 늘어 93년에는 11.5%로 껑충 뛰었다.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인턴 사원을 채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채용 예정자들의 품성과 실무 적응 능력을 미리 평가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작년에는 17개 그룹이 인턴 사원을 채용했는데, 전공별로는 이공계가 1천9백29명, 인문 · 사회계가 1천62명이었다. 이공계가 훨씬 우대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방대생에겐 여전히 좁은 문
  인턴사원제는 기업 처지에서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것은 취업 기회의 공평성을 해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작년에 인턴 사원을 뽑은 17개 그룹중 공개 모집을 한 곳은 3개 사뿐이고, 나머지는 추천을 통해 비공개로 채용하였다. 이에 따라 대졸 신입 사원의 공채 비율은 89년에 80.8%였던 것이 93년에는 66.7%로 급격히 낮아졌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지방 대학 출신자들이다. 이들은 취업 정보와 기회 면에서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대 출신을 채용하는 비율은 기업에 따라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93년 30대 주요 그룹의 경우를 보면, 기아가 60%로 가장 높고, 동부그룹은 19.8%로 가장 낮다. 나머지 기업들은 그 사이에 있다. 기업마다 이처럼 차이가 나는 것은 주력 업종 및 사업장의 위치와 관련이 깊다. 제조업이 주력 종목이거나 지방에 계열사와 사무소가 있는 기업일수록 지방대 출신 채용 비율이 높다. 따라서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지역 연고가 있는 기업에 시도하는 게 유리하다”고 충고한다. 이것은 역으로 공단이 없는 지역의 대졸자들은 취업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이와 함께 거론되는 것이 여대생 취업 문제이다. 기업의 한 관계자는 “여대생들은 불쌍하다. 서류 전형 과정에서 그들이 제출한 지원서는 대부분 탈락한다”라고 털어놓았다. 경쟁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 대졸 여성 취업률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에 50대 그룹이 대졸 여성을 채용한 인원은 2천5백26명으로 전체의 9.7%를 차지했는데, 이는 88~90년의 4%, 91년의 5.4%, 92년의 6.3%를 감안하면 약간 늘어난 수치이다. 하지만 아직도 여성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한정돼 있으며, 이 벽이 하루 아침에 허물어질 것 같지도 않다.

  오는 12월4일부터 취업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좋은 직장을 구하려는 산업 예비군들과 유능한 신입 사원을 채용하려는 기업들이 일대 혼전을 벌일 것이다. 연세대 취업담당 주임 김농주씨(41)는 취업 전선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먼저 자기가 정말로 보람을 느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우선 급한 것은 취직이지만, 장기적으로 따져봐야 할 것은 평생을 걸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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