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의 ‘평양 상률작전’
  • 도쿄 ·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2.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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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특파원’ 경쟁 치열… 끈잡기 · 환심사기 · 찾아뵙기 등 백출

‘평양행 차표’를 얻기 위한 일본 언론사들의 경쟁이 갈수록 과열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북경에서 개최된 제6차 북 · 일수교 교섭은 식민지통치 피해보상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양측이 이미 조약안을 상대방에게 제시하는 등 북 · 일수교 교섭은 후반전에 돌입한 듯하다.

이처럼 수교교섭의 발걸음이 빨라질 조짐을 보이자 평양 입성을 위해 치열한 암투를 벌이는 것이 바로 일본 언론사들이다. 평양 입성 경쟁의 표면적인 이유는 경쟁지나 다른 방송사보다 한발 앞서 평양에 상주특파원을 둠으로써 사세를 과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보도를 선점함으로써 판매부수나 시청률을 높이겠다는 상흔도 이 경쟁을 더욱 가열시키는 요인이다.

“북한, 수교 전에 특파원 받아들일 것”
평양행 경쟁이 가열되는 또 다른 이유는 북한 당국이 금년중에 일본 언론사들의 평양 특파원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관측은 국교가 없던 중국과 기자교환협정을 맺어 특파원을 상호교환환 전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일본과 중국은 지난 72년 국교를 정상화시켰으나 이보다 7년 앞선 65년 9월 ‘일 · 중기자교환협정’을 맺어 상호 9명씩의 특파원을 교환한 바 있다.

북한 내부에 정통한 일본의 한 언론인은 “북한 당국도 이러한 예를 감안해 국교정상화 이전에 일본 언론사들의 평양특파원 사무소설치를 허가해줄 방침을 굳히고 있다. 문제는 ‘평양행 차표’가 그리 많지 않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일본의 전국 주요신문 · 방송사는 현재 17개사에 달하나 국교정상화 이전에 평양에 상주특파원 사무소설치를 허가받게 될 언론사는 그 중 수개사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어느 언론사가 ‘평양행 차표’를 먼저 받을 것인가 하는 경쟁은 북한 당국의 자의적인 선택에 따라 결판이 날 것이다. 다시말해 ‘평양행 차표시장’은 일본 언론사들의 ‘買入者 시장’이 아니라 북한 당국의 완전한 ‘賣出者 시장’인 것이다.

일본 언론가에 나도는 소문에 따르면 한 신문사는 북한 실력자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지는 등 북한 당국의 환심사기 작전을 전개중이며 또 다른 신문사는 일본 정계의 최대 실력자를 등에 업고 ‘그날’에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끈잡기 작전 외에도 일본 언론사들은 작년 이후 이른바 ‘평양 모우데’(평양 찾아뵙기) 작전을 활발히 추진해왔다.

작년 4월20일자 <마이니치> 조간은 일본의 보도진으로서는 11년만에 처음 김주석과 회견했다는 설명과 함께 이 단독회견 기사로 1 · 2 · 3면을 거의 채우다시피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제주도에서 열린 한 · 소정상회담 기사는 1면의 한모퉁이로 밀렸다. 이 때문에 <마이니치>는 북한 당국의 ‘한 · 소정상회담 김빼기작전’에 이용당했다는 비난도 들었으나 일본 언론가에서는 “왜 하필이면 <마이니치>가 단독회견에 성공할 수 있었느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이때 일본 언론가에 유포된 소문에 따름녀 <요미우리>(발행부수 9백만부)는 보수적 색깔 때문에 제외되었고, <아사히>(발행부수 8백만부)는 자매 시사주간지 《아에라》가 북한의 핵개발 진상을 자세하게 파헤친 때문에 북한 당국의 미움을 사 결국 <마이니치>가 어부지리를 얻었다는 설이 그럴듯하게 퍼졌다. 그러나 일본 언론계에 정통한 소식통은 <마이니치>가 김주석과 단독회견에 성공한 것은 ‘가네마루 친서’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즉 다른 경쟁자들도 당시 나름대로의 루트를 통해 김주석과의 닩독회견을 적극 추진하고 있었으나 북 · 일수교 교섭의 최대 후원자인 가네마루 신 자민당 부총재를 등에 업은 <마이니치>가 결국 ‘평양 모우데’ 경쟁에서 첫 승리를 안았다는 것이다.

<마이니치>의 단독회견 이후 일본 언론사들의 ‘평양 모우데’는 급격히 늘어났다. 작년 5월13일 <요미우리>의 방조단은 평양 교외 초대소에서 김주석과 회견하고 그가 일본의 인기 대중영화 시리즈 <남자는 고달프다>를 25편이나 보았다는 일화를 소개함으로써 일본에서는 ‘반일 혁명투사’라는 이미지가 강한 김주석을 ‘일본에 대한 이해자’로 부각시키려고 상당해 애썼다.

작년 6월1일에는 <교도통신> 방조단이 평남 안주시에서 김주석과의 단독회견에 성공했고, 7월말에는 일 · 조우호친선의 배를 이용하여 일본의 중견 언론인들이 대거 평양을 다녀왔다. 이 방북 직후 <아사히>의 한 편집위원은 동행한 언론인들의 북한취재 태도가 “경거망동이었다”는 친북성향 기사를 《아사히 저널》에 기고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일본 언론사들의 치열한 ‘평양입성’ 경쟁은 이미 1년 전부터 평양특파원 후보자를 내정해놓고 ‘그날’에 대비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본의 주요 언론사들이 평양특파원 후보자를 내정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1월말 북경에서 북 · 일수교 교섭이 개시된 직후로 여겨진다.

현재 각 언론사에서 내부적으로 공인된 평양특파원 후보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서울특파원 출신들이다. 이들은 현재 서울식 말투를 평양식 말투로 교정하기 위해 맹연습중이며 북한식 예의범절을 새롭게 공부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고 한다. 예를 들면 전화를 걸 때 서울에서는 “여보세요”하면 되나 평양에서는 “여보십시오”라고 하기 때문에 ‘서울티’를 없애기 위한 친북훈련에 눈코뜰 새가 없다는 것이다.

“NHK가 가장 유력하다”
앞서의 일본 언론인은 북 · 일수교 이전 그리고 올해 안에 평양에 상주특파원을 파견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언론사로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를 꼽았다. 세계 각굮의 독재자들이 텔레비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김주석이 작년 5월 <요미우리>와의 회견에서 일본영화 팬이라는 사실을 밝혔다는 점에서 NHK가 가장 유력하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작년 6월 김주석과 단독회견에 성공한 <교도통신>이 유력하다는 것이 그의 관측이다. 이 언론인은 또 북한 당국이 한꺼번에 3사의 평양특파원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그는 또 북한 당국이 일본 언론사를 선별할 때 그 언론사의 명성보다는 내정된 특파원 후보자의 친북성향에 따라 ‘평양행 차표’를 발부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즉 ‘어떤 언론사냐’가 아니라 ‘어떤 기자냐’라는 것이 최우선 선별기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평양특파원 후보자 모두가 평양행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물론 최초의 평양특파원이라는 이력이 붙는다는 점, 베를린장벽붕괴와 유사한 북한체제의 붕괴, 통일한국의 출현이라는 역사적 현장을 직접 취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은 있다.

하지만 평양에는 일본인학교가 없어 그들은 가족을 남겨둔 채 단신으로 부임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떨쳐버릴 수 없고, 모든 것이 불편한 평양생활을 상상하면 유배되는 기분이라는 것이 그들의 속마음이다. 이 때문에 한때 평양특파원으로 내정되었던 어느 기자는 미국에서 근무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뛸듯이 기뻐하며 환성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가장 큰 고민은 취재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용될 것이냐 하는 점에 있다. 북한은 현재 평양주재 외교관들에게도 평양에서 40㎞ 이상 벗어날 경우 외교부의 승인을 받도록 조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언론사의 평양특파원도 결국 평양 주변을 빙빙 돌다가 북한 당국의 관제정보를 그대로 전달하는 ‘관제 특파원’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취재 분위기, 문혁 때 중국과 비슷할 듯
일본 언론사 중에서도 <아사히>는 과거 중국보도에서 이러한 ‘전과’를 남긴 대표적인 신문사이다. 65년 6개 신문사, 1개 통신사, 2개 방송사의 북경특파원 사무소가 설치된 직후 때마침 불어닥친 ‘문화대혁명’ 때 대자보의 한자를 판독할 수 있는 일본 언론은 큰 활약을 했다.

그러나 그 대자보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이듬해 9월 <산케이> <마이니치> <니시닛퐁> 특파원이 강제추방되었고 10월에는 달라이 라마 기사로 <요미우리> 특파원이 추방되는 등 70년 9월가지 <아사히> 특파원을 제외한 전원이 중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사히> 특파원이 끝까지 북경에 잔류할 수 있었던 것은 ‘일 · 중기자교환협정’ 때 중국측이 제시한 정치3원칙, 즉 △중국을 적대시하지 않는다 △2개의 중국을 조성하는 음모에 가담하지 않는다 △중 · 일국교정상화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충실히 준수했을 뿐 아니라 문화대혁명에 대한 예찬기사를 계속 썼기 때문이다.

북하나 당국도 특파원사무소 설치조건으로 이와 비슷한 원칙을 일본 언론사들에게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일본 언론사들은 과거 <아사히>의 중국보도 태도와 같은 전철을 또다시 밟을 확률이 높다. 그러한 점에서 일본의 한 중견 언론인의 지적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일본 언론은 과거 한반도문제 보도에 있어 많은 오류를 범해왔다. 예를 들면 한국의 초가집은 ‘빈곤의 상징’이고 북한의 초가집은 ‘민족전통의 상징’이라는 식이었다. 장차 평양특파원의 북한보도는 북한편중식 보도를 시정하는 좋은 계기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일본 언론은 평양보도를 통해 큰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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