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 기괴한 우파의 세상 보기
  • 고지훈(서울대 강사 · 한국현대사)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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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모든 학자들의 ‘이론’은 언제든 ‘뻥’이 될 수 있는 위험에 놓여 있다. 때문에 학자들은 자신의 이론 앞에서는 겸손한 편이다. 한데 이런 학자적 겸허함은 그가 ‘실천가’로 나서는 그 순간 바로 폐기해야만 한다. 자신의 이론이 절대 진리라는 확신을 가져야만 실천가가 될 수 있는 법이다. 피사의 사탑에서 추와 깃털을 낙하시킨 갈릴레이나, 지상에 천상의 낙원을 건설하려던 레닌이나, 금세라도 수십조원을 우리에게 떠안길 것 같던 황우석 박사나 이런 점에선 다를 것이 없다. 

기존 보수 단체를 통합한 ‘뉴라이트재단’이라는 단체가 출범한 모양이다. 재단을 대표해서 출범식 기자 회견에 나섰던 분은 경제학계의 원로이자 어른이다. 필자도 그분의 책을 읽어보았다. 학자로서의 성실성이나 철저함에 감탄한 기억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만큼 이해하기 힘든 것도 없다’며 자신의 이론이 ‘잠정적 진리’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솔직히 천재들은 뭐가 달라도 다른 법이다. 천재적인 경제학자이기도 한 뉴라이트 재단의 좌장께서 하신 말씀 몇 가지를 보자.

“대외 협력은 곧 대외 종속이고 제국주의에 대한 타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했다. 그럴 수 있다. 한데 도대체 현 정부의 어떤 정책이, 누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영화배우한테까지 “상식과 도를 넘어섰다”라는 핀잔을 들어야 할 정도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위신은 대외 협력과 시장 개방 압력 앞에 와장창 무너졌다. 우리와는 상관없는 국제 분쟁에 휘말릴지도 모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국회도 무시한 채 ‘독박 쓰듯’ 혼자 처리한 것이 현 집권 세력 아닌가? 게다가 뉴스에 잘 안 나온다고 저 먼 이국 땅에서 고생하는 우리 자이툰 부대원들을 잊으셨나? 미국인조차 납득하지 못하는 이라크전쟁에 ‘끽’ 소리 한번 못한 채 우리 세금 들여 우리 청년들 고생시키는 것이 현 정부의 대미 친선의 본질이다.

그런데도 뉴라이트들에게는 한참 모자란다. 어디 ‘대미’뿐이랴? 일본의 해저측량선 출항을 계기로 다시 촉발된 ‘독도 분쟁’에 대해서도 “현 정부가 괜히 독도 문제를 건드려서 시끄럽게 만들었다”라며 한술 더 뜬다.

이쯤 되면 뉴라이트 진영의 현실 인지 능력을 심각하게 의심해보아야 한다. 어쩌면 이렇게도 세상을 보는 눈이 우리 범인들과는 다를까? 복잡한 경제 관련 통계수치들을 수십년 연구한 결과, 일본의 식민지 통치와 박정희식 개발독재 덕에 이만큼이라도 살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그 모든 것들은 아름다웠노라는, 정말 심오하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한 ‘역사적 통찰’을 하신 분의 현실 인식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너무 어려운 고차방정식과 미적분만 풀다 보니 ‘1+1’의 계산이 낯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독도 문제 괜히 건드려 시끄럽게 했다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노동이건 공부건 간에 지나치게 오랫동안 몰두하다 보면 부작용이 생긴다. 갑자기 덧셈 뺄셈도 안 되고, 나사 조이는 단순 작업도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잠시 쉬어가는 것이 좋다. 당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또 우리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그렇다.

뉴라이트 재단의 좌장인 그 교수는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광주학살은 문제지만 “경제 성장이란 측면에서는 공(功)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인터뷰를 보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투덜대던 갈릴레이가 떠올랐다. 비록 법정에서는 부인했지만 갈릴레이의 확신은 신학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모든 중세인의 삶을 뒤흔들었다. “모든 것에 앞서 경제가 있다”라는 뉴라이트의 ‘자기 확신’도 그에 못지않은 위력을 갖고 있다. 단순히 현대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교정하는 것만이 뉴라이트의 목표가 아닐 것이다. 이들의 진정한 목표는 지금까지 우리가 믿어왔던 정의(Justice)에 대한 통념을 뒤흔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성경을 읽기 위해서라도 절도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 단순한 정의 말이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뉴(New)’라는 접두어가 아주 잘 어울린다. 참으로 낯설고 기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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