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세계화’는 민둥산 지름길
  • 소성민 기자 ()
  • 승인 1994.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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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통 없이 나무 심어 꼴 사나운 부조화/환경 공해로 토양 산성화 ... 토종 동식물 멸종 위기

남산이 신음하고 있다. 도심 쪽에 가까운 북서쪽 비탈 신갈나무 숲에는 고사 직전의 나무들이 주검처럼 쓰러져 있다.

  산꼭대기 근처 케이블카 종점 밑에 펼쳐진 남산 북서쪽 비탈은 신갈나무 군락을 중심으로 참나무 · 산벚나무 · 떼죽나무 · 진달래 · 팥배나무 · 당단풍 등 재래 수종들이 어울려 숲을 이룬다. 그러나 말이 숲이지 나무나 바위에 이끼도 끼지 않고, 헐겁고 엉성한 나무 밑둥과 가지마다 매연 검댕이 달라붙어 있다.

  취재반과 동행한 李景宰교수(서울시립대 · 조경학과)에 따르면, 이 북서쪽 비탈 숲은 세대 교체할 젊은 나무들이 없기 때문에 완전히 죽어버린 숲이다. 그는 “관리 책임자들은 자연 현상이라고 말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연 현상이면 늙어 죽는 나무들을 밀어내고 세대 교체할 젊은 나무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곳은 보다시피 그렇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서울 남산에서는 세대 교체가 단절되어 버린 것이다. 이교수가 이 지역의 5백m2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86년에 27종 1천3백75그루가 있던 것이 90년에는 19종 3백92그루, 93년에는 19종 2백95그루로 격감하는 추세이다.

  북서쪽 비탈에 드문드문 서있는 참나무의 밑둥에는 새로 틔운 움들이 가느다란 줄기를 뻗고 있다. 마치 관목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이것들은 관목이 아니라 참나무의 ‘사생아’이다.

  이교수는 “참나무는 생명력이 강한 활엽수이지만 연명하기가 힘겨워 위로 계속 성장해가지 못하니까 이처럼 움을 내서 세대를 이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 움들이 남산의 피폐한 생태 환경을 대변한다”라고 말했다. 남산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무들의 싸움은 이렇게 필사적이다.

썩지 않는 나뭇잎
  곳곳에 사람들이 매달아준 새집들은 비어 있다. 한때 새들이 살았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현재 남산에서 살고 있는 네 발 달린 짐승은 다람쥐 · 청솔모 · 쥐가 고작이고, 이들을 잡아먹고 사는 들고양이가 더러 다닐 따름이다. 90년 전후에 토끼나 꿩 등속을 수차례 방생했으나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임업연구원 李字新 박사(산림생물부 야생동물과)가 92년 5월~93년 10월 조사했을 때, 새 종류로는 박새 · 참새 · 까치 · 꿩 · 붉은머리오목눈이 · 오색딱따구리 등 16종이 있는데 집비둘기와 참새를 제하고는 61마리만 발견했을 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토양의 산성화로 관목이 형성되지 않아 숲이 숲 같지 않기 때문이다. 관목 대신 잡풀인 서양벌등골나물만 남산 전역 곳곳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이경재 교수에 따르면, 이 풀은 80년대 미8군 군수 물자를 통해 들어와 급속히 번식한 서양 식물인데 남산에서 우리 고유의 자생 풀들을 몰아내고 거대한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풀은 남산 전역, 특히 남쪽 비탈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남산에 떨어져 있는 낙엽들은 갓 떨어진 것처럼 윤기가 흐른다. 싱싱한 낙엽, 토양이 심하게 산성화해 미생물이 살기 힘들기 때문에 이처럼 낙엽이 쌓일 줄만 알지 썩을 줄은 모른다. 이같은 토양 여건으로 지렁이나 땅강아지가 살지 못한다. 그래서 개구리도, 뱀도 사라져 버렸다. 까만 모기라는 엉뚱한 불청객만 출몰할 뿐이다. 이교수에 따르면, 3~4년 전부터 남산에 발생한 까만 모기 때문에 여름에는 북서쪽 비탈에 접근하기조차 어렵다. 까만 모기는 울산에서도 발견된 변종 모기로 아황산가스가 많은 곳에서 산다.

전체 수종의 32%가 아까시나무
  이교수는 “처음 이곳에서 조사를 시작했던 78년 봄만 해도 ‘뱀 조심하라’는 게 중요한 잔소리였다. 그때만 해도 남산엔 뱀이 많았다. 그때는 이곳도 강원도 산골짜기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가 86년에 다시 조사할 때는 학생들과 남산을 샅샅이 뒤졌지만 10여 마리의 뱀밖에 보지 못했다. 그러다 90년대 들어와서는 아예 못보았다고 한다. 먹이사슬이 끊어지자 종적을 감춘 것이다.

  남산 전역에 급속히 퍼져가는 서양벌등골나물 못지 않게 외래 수종들이 판치는 남산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가죽나무이다. 가죽나무는 신라호텔 뒤편과 한남동 교차로 주변을 비롯해 이미 남산 곳곳에 퍼져 있다. 중국에서 건너온 이 나무는 소태나무과에 속하며 공해가 심한 악조건에서도 잘 자란다. 이같은 외래종 나무가 남산에서 고유 수종을 몰아내면서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즉 고유 수종을 먹고 사는 곤충이나 동물 들의 먹이가 되지 않는 이런 외래종 나무는 생태계 보존에 별 도움이 안된다. 가죽나무는 소태나무과라 쓴맛을 내는 강력한 화학 물질을 잎에 함유하고 있는데, 이를 분해할 미생물이 별로 없다고 이교수는 말했다.

  남산 타워에서 내려다본 남쪽 비탈 숲들은 무질서한 조림 때문에 부조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팔각정에서 순환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기상천외한 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소나무 · 잣나무 · 은수원사시나무 · 아까시나무(아카시아) · 산벚나무 ·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가운데 중국이 원산지인 가죽나무가 버티고 있다. 또 가로수나 쓰일 법한 덩치 큰 버즘나무(플라타너스)가 비비 틀린 소나무를 조롱하듯 솟아 있다. 원산지가 양자강 유역인 메타세콰이어가 쭉쭉 자라고, 백두산에 많다는 자작나무도 나란히 서서 하얀 자태를 뽐낸다. 심직어는 파리의 가로수로 유명한 마로니에까지 끼여 있다. 나무들 사이로 무성하게 자란 서양벌등골나물과 방크스소나무와 리기다소나무 등 수입 소나무까지 꼴사나운 남산의 ‘세계화’에 가담하고 잇다. 그러니 남산의세계화는 무국적화에 불과한 것이다.

  현재 남산에 주로 분포하는 85과 2백80속 5백52종 나무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수종은 아까시나무로,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전체 수종의 38%이며 남산 면적 가운데 78ha를 차지한다. 소나무(20%, 42ha) 신갈나무(15%, 32ha)에 비하면 압도적인 우위이다. 아까시나무는 남쪽 비탈 외곽 도로 쪽에 무리 지어 살고 있으며, 그밖의 지역에는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반면에 북동쪽 능선 국립극장 주변에는 아까시나무와 소나무, 북서쪽 비탈엔 신갈나무가 우세하다.

  일제시대와 6 · 25 전쟁을 거치면서 빠른 번식력과 강한 생존력 때문에 산림녹화용으로 많이 심어진 아까시나무는 산성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 산성비에 들어 있는 질소산화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질소산화물은 자동차 배기 가스에서 많이 배출되는데, 아까시나무는 질소를 필요로 하는 뿌리혹박테리아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장 속도가 빠른 것이다.

  이교수는 ‘산을 망치는 나무’처럼 인식돼 있는 아까시나무이지만 이를 베어내고 소나무를 심는 일에는 반대한다. 그는 “애국가 2절처럼 소나무가 남산을 상징하던 시대는 지났다. 소나무는 지금의 남산 생태계에 잘 맞지 않는다. 지금 살고 있는 수종들이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더라도 산성화한 토양에 잘 적응하고 나무 구실은 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옮겨와 생존력이 약해진 소나무를 꼭 돈 들여 심을 필요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남산은 소나무 ‘양로원’
  서울시는 80년대부터 꾸준히 소나무를 심어 91년 9백20그루, 92년 1천50그루, 93년에 2천3백57그루를 심었고 올해에도 2천9백78그루를 남산 나무 가족에 편입시켰다. 서울시는 2000년까지 7천7백그루를 더 심을 예정이다. 서울시 공원과 박인규 계장은 “아까시나무는 생명력이 왕성해 소나무의 생장을 방해하므로 부분적으로 이를 벌초해 그 자리에 소나무를 심을 예정이다”라고 말하면서 “산성 토양이 소나무에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지만 소나무 심는 지역에는 비료를 줘 토양을 중성화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지력 증진을 위해 92년부터 올해까지 소나무 숲 73ha에 소석회 1백13t를 뿌렸다.

  서울시는 소나무를 계속 심어나가겠다지만, 문제는 소나무에 솔잎이 적을 뿐만 아니라 솔잎 끝이 매연에 찌들어 누렇게 변색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이런 현장을 가리켜 ‘고나무 고아원’이라고 표현했다. 즉 남산은 몇 안되는 늙은 소나무의 고아원이라는 것이다. 그는 “활엽수와 소나무가 생존 경쟁을 하면 소나무가 질 수밖에 없다. 소나무는 햇빛을 많이 필요로 하는 극양수이기 때문에 활엽수가 많아지면 소나무가 자라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조선시대 때 남산에 소나무가 무성했던 것은 나라가 벌채를 금지하는 ‘봉산(封山)’으로 지정해 계획적으로 관리해 주었기 때문이다. 선비의 기상을 상징한다 해서 세종대왕이 장정 3백명으로 하여금 남산에 소나무를 집중적으로 심게 한 후부터 활엽수가 자라면 계속 잘라내 주었다고 한다.

  이교수는 “무리한 소나무 이식보다는 남산의 생태 환경을 정밀히 조사한 다음 거기에 알맞은 수종으로 다원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외인아파트가 무너진 자리에 식물원을 짓는 식의 전시행정보다는 바로 그런 자리에 소나무를 심는 것이 참다운 ‘남산 제모습 가꾸기‘라고 말했다. 무질서한 조림과 환경 오염으로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남산의 기형적 모습은 피로한 서울의 상징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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