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열쇠 바칼로레아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4.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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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입 논술’ 제도 · 내용 분석 / 논리 · 문장 · 예증 · 설계력이 기본



  프랑스 지식(인)은 논술에서 나온다. 바칼로레아(BAC)라고 하는 전통적인 대학 입학 자격 시험 때문이다.
  ‘바칼로레아 논술’은 대학에 들어갈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국민학교 교사 자격 시험, 중등 교사 자격 시험, 대학교수 자격 시험과 같은 주요 국가 고시는 물론이고, 각종 취직 시험에서도 논술은 빠지지 않는다. 논술 시험의 문을 통과하지 않는 한 프랑스에서는 지식인이 될 수 없다.

  프랑스 지성의 산실인 바칼로레아가 최근 김화영 교수(고려대 · 불문학)에 의해 우리말로 편역되었다. <논술의 일곱 가지 열쇠>(도서출판창)라는 제목에 ‘바칼로레아 논술의 정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바칼로레아 논술이 요구하는 기본 원칙들에서부터 답안 작성법, 그리고 문학 에세이(작문)와 가장 빈번히 출제되는 문제들의 답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원서를 고려대 불문과 상급반 학생들의 <논문작성법> 교재로 여러 해 사용한 김화영 교수는, 이 책이 논술 고사를 눈앞에 둔 수험생에게도 좋은 지침이 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논술을 지도하는 선생님이나 대학생 이상 수준의 독자에게 도움과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뜻에서 만들었다’고 서문에 밝혔다.

  적절한 논술 교육 모델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국내 고등학교 교실은 물론이고 갈수록 모국어 구사 능력이 떨어지는 대학교 강의실에도 바칼로레아 논술은 ‘긴급 수혈’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국내 대학 입시 논술의 기본 모델이 다름 아닌 바칼로레아 논술이기 때문이다.

개인적 · 개성적 느낌을 표현하라
  바칼로레아는 여러 과목으로 구성되고 전공에 따라서 또 달라지지만 프랑스어, 즉 국어 과목은 필수이다. 시험은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나는 6월 말게 치른다.

  시험 문제는 교육구 단위로 달라지지만, 교육부는 반드시 필기 시험과 구두 시험 두 가지를 실시하라고 지침을 내린다. 필기 시험은 △텍스트 요약 △텍스트에 대한 해석과 분석 △논술 세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택하게 되어 있는데, 어느 것을 택하더라도 논술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필기 시험 중 논술은 교육부가 지정한 고등학교 교사가 출제하며, 채점 역시 고등학교 교사가 담당한다. 논술 시험은 4시간이다. 답안 분량은 A4용지 양면 정도(2백자 원고지 20장 안팎), 채점 기준은 △논리성 △개성적 반응 △표현력 △철자법 등이며 20점 만점에 10점 이상을 받아야 합격할 수 있다.

  구두 시험은 고등학교에서 배운 여러 작가의 명단을 수험생이 시험관에게 제시하면 시험관이 그 중에서 선택해 질문하고 약 20분동안 학생이 대답한다.

  국어 과목 문제의 성격을 규정한 프랑스 교육부 지침은, 수험생 자신의 개인적인 반응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바칼로레아 국어 과목의 지침은 다음과 같다. △논술은 수험생의 자율적인 사고에 큰 비중을 둔다 △논술자 자신의 진정한 반응에 주목한다 △수험생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를 주목한다 △수험생이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할 능력이 있는지를 주목한다.

  개성적인 표현에 이어 요구되는 것이 여러 가지 예를 들라는 것이다. 바칼로레아 논술은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1g의 구체성이 1t의 일반성보다 더 값진 것이다’라는 헨리 제임스의 말을 경구로 삼으라고 권한다.

  구체적인 예를 통해 주장을 뒷받침할 때에는 논리적인 엄격성에 바탕해야 한다. 바칼로레아 논술은 서정적 감정을 분출하기보다는 수학적 증명에 가까운 논리적 엄격성에 점수를 준다. 그렇다고 감수성이나 문체의 광채를 무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문장 구성은 가능한 한 단순한 것이 좋다.

  바칼로레아 논술 교육의 핵심은 ‘논술 설계’에 있다. △분명하게 표현하고 △흥미와 관심을 조절하며 △자신의 생각과 주장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생각들을 효과적으로 정돈하고 조직하는 설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논술은 치밀한 건축이라는 것이다. 뛰어난 변호사는 변론을 시작할 대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 여기서는 무엇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가’. 논술을 앞둔 수험생의 처지는 변호사와 같다. 논술은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논술은 우선 문제를 제기하고(서론), 문제를 검토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을 펼친 뒤(본론), 총결산(결론)을 내리는 과정으로 설계된다.

  바칼로레아 논술은 “나의 논술문을 읽게 될 사람이 그 주제를 모른다고 가정하고 출발하는 것이 옳다. 마치 처음 대하는 청중에게 말하듯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일러준다.

  바칼로레아 논술은 서론에서부터 자기가 주제의 핵심적 어휘를 어떤 뜻으로 이해하는지를 명확히 밝히라고 요구한다. 예컨대 ‘오늘날 스포츠는 허영의 전시장이 되었다’는 주제를 다룰 때 ‘스포츠’라는 낱말에 열 줄, ‘전시장’이라는 낱말에 열 줄을 할애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핵심적인 단어는 ‘허영’인 것이다. 또한 뒤의 본론이나 결론에 나오지 않는 내용을 서론에서 예고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충실한 설계를 바탕으로 하여 글을 쓰면 이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는다.

  논술 본론을 설계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변증법적 설계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단순한 대립을 이루는 두 주장을 병치하거나, 형식적으로 이 둘을 종합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된다. 바칼로레아 논술은 변증법적 설계로 처리할 수 있는 주제로 다음과 같은 예문을 내놓고 있다. ‘J.K. 니에레르는 <독립과 교육>이라는 저서에서, 책에서 얻은 지식을 지나치게 중요시하는 것은 그것을 과소평가하는 것 못지 않게 잘못이다라고 썻다. 이 지적을 논술 형태로 토론하라’.

  이밖에도 ‘어떤 점에서 오늘날 우리는 사회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와 같은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문제-원인-해결책 형태의 설계’, ‘작가는 왜 글을 쓰는 것일까’ 같은 주제를 처리할 수 있는 ‘목록작성식 설계’, 창조와 제조는 어떻게 다른지 여러 분야들에서 빌려온 예들을 근거로 삼아 설명하라‘같은 유형에 적합한 ’비교를 통한 설계‘ 등 다양한 설계 훈련이 있다.

  김화영 교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논술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면서 △자료와 정보수집 △설계에 대한 연구 △글쓰기 등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추라고 권유한다. 이 가운데 가장 필수적인 것이 첫번째 단계인 자료와 정보 수집이다. 책을 많이 읽으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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