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에서 발굴한 옛 옷가지의 ‘외출’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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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우리 옷, 환생>전/출토복식 100점 선보여

 
수년 전 상영된 영화 <스캔들>은 내용뿐 아니라 출연진들이 입고 나온 한복의 화려함으로도 화제였다. 영화 <왕의 남자>나 드라마 <대장금> 등에도 당시 사람들이 입었던 많은 옷이 나왔다. 그런데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는 이 의상들은 요즘 한국인이 입는 한복과는 어딘지 조금씩 달랐다.

사극 속 의상들은 어떤 고증 과정을 거쳤을까. 우선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옛 문헌들에 단편적인 정보가 있다. 초상화나 풍속화에도 당시 사람들의 일상복이 잘 그려져 있다. 하지만 문헌 자료나 그림만으로 옛 옷을 짜임에서 질감까지 온전히 복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집안 대대로 물려온 옛날 옷이 발견된다면 가능한 일이겠으나, 현실에서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이런 것이 우리 옷이다’고 확인해줄 만한 물증이 어디 없을까.

해답은 무덤 속에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입었던 옷을 시신에 몇 겹씩 껴입혀서 관에 뉘었다. 그 다음 빈 공간에는 망자의 옷뿐 아니라, 남편이나 아내의 옷가지를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이를 습의, 염의, 보공용 복식 등으로 부른다.

한복의 아름다운 변천사 한눈에 확인

수백 년이 흐른 뒤, 이장하거나 개발한다는 이유로 무덤이 파헤쳐지는 때가 있다. 관을 열면 보통 뼈조각과 함께 누렇게 변한 옷가지들이 남아 있다. 이렇게 수습된 옷을 ‘출토복식’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복식사 연구자에게 출토복식을 연구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1980년대 이전까지 국내의 복식사 연구는 문헌과 그림을 보며 상상력으로 짜 맞추는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1963년 정조대왕의 누이인 청연군주(왕세자와 정빈 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묘에서 출토복식이 다량 쏟아지면서 복식사 연구의 혁명이 시작되었다. 선구자는 고 석주선 박사(1911~1996)다. 나비 박사로 유명한 석주명 박사의 여동생이다.

석박사는 이후 여러 무덤에서 발굴된 출토복식들을 모아 1981년 <수의 특별전>을 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관 속의 옷은 그냥 수의로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개발 붐을 타고 전국의 산하가 파헤쳐지면서 수많은 출토복식들이 보고되었고, 연구가 진행될수록 그 옷들이 수의가 아니라 망자가 생전에 입던 일상복이었음이 밝혀졌다. 그렇게 우리 복식사의 비밀이 한 꺼풀씩 벗겨졌다.

 
“현재는 망자에게 수의를 입히지만 우리 전통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망자가 입어서 손때 묻은 비단옷이나 무명옷을 그대로 입혀서 장사 지냈다.” 출토복식 전문가 박성실 교수(단국대)의 말이다. 박교수는 또한 조선 초까지 남녀 모두 풍성하게 옷을 입었는데, 임진왜란 이후부터 일상복의 소매가 좁아지는 등 간편복 스타일로 유행이 바뀌었다고 한복의 시대별 특징을 설명했다.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우림)이 석주선 박사 10주기를 맞아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관장 정영호)과 함께 <다시 태어난 우리 옷, 환생>전(5월28일까지)을 열고 있다. 국내에서 발굴된 출토복식 중 ‘명품’ 100점이 나와 있어서 한복의 아름다운 자태와 다양함, 변천사 등을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5월2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한·중·일 학자들이 참가하는 국제 학술 세미나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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