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마피아와 전쟁중’
  • 한종호 기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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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냉전 틈타 표면 부상… 본고장 이탈리아 · ‘야쿠자’ 일본 이어 러시아까지 대홍역


 

마피아와의 전쟁. 흔한 영화제목이 아니다. 탈냉전으로 세계질서가 뒤흔들리면서 지표면으로 솟아오른 지하권력과 기존 질서를 사수하려는 공권력 사이의 끝없는 승부전이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시장경제라는 이름으로 급속하게 자본주의화를 추진하고 있는 러시아는 체제전환기를 틈탄 범죄조직의 창궐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름답던 러시아의 고도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이제 세계적인 범죄도시가 돼버렸다. 이 도시는 술과 도박, 매음과 갈취 등 갱조직의 검은 거래로 악명높았던 1930년대의 미국 시카고에 비유될 정도로 폭력과 범죄가 난무하는 어둔운 도시로 전락했다. 경찰이 보는 앞에서 상인들로부터 버젓이 ‘세금’을 뜯어내고 거리는 매일 밤 폭력배들의 관할권 다툼으로 무정부상태에 빠진다. 범죄 뒤에는 붉은 마피아라고 불리는 폭력조직이 있다. 러시아 내무부 통계를 보면 전국적으로 약 5천개 이상의 크고 작은 폭력조직이 있다. 마피아는 정부관리와 결탁하여 마약거래, 달러 환전, 매춘에서부터 부동산투기, 원자재 밀수출에 이르기까지 각종 이권에 개입하여 축적한 막대한 부로 신부르조아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의 연간 수입은 국민총생산의 20% 규모인 2천억루블에 이른다는 비공식 통계도 있다.

“러시아 개혁 첫 열매는 마피아 차지”

러시아에 마피아가 생겨난 것은 후르시초프 시대에 ‘사회주의의 완전승리’가 선언된 뒤 모든 경제활동이 국가의 손에 장악되고 거대한 암시장이 형성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이들은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면서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해 이제는 전국적 규모의 거대한 조지긍로 커버렸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개혁의 첫번째 열매는 마피아가 모두 차지했다”는 말이 나돈다. 마피아조직이 날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데 비해 경찰력은 터무니없이 약하다. ‘법전과 도덕성’밖에 가진 것이 없는 경찰은 컴퓨터와 기관총, 그리고 벤츠와 무선전화기로 무장한 범죄조직과의 승산 없는 전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에 마피아가 날뛰는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개혁으로 인해 그동안 국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관장하던 경제활동의 전 영역이 대부분 자유화된 반면 이를 규율하는 법과 제도는 전혀 정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마피아는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체제가 전환되는 과정에서 무너진 경제 메커니즘의 공백을 차지하여 폭리를 취한다. 특히 국가의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는 자유기업(코페라치프)은 마피아의 밥이다. 마피아에게 보호비를 뜯기지 않으려면 자체 경비원을 고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엔 전직 KGB요원의 몸값이 계속 올라간다.

볍무연수원의 姜智遠 부장검사는 조직폭력의 유형을 ‘기생적’ 행태에 머무는 후진국형과 ‘자립적 기업적’ 행태에 이른 선진국형으로 구분한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러시아는 적어도 조직범죄에 관한 한 이미 선진국 수준에 다다른 셈이다.

마피아 득세 현상에 대해 일본 게이오대 우찌야마 교수는 “근대국가에서는 국민의 승인을 얻은 공식 권력이 법의 지배라는 통치원리를 설정하여 거기서 일탈하는 비공식 권력을 배제해왔다. 공식 권력이 확립되지 않을 때 마피아가 정치무대로 진출하거나 정치가가 마피아와 결탁하여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삼는다”라고 말했다.

마피아 같은 조직폭력이 법의 지배와 대칭점에 서 있다는 견해의 타당성은 그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좀더 분명해진다.

마피아라는 말은 ‘아름다움’ ‘자랑’이란 뜻으로 제법 그럴싸한 어원을 갖고 있지만 원래는 13세기 이탈리아의 시칠리 섬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나 산적떼에 불과하다. 당시의 마피아는 부패한 지방 지주를 혼내주고 백성들의 인기를 얻던 의적 집단이었다. 그들이 유별났던 것은 보스의 명령에 복종하고 조직의 비밀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다는 ‘오메르타’라는 엄격한 규율을 갖고 있었다는 점 대문이다. 바로 그 ‘철의 규율’ 때문에 마피아는 수백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다만 애초의 의적 정시능ㄴ 이제 모두 사라졌다. 이들은 18세기에 토지귀족에 고용되어 토지를 지키고 소작인을 착취하는 폭력조직 역할을 했다. 20세기 들어 마피아는 농촌을 사실상 지배하면서 농민의 표를 필요로 하는 정치가와 결탁하여 정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친 뒤에는 도시로 진출하여 현대적인 범죄조직으로 성장했다.

일본 역사, 정치 · 폭력 유착의 산물

일본 야쿠자의 역사도 비슷하다. 에도 시대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로건설과 관개시설 등의 공공사업을 추진했다. 그들은 공사비용을 조달하는 수단으로 노동자들의 돈을 뜯어내기 위해 노상에 노름판을 설치해놓고 떠돌이 행상들을 불러모았다. 이런 난장판에서 갈취를 시작한 것이 야쿠자의 시초이다.

미국에도 이탈리아계 마피아가 이민해오기 전가지는 서부개척시대에 형성된 ‘노상강도 귀족’이라는 전통적 폭력조직이 있었다. 지금은 꽤나 고귀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록펠러나 카네기 같은 미국의 유수 가문도 알고 보면 당시 그다지 점잖치 못한 수단을 통해 재산을 쌓고 그 밑천으로 성장했다.

이처럼 마피아는 대개 봉건시대 말에 태어나 자본주의 및 근대국가의 성장과 더불어 조직을 키워왔다. 그 과정에서 정치와 폭력의 결탁이란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국가체제가 완비되면서 폭력조직은 다시 배척당하는 운명을 맞게 됐다. 지금 여러 선진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마피아와의 전쟁도 그런 맥락 속에 이루어지고 있다.

정치와 폭력의 유착을 일본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군국주의 일본은 대륙으로 진출하면서 야쿠자를 끌어들여 궂은 일을 맡게 했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장본인은 물론 식민지 조선에서 정신대 사냥을 담당한 것도 야쿠자였다. 야쿠자는 만주에서는 아편유통을 도맡았고 진주만 공격때는 군복을 입고 참전했다. 60년의 신안보조약 비준으로 비롯된 이른바 안보파동 때 야쿠자는 우익단체의 옷을 입고 시위대를 습격했다. 록히드 사건은 야쿠자의 대부 고다마 요시오의 작품이라고 전해진다.

정계실력자가 가네마루를 물러나게 한 사가와 규빈 스캔들 조사 과정에서는 87년의 자민당 총재 선출 과정에 야쿠자가 개입했음이 밝혀졌다. 당시 가네마루는 와타나베사가와 규빈 사장을 통해 야쿠자 조직을 움직여 다케시타의 출마를 방해하는 극우단체 일본환민당의 입을 다물게 했다. 가케시타 정권은 야쿠자의 힘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역사는 정치인과 야쿠자의 야합에 의해 움직여 왔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도는 지경이다.

4년에 걸쳐 야쿠자의 세계를 추적한 뒤 《야쿠자》라는 책을 펴낸 데이비드 캐플란과 알렉 듀브로는 “야쿠자는 천황제를 숭상하는 극우파와 긴밀하게 얽혀 있다. 극우파와 깡패의 폭력적 동맹은 오랫동안 전후 일본의 정치를 지속적으로 이끌어온 자민당의 준군사적 부대 역할을 해왔다”고 결론지었다.

필리핀 정치인 대부분 사병조직 거느려

정치와 폭력의 결탁은 일본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작년에는 부시 미국대통령의 형 프레스코트 부시가 야쿠자 조직인 이나가와회의 미국진출을 도와주는 대가로 20만달러의 커미션을 챙겨 화제가 됐다. 최근에는 입법의 편의를 제공해주는 조건으로 7천5백만달러를 받은 일리노이주 의회존 다르코 상원의원이 연방수사국에 의해 기소돼 3년의 징역형을 언도받았다. 지난 9월에는 84년 대통령선거에서 최초의 여성 부통령후보에 올랐던 페라로 전 하원의원과 마피아가 얽힌 마르코비치 사건이 있었다. 마피아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는 아틸리아에서는 10월21일 전직 마피아 간부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보고서를 통해 정계의 대부격인 안드레오티 전 수상과 미피아의 관계가 밝혀져 큰 파문을 일으켰다. 현지 언론은 집권 기독교민주당이 마피아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의혹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필리핀의 경우는 좀더 노골적이다. 7천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나라 필리핀에서는 공권력이 구석구석에까지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웬만한 정치인은 모두 자기 지역구에 무장폭력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이들은 이권을 둘러싸고 적대 전영과 끝없이 대립한다. 이는 과거 대지주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농민들로부터 토지를 지키기 위해 만든 사병집단에서 시작된 것인데 독립 후에도 지주층이 정계를 장악함에 따라 그 전통이 이어지게 됐다. 정부 당국은 총기소지 규제를 강화하면서 사병조직을 해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 5월의 총선거에서는 ‘반사병조직 캠페인’ 덕분에 과거에 비해 선거로 인한 유혈사건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측은 “지금도 주지사 등 집망정치인의 30%, 하원의원의 10%가 사병조직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정치와 폭력의 검은 결탁을 보여주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한국 정치도 용팔이사건 등에서 나타난 것처럼 폭력과의 결탁을 보여주었다.

마피아의 위력이 점점 커짐에 따라 각국 정부는 조직범죄를 퇴치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5월 폭력단신법을 통과시킨 뒤 금년 3월1일부터 야마구치 구미 등 3개의 대규모 야쿠자조직을 포함해서 6개의 폭력조직을 ‘지정폭력단’으로 구분하여 특별관리하기 시작했다. 야쿠자측은 “우리는 폭력단이 아니고 의협단체이다”라며 소송준비를 하는 한편 우익단체로 혹은 합법적 사업체로 위장해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마피아 수사를 지휘해온 판사 2명이 폭탄테러로 사망하자 지난 8월 경찰의 권한을 크게 강화한 반마피아법을 통과시켰다. 이탈리아 정부는 국민 사이에 고조되고 있는 정치불신과 유럽통합을 앞두고 마피아의 확산을 우려하는 유럽 각국의 압력 때문에라도 본격적이 마피아 대책을 세워야 할 형편이다. 개혁 · 개방과 함께 대만 및 홍콩에서 밀려들어온 갱단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중국은 금년 봄 조직범죄에 대한 집중단속을 벌여 이들로부터 2천8백8점의 무기를 압수하고 4백14개의 범죄조직을 파괴했다.

황금기를 누리고 있는 러시아 마피아도 언젠가는 서방세계의 마피아처럼 수난기를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한 폭력은 정치의 필요악으로 행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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