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원 댐 속에 화장실 · 주유소
  • 글 · 사진 김당 기자 ()
  • 승인 1992.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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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댐, 수몰지구 그대로 둔 채 담수

새로 짓는 아파트의 물탱크 밑바닥에 똥 오줌 기름이며 녹슨 철근 따위를 방치한 채로 수돗물을 채우면 어찌 될까. 아마 쇠고랑을 찰 각오를 하지 않은 다음에야 그런 강심장을 가진 시공업자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비록 물탱크 규모나 오염물질 농도는 그와 차이지지만 본질은 다를 바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더욱이 사건의 주인공이 국민을 상대로 물을 팔아 이문을 남기는 정부 출자 공익법인이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사건의 발단은 한국수자원공사가 임하 대목적댐(정북 안동군 임하면 임하동 소재 : 아래 지도 참조) 수몰지역 산재한 각종 폐기물을 치우지 않은 상태로 물을 가두기 시작하나 데서 비롯되었다. 수자원공사는 낙동강 중하류 및 동남부 해안지역의 용수원 확보와 낙동강 유역 홍수피해 경감, 그리고 전력 생산 등 다목적으로 지난 84년 12월부터 임하댐 건설공사를 시작해 착공 7년 만인 지난해 가을 준공, 사업을 마무리지었다. 사업비 3천2백20억원을 들여 높이 73m, 길이 5백15m 규모의 사력(자갈)으로 지은 이 9번째 다목적댐의 총저수량은 5억9천5백만t이다. 수자원공사에 따르면 이 댐 완공으로 대구 부산 구미 등지에 연간 5억t(하루 1백36만t)의 용수를 공급하고 8천만t의 홍수조절로 낙동강 중하류 지역의 홍수피해를 줄이며, 전력 9천7백만kwh(발전시설용량 5만kw)를 생산해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수자원공사는 지난 12월3일부터 담수를 시작했는데 예정대로라면 올해 8월쯤이면 댐에 물이 가득찬다.

그런데 임하댐 사업시공 및 관리 주체인 수자원공사가 안동군 임동면과 청송군 진보면 등 수몰지역에 남은 각종 오폐기물을 완전히 치우지 않은 상태에서 담수를 시작하자 댐하류에 있는 낙동강 지류인 반변천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잇는 안동지역 주민들이 “12만 시민의 식수원을 오염시킨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안동시의회(의장 박승우)에서도 이 같은 주민여론에 따라 지나 12월13일 ‘임하댐 내 오염폐기물 수거건 촉구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해 지난 연말 안동시 · 군과 환경처 및 수자원공사 등에 “당장 담수를 중지하고 오염물질을 깨끗이 제거한 뒤 담수를 재개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경남 · 북 1천만 주민이 식수로 사용
안동 주민과 시의회에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침수지역 내 1천7백44 세대에서 사용하던 재래식 화장실의 분뇨와 가축 축사 및 오물, 농경지 1천1백여㏊에서 사용하던 각종 농약병(연 3만4천개쯤)과 폐비닐, 아스팔트도로 16㎞(34번 국도), 기타 주유소 저유탱크(임동면 소재)와 일반 생활폐기물 등이다. 주민과 시의회에서는 임하댐 물이 농 · 공업용수 외에 낙동강 유역 1천만 주민의 식수로도 이용된다는 점에서 “오염 폐기물을 수거하지 않은 담수는 초기에 부영양화를 초래할 우려가 크고, 결국 이 물을 식수로 이용할 안동 시민은 물론 상주 구미 대구 부산 등 1천만 주민에 대하나 ‘집단적 간접살인행위’와 다를 바 없다”라고 주장한다.

이밖에도 주민들은 수몰지역의 헐린 건축물 자재 및 폐철근과 교량은 물론 수장되는 수목과 잡초까지 말끔히 수거한 뒤에 담수하라고 주장한다. 이 지역 공해추방운동가인 윤석권씨에 따르면 “외국에서는 상수원으로 쓸 댐을 건설할 경우 수목은 물론 잡초가지 다 베어 내는 것으로 안다”면서 “수몰지역 변소에서 똥 오줌 퍼 내는 것은 당연지사이고 소독후 매립까지 마쳐야 하는데 가옥이나 변소를 깔아뭉갠 채로 수장하려는 것은 ‘구린 데는 적당히 덮어두면 된다’고 생각하는 무사안일한 행정”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립환경연구원 유재근 박사(호소수질연구소장)는 “집단 취락지일 경우 분뇨 수거가 원칙이겠으나 일부 산재된 분뇨는 자연 노출 상태에서 겨울철에는 석달, 여름철에는 한달이면 퇴비화되므로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힌다. 유박사에 따르면 “그밖에 집단 취락지의 각종 건축물과 임야의 수목 등은 그 양이 문제이겠으나 인산 질소 등으로 인한 초기 부영양화를 초래할 우려가 있으므로 수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현재 수몰예정지역에 남아 잇는 각종 폐기물 양은 1만t쯤으로 추정되는데 안동군청 이주대책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월말 현재 “수몰지역 내 철거대상 건물 5천7백20여동중에서 1천5백동쯤이 미철거 상태”이고, 분뇨의 경우 “수거 대상 4만5천2백ℓ 전량이 수거된 상태”이다. 사실 수몰지역에 흩어져 잇는 폐건축물과 쓰레기 양을 정확히 헤아릴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주민이 이사를 가 폐어가 된 ‘집단 취락지’인 임동면사무소 소재지 등지에는 겉보기에는 시멘트무더기 같지만 시멘트 몇조각만 들춰도 인분이 가득찬 재래식 변소가 발견된다. 이같은 점에 비추어 행정당국과 주민 사이에는 큰 ‘시각 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각 차는 댐 건설 및 관리 당사자격인 수자원공사쪽으로 가면 더 커진다. 수자원공사 임하댐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주민들이 폐기물이 많다고 하지만 지난해 홍수때 해발 1백35m선까지 물이 차 다 떠내려가 버린 상태라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고 버젓이 말할 정도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수자원공사가 그동안 많은 댐을 건설해 오면서 토목공사(댐 안전성)와 수몰지역 보상에만 주력했지 폐기물처리에는 미처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게 사실이나 최근 완공한 임하댐의 경우 국민의 높아진 환경의식을 고려해 그래도 깨끗이 정리한 편이라는 것이다.

폐기물 수거비, 댐 사업비의 0.03%
그 관심을 기울인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는 결국 투자한 돈으로 따질 수밖에 없는데 수자원공사가 임하댐 수몰지역 폐기물 수거비로 배정한 예산은 91년말 현재 9천3백만원이다. 이는 수몰지역 보상비 1천9백80억원을 포함한 임하댐 총사업비 3천2백20억원의 0.03%에도 못미치는 금액이다. 한편 비난 여론이 커지고 시의회에서도 폐기물 수거를 촉구하고 나서자 수자원공사에서는 뒤늦게 안동군 8천여만원, 청송군 2천여만원 등 수몰지역 오폐기물관리를 맡은 지방자치단체에 예산을 추가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안동군의 경우 이주대책계에서 3월까지 미철거 건축물 철거 및 환경정비 등을 완료할 계획이나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가 배정 시기마저 늦어 오 · 폐기물 수거가 형식에 그칠 것 같다. 또 수자원공사는 임하댐에 하루 50만t(수위 기준으로 10~15m)씩 물을 채우고 있어 주민과 시의회의 담수중지 요청 또한 헛수고로 끝날 전망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수자원공사의 부작위를 규제할 실정법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가령 현행 수질환경보전법에는 주민들이 임하댐 유역에 분뇨나 쓰레기 같은 오 · 폐기물을 버리다 적발되면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2백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처럼 값비싼 화장실 사용료도 없을 것이다. 또 공짜 세차 좋아하다가 꼼짝없이 50만원을 자동차 세차비로 물 수도 있다. 그런데 물속에 똥을 버리는 것은 범법이고 버려진 똥 위에 물을 채우는 것-결과는 같은 똥물이다-은 합법이라면 이는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물론 환경영향평가라는 규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임하댐 건설 환경영향평가에서도 환경처는 여느 댐 건설 때처럼 “수몰지역 내에 잇는 잔여 폐기물(가옥 분뇨 잔재수목 등)을 댐 담수 이전까지 완전히 제거할 것”을 협의조건으로 제시한 바 있다. 문제는 이의 이행여부를 조사 · 확인할 여력이 환경처에 없고, 설령 이를 확인해 시정을 요청한다 하더라도 묵살되는 경우가 허다할 만큼 환경영향평가가 전혀 구속력이 없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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