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뒷탈, 양당구도 위협
  • 서명숙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2.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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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락자 60명 ‘인물본위’로 출마…양당 “신당에 겁먹고 무소속에 혼나고”

 민자당의 공천 후유증이 심각한 양상으로 꼬리를 물고 있는 14일 오전 부산시 남구 광안4동 소재 신사회연구소. 이곳에서는 민자당 남구 을 공천자 柳興洙 전의원과 공천 탈락자인 李秀千 전 지구당위원장의 어색한 상면이 이루어졌다. 13대 총선 당시 출마했던 지역구에 따라 유씨는 남구 갑, 이씨는 남구 을의 공천을 각각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유씨의 돌연한 남구 을 공천은 이씨 개인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뿐만 아니라 金泳三 대표가 자기 계열인 鄭相九 의원을 탈락시키고 민정계인 유씨를 공천해 부산 정가를 놀라게 하면서 계속 화제를 뿌리고 있던 터였다.

 먼저 이씨는 “정상구 의원도 K대에 응시한 학생을 Y대에 입학시켜 놓았다고 말하더라. 이렇게 수모스러운 일은 있을 수 없다. 안팎으로 곱추가 되고, 정치적으로 두번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유선배가 공작했다는 거 다 알고 있다”고 원망했다. 그러자 유씨는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전에 내 의사를 물어 온 적도 없고 언질을 받은 적도 없다. 공작 운운은 오해다”라고 해명했다. 이날 이들은 끝내 어색한 얼굴을 풀지 못하고 헤어졌다. 유씨는 여권세력의 분열을 막기 위해 이씨를 방문한 것이었지만 이씨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3대 공천 기준에서 참신성과 도덕성을 유권자에게 직접 검증받겠다”고 다짐했다.

 이 에피소드는 사실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현상 중 한 예에 불과하다. 신당 돌풍과 무소속 출마자들의 강세는 기존 민자·민주 출마자들을 위협하는 2대 변수가 되고 있다. 공천에 반발한 무소속의 대거 출마는 ‘여·여 대결’ 내지 ‘야·야 대결’을 양산해 민자·민주 양당의 선거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공천은 당에서 하지만 民薦은 유권자가 한다”는 유행어를 만들면서 간단치 않은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鄭鎬溶 전 의원과 權翊鉉 전 민정당 대표가 출마를 확실히하면서 여권 심장부에 구멍이 뻥 뚫리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게 됐다.

 먼저 6공 창출 세력의 본거지인 대구·경북을 살펴보자. 여기서는 대구 서갑(정호용)을 필두로 해서 영양·봉화(吳漢九 의원) 의성(鄭昌和 의원) 달성·고령(金鍾基 의원) 경주시(金一潤 의원) 안동시(金吉弘 의원) 경산·청도(李在淵 의원) 포항(許和平 전 청와대 민정수석) 청송·영덕(金燦于 전의원) 등 아홉곳이 대표적인 여권내 갈등지역으로 꼽힌다.

 이 가운데 현직의원들은 거의 탈당계를 제출했거나 곧 제출할 예정인데, “계파 지분에 의해 희생당했다”(김종기 의원) “과거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에 연루된 사람(李永昶 전 치안본부장)을 공천한 처사에 승복할 수 없다”(이재연 의원)는 등 각기 출마 명분을 분명하게 세우고 있다. 특히 徐秀宗 전 안기부비서실장과 겨룰 김일윤 의원은 “보통 이상의 각오 없이는 출마하기조차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비장한 심경을 토로했다. 허화평씨는 일찍 여권 핵심부로부터 전국구 제의를 받았으나 단호히 거절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金東權 쌍마섬유 대표(의성) 姜信祚 전 통양투자신탁 사장(영양·봉화) 등 공천자들은 공조직을 인수받지도 못한 채 애를 먹고 있다.

 청송·영덕은 청송군과 영덕군의 감정 싸움이 당락의 변수가 되는 지역이다. 이곳은 청송 출신 黃昞禹 의원이 재공천되자, 영덕 출신 구의원 시의원들이 모여 영덕에서 공천을 신청한 6명을 단일화시켜 집중 지원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김찬우씨가 단일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지역 이기주의가 선거를 통해 군단위까지 번지는 게 아니냐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호남 제외한 40군데 친여 무소속 강세
 김영삼 대표의 영향권 내에 들어있는 부산·경남 지역도 친여 무소속 강세 현상은 마찬가지다. 부산에서는 북구 갑(張聖萬 전 국회부의장)을 필두로, 영도(尹碩淳 전 의원) 남구갑(權憲成 전국구의원) 부산진 갑(李祥羲 전 과기처장관) 강서(安秉海 전 민정위원장) 사하(崔龍洙 전 민정위원장) 남구 을(정상구·이수천) 등 일곱군데가 여권끼리의 갈등 지역이다. 특히 사하구는 비리사건 연루자 무조건 배제 원칙에 밀려 김대표 측근 徐錫宰 의원이 공천받기 힘들게 되자, 당지도부가 서의원 비서 李在國씨를 형식적으로 공천했는데 이씨가 적극적인 출마 노력을 기울이는 바람에 여권에서만 3명이 혼전을 벌이는 양상으로 발전하게 됐다.

 부산 정가에서 제일 주목받고 있는 것은 지역기반이 튼튼하다는 평가를 듣는 장성만 이상희 윤석순 세 전의원이 입성 여부와 권헌성 안병해 두 후보의 30대 기수론.

 북구 을로 거의 공천이 확정되는 듯했던 장성만씨는 “북을로 옮겨 한달 동안 활동하는 바람에 북갑쪽의 조직만 파괴되었다. 북을 공천 약속이 상당히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당 지도부를 비난했다. 그는 “이번 선거가 어차피 인물본위로 흘러갈 것이다. 13대 총선 때는 청년층이 야당(당시 통일민주당)을 지지해 YS 바람이 불었지만 지금 젊은 세대들은 민자당에 동조하지 않는다”면서 “적게는 3석에서 많으면 5석까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윤석순씨도 “부산의 민자당 후보들은 잘했다고 내세울 게 없으므로 한결같이 YS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민자당을 찍어야 한다는 식으로 나올 것이다. 따라서 YS 바람이 상당히 분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지난번 광역선거 식의 바람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헌성 의원은 “한 지역 유권자와 더불어 30년 이상을 같이할 사람만이 장기개발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새로운 ‘30대 기수론’을 강조하는 경우이다. 안병해씨도 “YS도 나 같은 시절이 있었다. 10년 이상 기약할 수 있는 젊은 일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어 이들의 ‘젊은 바람’도 무시못할 변수로 작용중이다. 특히 그는 이번만큼은 강서 출신을 국회로 보내자는 지역 정서를 등에 업고 상당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경남은 산청·함양(권익현) 이외 삼천포·사천(黃性均 의원) 진주(河舜鳳 전의원) 김해(李鶴捧) 충무·통영·고성(許文道 전 통일원장관) 등 주로 5공 세력의 세몰이가 강한 곳이다. 수도권 및 중부권에서도 영등포 갑(延濟源 의원) 서초 을(金容甲 전 총무처장관) 노원 갑(安大崙 전 민정위원장) 용인(金政吉 의원) 동두천·양주(李德浩 의원) 송탄·평택(權達洙 의원) 오산·화성(朴志遠 의원) 대전 서·유성(李在奐 전 의원)대전 중(姜昌熙 전의원) 고양(李國憲 전 민정위원장) 속초·고성(崔正植 의원) 등 10여곳 이상이 여권표 잠식으로 인해 혼전을 벌일 것이다. 따라서 호남을 제외한 전국 40여곳 이상에서 친여 무소속의 강세 및 여권표 잠식이 예상된다.

“DJ 私黨” 내세워 反김대중 전선
 민주당도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공천 후유증 속에 공천 탈락자들의 무소속 행진이 꼬리를 물고 있다. 그 형태도 ‘반김대중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집단대응형, 각개약진형 등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무소속 출마의사를 가장 확실하게 밝힌 부류는 집단적 자구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이른바 ‘무소속 민주연합’ 추진세력들이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집단탈당을 선언한 趙尹衡(성북 을) 鄭雄(광주북 갑) 孫周恒(전주 완산) 朴亨午(신안) 李炯培(남원) 의원과 이들보다 한발 늦게 탈당계를 낸 金奉旭 의원은 12일 무소속 출마와 함께 향후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들 대부분의 출마 지역이 민주당의 장악력이 확실히 미치는 호남인데다, 지역주민의 요구를 바탕으로 한 ‘호남 물갈이’ 차원에서 탈락시켰다는 명분이 있는 만큼 당선되는 ‘이변’은 없더라도 공천자들의 행보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한다.

 우선 무소속 출마자들은 자신들의 공천 탈락 이유를 “김대표 눈에 벗어난 괘씸죄 적용” “정치적 협상의 희생물” 등으로 강조한다. 조윤형 의원은 당내 계보인 정치발전연구회(정발연)를 주도하면서 남원 공천비리를 터뜨렸다는 점 때문에, 손주항 의원은 부총재 경선론을 펴는 등 김대표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에 철저한 공천보복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에서는 각각 의정 활동 부진에다 함량미달의 발언과 행동을 보여온 이들 의원의 정치보복 운운은 ‘공천 후유증’을 이용하는 구태의연한 작태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무소속 출마자들의 주장은 이번 공천에서 예고됐던 ‘대폭 물갈이’가 실제 엄격한 기준으로 적용되지 않았던 점과 맞물려 일부 지역주민들에게 설득력을 얻고 있기도 하다. 정웅 의원의 경우 전국 최다득표의 명망에 미치지 못하는 의정활동으로 교체여론이 높았던 게 사실이지만 막상 공천에서 탈락되자 지역구 일각에서는 동정 여론도 대두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의 장악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전북의 손주항 김봉욱 의원은 민주당 후보의 진출에 상당한 변수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은 참신성은 있으나 지역 내 기반이 취약한 민주당 후보 (張永達 당 대외협력위 부위원장, 姜喆善 변호사)의 표를 상당 부분 나눠가질 것으로 보인다. 민자당이 호남 교두보로 집중공략을 선언하고 있는 이 지역에서 야권표 분산은 민자당에게 뜻밖의 ‘어부지리’를 안길 가능성도 있다.

호남서 ‘김대중 신화’ 깰지는 미지수
 더욱이 무소속연합은 후보 개인의 선거변수 이상의 여파를 야권에 미칠 수도 있다. 지난 13일 모임에서 이들은 “야당 내 민주화를 가로막는 김대중 대표의 퇴진”을 주요한 정치적 명분으로 내걸었다. 지난 14일 탈락 의원 6명이 선관위에 “민주당이 전국구 공천자들에게 정치헌금을 받는 것이 위법인가 아닌가”라는 질의서를 제출한 것은 그 신호탄인 셈이다. 또 손주항 의원 등은 “호남인의 호주머니에 DJ가 들어있어야 하는데도 DJ가 호주머니에 호남인들을 집어넣고 정치적 볼모로 활용해 왔다”며 ‘전북 홀로서기론’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최고위원은 “탈락 의원들이 공천 탈락 충격을 역이용하기 위해 반DJ  명분을 내걸고 있다”고 비난하면서도 ‘김대표 흠집내기’가 야권 이미지 전반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13일 당 중진인 노승환 전 국회부의장이 “정발연 인사들을 보복적으로 탈락시킨 공천의 부당성”을 내세우며 탈당한 사실도 노의원에 대한 당내 평가에 관계없이 이러한 반DJ전선에 힘을 보태준 셈이다.

 그러나 무소속연합의 행보는 정치도의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위험 부담을 안고 있다. 즉 어제까지 같은 당에 몸담은 채 공천을 기다려온 당인들이 탈락됐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꾸는 형태에 대한 유권자의 비판론이 엄연히 있다. ‘김대중 신화’가 호남 일각에서 무너지고 있다 하더라도 노골적인 ‘반DJ 기치’가 먹혀들 것인가도 미지수다. 그동안 구심점 역할을 해온 조윤형 의원이 국민당으로 옮김에 따라 그 명분도 상당 부분 설득력을 잃게 됐다.

 지난해 광역의회선거 직전 李海瓚 의원과 함께 탈당했다가 이번 공천에서 끝내 탈락한 李喆鎔 의원(서울 도봉 을)은 ‘각개약진형’의 대표적인 경우다. 도봉 을구는 서울에서도 유독 호남인구 비율(32.3%)이 높은 지역이지만 의정활동과 지역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의원은 만만치 않은 변수가 되고 있다. 李相玉(무주·진안·장수) 朴鐘泰(광주서을) 의원도 지구당원들과의 협의를 거쳐 머잖아 무소속 출마 여부를 결정지을 예정이다. 함평·영광에서 金仁坤 의원과 막판까지 경합을 벌이다 탈락한 安平洙(민주당 전문위원)씨를 비롯 鄭寅鳳 변호사(종로) 白祥圭(담양·장성) 曹秉洙(화순)씨 등 원외 탈락자들도 무소속 출마를 서두르고 있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 깨져 무소속 유리
 嚴大羽(군산) 趙東會(승주)씨 등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 소속 낙천자들도 무소속 출마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표의 친위세력으로 알려진 연청은 15명의 후보를 내놓고 연청의 공로에 대한 ‘배려’와 젊은 후보 발탁을 요청했지만 文喜相(의정부)씨 1명 공천에 그치고 말아 강도 높은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들은 반DJ 경향을 보이는 다른 무소속 후보들과는 정반대로 “김대표가 당내 역학 구도 때문에 하지 못한 물갈이를 우리가 하겠다”고 주장한다.

 이번 총선은 과거와는 다른 몇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로 민자·민주 양당이 모두 합당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여야의 개념구분이 아주 모호해졌다는 점이다. 과거 선거의 단골 메뉴였던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깨졌다는 점도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이런 특징에 비추어볼 때 무소속 출마자들의 성향도 과거와는 매우 다른 양상이다. 각 정당의 계파끼리 나눠먹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권자의 직접 심판을 받겠다는 주장은 합법적 경쟁이 보장되는 민주사회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60여곳 이상에서 ‘홀로서기’를 시도하고 있는 무소속 후보들이 과연 어떤 결과를 몰고올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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