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필요없고 몸으로 느낀다”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2.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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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 카페’ 대학가 새 문화…락 음악+즉석 춤판에 열광

 술을 마시며 시끄러운 음악에 취하기도 하고 또 흥이 오르면 아무한테나 몸을 부비며 흔들어댈 수 있는 곳, 이른바 ‘락 카페’가 요즘 대학가를 강타하고 있다. 91년 초엽부터 신촌을 중심으로 서서히 세를 형성하기 시작한 락 카페는 어느덧 신촌을 대표하는 명물이 됐다.

 지난 2월11일 신촌의 한 락 카페. 조명은 약간 어둡다. 7시가 넘어서면서부터 몰려들기 시작한 젊은이들로 발디딜 틈도 없이 붐빈다. 발라드 풍의 가벼운 음악이 흐르다가 갑자기 귀청을 때리는 듯한 댄스뮤직이 흘러나오자 한두명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녀가 어지럽게 얽혀 격렬하게 몸을 흔들어댄다.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웃음이 터지면서 이내 카페는 열광의 도가니로 변한다. 주인의 표현을 빌리면, 다른 락 카페에 비해 그래도 점잖은 편이라고 한다.

 “비싼 돈 주고 나이트 갈 필요가 없어요, 스트레스가 확 풀립니다.” 3~4명이 한바탕 노는 데 2만~3만원이면 충분하다. 의외로 술에 만취한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좌석이 부족할 지경이다. 그래서 짝이 맞는다 싶으면 남녀가 즉석에서 합석하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음악소리가 너무 커서 대화가 불가능하다.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도 대화보다는 몸으로 느끼기 위해서이다. 어른들이 보면 입가에 쓴 웃음을 지을 게 틀림없다.

 원래 락 카페는 대중음악의 한 갈래인 로큰롤(Rock & Roll)만 전문적으로 틀어주는 카페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전에는 락에 심취한 사람이 락 카페를 차리고, 역시 같은 음악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몰려들던 음악동호인식의 분위기였다. 신촌에만 대략 5~6군데 있었을 뿐 젊은이들의 주목을 끌지 못해 영세했다. 신촌에서만 10년째 락 카페를 운영해온 이송씨(35)는 “락음악은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묘미를 갖고 있지만 대중성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던 락 카페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가요나 댄스무직을 삽입하면서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됐다. 따라서 요즘 락 카페로 통칭되는 곳치고 본래 의미의 락 카페는 없는 셈이다. 즉 음악을 들으러 락 카페를 찾는 게 아니라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러 찾는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업성이 개입되면서 락 카페의 유형은 크게 세가지로 나뉘어졌다.

모르는 남녀끼리 즉석에서 합석
 첫째 여전히 락음악만 고집하는 유형이다. 손님들은 음악 자체에 매료돼 어떤 카페에 가면 누구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나 이제 이런 유형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둘째 대형 스크린을 구비해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곳이다. 사람들은 ‘보는 것’을 즐기러 이곳을 찾는다. 인간의 감각기관중 가장 편한 데에 쏠리는 젊은이들의 세태를 반영한다. 셋째 댄스뮤직이나 가요를 삽입해 좀더 대중화된 유형이다. 이곳에서는 흥이 오르면 춤을 출 수도 있다. 이처럼 같은 락 카페를 찾더라도 노는 방식은 분화되어 있다.

 현재 신촌을 중심으로 성업중인 락 카페는 대부분 두번째나 세번째 유형으로 신촌에만 70여개 업소가 몰려 있다. “건물이 새로 들어서면 어김없이 락 카페가 끼여듭니다.” 80년대 초반부터 막걸리집을 고집해온 ㅂ술집 주인의 말이다. 신촌에서 락 카페가 주가를 올리자, 대학로 고대앞 등 다른 대학가에도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심지어 인천에 있는 ㅇ대학 앞 락 카페의 경우, 서울의 ㅇ고등학교를 나온 대학생들이 자비를 털어 차렸다고 한다. 아예 동문회가 락 카페를 차린 셈이다. 젊은이들이 얼마나 락 카페에 열광적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운동권이 시들해지자 락 카페가 번성한 것인지, 아니면 락카페가 번성하자 운동권이 시들해졌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여하튼 락 카페의 등장은 운동권으로서도 곤혹스러운 일이다. 사실 운동권은 현재 락 카페로 몰려드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었다. 그들은 바로 운동원에서 ‘전교조 세대’ ‘참교육 세대’로 불리는 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전교조 세대가 대학에 들어올즈음부터 대중동원이 영 안된다고 한다. 어찌 보면 운동권이 업주들의 상업적 전략에 밀리는 형국이다.

 지난해 12월초 연세대 총학생회에서 생활문화운동의 일환으로 락 카페 실태조사를 벌였던 장훈군(26·행정학과 4학년)은 “도대체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속수무책이다”라며 참담한 심경을 털어놓는다. 그러면 운동권의 기대를 저버린, 락 카페를 찾는 젊은이들은 누구인가. 왜 락 카페로 몰려드는 것인가.

 한 락 카페의 주인은 심야영업 금지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전처럼 “1차는 소주, 2차는 맥주, 그리고 3차는 나이트나 디스코텍”하는 식으로 느긋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한번에 화끈하게’ 놀 장소가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연세대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락 카페 유흥업소의 형성과정’이란 논문을 준비하는 안영노씨(27)는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는 안이한 비난이나 나오지 젊은이들이 왜 락 카페를 찾는지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요즘 청소년들의 의식구조와 그들을 둘러싼 주변환경에 대해 애정을 갖고 지켜봐야 비로소 락 카페 현상이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풍요해지면서 여가는 늘어났지만 그에 따른 놀이공간은 개발되지 못했다. ‘문화적인 즐김’이 제도적으로 또는 자생적으로도 허용 안되는 사회풍토에서 유흥산업이 그 출구로서 기능해온 것이다. 그러나 기성세대는 유흥산업을 부정적으로 본다. 그럼에도 밤의 세계에서는 나체쇼와 변태영업이 판을 친다. 이처럼 기성세대는 일상에서 스스로 모순을 허용하며 살아간다. 아직도 놀이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 ‘일의 논리’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청소년 세대는 다르다. 운동권에서 말하는 전교조 세대이지만 워크맨을 들고 길거리에서까지 음악을 즐기거나,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에 텔레비전을 통해 뮤직비디오를 보고 자란 세대이기도 하다. 또한 정치적 분위기에 눌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80년대 세대와는 달리 자신의 욕망을 확실히 표현하는 세대이다.

자기 주장 확실한 세대의 ‘또래 의식’ 공간
 기성세대에게는 ‘외래 저질문화와 퇴폐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철없는 아이들’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들도 나름의 논리를 갖고 기성의 시각에 항변한다. 우선 그들은 놀 공간이 마땅치 않고 그래서 락 카페를 찾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즐기는 게 뭐가 나쁘냐”고 반격한다. 이쯤되면 어른들은 말문이 막힌다.

 이처럼 요즘 젊은이들의 일각에서는 쾌락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일의 논리’에서 벗어나 ‘놀이의 논리’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은 락 카페를 찾는다는 김모군(20)은 “락 카페, 좋잖아요. 뭐가 나쁘다는 겁니까”라며 자신이 락 카페를 찾는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한다. 과소비와 퇴폐라는 담론으로 락 카페에 몰려드는 젊은이들을 재단해 봐야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사실 풍요한 환경에서 자라나 개방적인 의식구조를 가진 요즘 청소년들이 굳이 락 카페를 찾을 필요는 없다. 그들에게 ‘음악’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요구를 가장 잘 반영하고, 또 비슷한 욕구를 가진 젊은이들끼리 동류의식 또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면 족하다. 다만 현재로서는 이런 젊은이들의 욕구를 빠르게 잡아내 상업화한 락 카페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안영노씨는 “락 카페의 ‘락’은 포장지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락이라는 포장지를 벗겨보면 락 카페에는 우리 사회의 구멍난 법과 재빠른 상술, 그리고 젊은이들의 변화된 의식만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구멍난 법이란 대중음식점에서는 춤을 출 수 없는데도 ‘뭔가 있어서’ 묵인되는 것을 말한다. 한때 관청의 단속으로 신촌의 락 카페에서 춤이 사라진 적이 있지만 잠시뿐이었다.

 청소년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쾌락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하는 세대가 등장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러나 아직 그들에 대해서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관련 학계에서도 노동에 대한 분석은 많았지만, 욕망과 소비에 대한 분석은 별로 없었다. 그것이 대중동원의 전략에서건 아니면 교육과 계도차원에서건, 일단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그들은 이 사회 모세혈관 깊숙히까지 퍼져있는 소규모 상업자본에 휘둘린 채 방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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