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난치병’ 치료제 10選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2.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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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15개 부문 대안 제시…실명제 실시 등 제도개혁 강조

 한국 경제는 난치병을 앓고 있다. 국제수지적자 물가불안 등 온갖 증세가 합병증을 일으켜 치료약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그들 나름의 처방전을 내놓았다.

 경실련은 경쟁제한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낡은 제도, 생산수단의 소유집중과 소수에 의한 시장지배, 급변하는 세계시장에의 적응력 부족 등이 한국 경제의 난국을 초래했다고 분석한다. 정책연구실 姜哲圭 위원장(서울시립대 교수)은 “각종 제도의 개혁 없이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나누는 질서를 세울 수 없고 구조조정도 불가능하다”면서 더이상 임기응변적 처방으론 경제의 병을 고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경실련은 15개 분야별로 정책과제를 새로 제시해 여야 정당이 정강정책 수립에 이를 활용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보건 환경 교통 정치제도 지방자치 등 5개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과제를 소개한다.

1 땅
 6공화국 출범 이후 다섯 차례나 땅투기 억제정책이 발표되었으나 실효성있는 제도개혁이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최근 투기가 주춤해졌다지만 언제 재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다. 성균관대 김태동 교수는 “투기자들이 두려워할 수준으로 종합토지세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표를 공시지가로 현실화하고 모든 땅을 종합합산 과세해야 하며 종토세를 국세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 비과세 및 감면되는 양도소득세 대상을 일단 없애거나 줄이고 등록세와 취득세를 대폭 낮추든지 아예 없애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2 주택
 공급 늘리기가 기본정책이지만 배분과정도 공정해야 한다. 사회적 불평등을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대 하성규 교수와 한샘주거환경연구소 유재현 소장은 작은 집을 많이 늘리고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위한 획기적 정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또 불량주거지의 재개발은 ‘선 입주 후 철거’라는 단계적 개발원칙이 지켜져야 하며 공공용지 불하는 중단돼야 옳다고 지적했다. 새 아파트 분양가는 시장기능에 맡겨 자율화하는 것이 원칙이며 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이 장기 저리의 임대주택을 많이 짓는 것이 주거안정에 첩경이라는 대안도 제시했다.

3 금융
 낙후된 금융산업의 대폭적인 수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4명의 학자로부터 나왔다. 서울시립대 이근식 교수는 “모든 금융자산의 거래 때 당사자의 신원을 밝히는 금융실명제의 빠른 시행”을 강조했다. 실명제 없이는 지하경제의 추방·금리와 임금의 하락 등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고려대 이필상 교수는 중앙은행의 독립을 강도 높게 주장했다. 통화신용정책을 중앙은행의 몫으로 하지 않고는 물가안정과 특혜성 자금 공급의 근절 등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2~3단계 금리자유화 조처를 늦어도 93년 상반기에 실시하자는 중앙대 안국신 교수의 제안과 금융의 경쟁력 제고와 기능정상화를 위해 “금융을 금융인의 손에 돌려 주자”는 숙명여대 윤원배 교수의 지적도 있었다.

4 세제
 분배정의 실현을 위해 세제개혁은 효과적 대안이다. 특히 소득세와 상속세 개선이 집중 거론 됐다. 고려대 이만우 교수는 현행 소득세는 종류별로 차등과세가 이루어져 형평에 어긋나는 등 문제가 많으므로 종합과세를 해야하며, 현재 50%로 되어 있는 최고 한계 세율을 내려야 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서울시립대 최명근 교수는 상속세제의 개혁을 주장하면서 비실명으로 금융자산을 자손에게 빼돌리는 등의 변칙 이전을 막는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5 농업
 국민경제에 필요한 적정규모의 농업을 이루고 농촌을 살 만한 곳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단국대 장원석 교수와 중앙대 김완배 교수는 농산물 수입 개방 속도를 가급적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쌀  쇠고기 등 기초식품의 수입개방은 절대 불가라는 입장을 지켜야 하며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해 재적지원 확대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또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양곡 관리법·낙농진흥법 등 농축산관련법을 개정하자는 말도 나왔다.

6 노동
 사용자 위주로 된 노동관계법 개혁 등이 거론됐다. 인하대 이영희 교수는 공무원의 노조 결성 및 가입범위 확대·노조의 정치활동 금지 조항 삭제·복수노조 허용·제3자 개입 금지규정 삭제 등을 주장했다. 원칙적으로 노동 3권이 인정되지 않는 공무원의 경우 ‘공공부문 노사관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서울대 박세일 교수는 지적했다. 숭실대 조우현 교수는 여성노동자 차별 방지책으로 직종분리 폐지·여성고용 의무제 등을 제안했다.

7 경제력 집중
 크게 소유분산·소유와 경영의 분리·여신편중 및 금융산업지배 방지·공정거래위원회의 위상 강화 등에 관한 대안이 제기됐다. 건국대 최정표 교수는 재벌 가족이 가진 주식을 대거 팔아야 하며 순환출자제도의 개선·총액출자제한 제도의 강화·재벌기업의 상장 유도·그룹집중 경영체제의 폐지 등을 주장했다. 또 재벌에 대한 여신규제 강화·금융기관 소유 금지 방안도 나왔다.

8 중소기업
 중소기업이 가장 애로를 겪고 있는 자금·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한양대 한정화 교수는 중소기업은행의 자본금을 늘려 자본공급처로서 이 은행의 역할을 강화하고 중소기업구조조정기금을 대폭 확대해 자금난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력난 부문은 대기업과의 임금격차를 줄여나가는 동시에 실업계 및 이공계 인력공급을 확대하고 중소기업을 지망하는 젊은이에게 병역혜택을 주며, 한시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또 기술지원을 위해 종합정보서비스센터 설립 등의 대안이 나왔다.

9 정부규제
 고도성장기에는 정부의 규제와 간섭이 나름대로 효율적이었으나 지금은 민간경제의 창의성과 활력을 막고 있다. 홍익대 김종석 교수는 법에 정해지지 않은 정부규제는 모두 없애는 ‘정부규제 법정주의’를 주장했다. 인허가 업무는 국민의 편의 위주로 고쳐져야 하며 경쟁제한적인 행정규제는 모두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민간부문이 할 수 있는 정부산업과 기능은 최대한 이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규제는 축소하되 공정거래제도는 강화해 경쟁 질서를 세워야 바람직하다는 견해이다.

10 국제수지
 국제수지 개선은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이다. 한양대 전영서 교수는 수출증대와 수입억제를 위한 제도개혁을 지적했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시장평균환율제도를 개선해야 하며 재벌기업의 전문화 유도가 시급하다. 또 자금이 제조업 등 생산적 부문에 흘러가도록 금융실명제를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수입억제책에는 한계가 있으나 산업피해 보상제도를 강화하고 수입허가를 경매에 부치는 정책을 들 수 있으며 무엇보다 소재 및 부품산업의 육성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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