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실패’를 막으려면
  • 정구현(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장) ()
  • 승인 1994.12.1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국민이 낸 세금을 착복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분노를 금할 길 없다. 교통·치안·교육 등 국민의 기본적인 생활권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정부가 한쪽에서는 세금을 떼어먹고 있었다니 참 기막힌 일이다. 이러한 정부 실패는 근본적이고 또한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이런 정부 실패는 한국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클린턴이 이끄는 미국 민주당이 지난번 중간선거에서 대패한 것도 정부 실패에 대해 미국 국민이 분노를 드러낸 결과이다. 노르웨이 국민이 그 나라의 유럽연합(EU) 가입에 반대표를 던진 것도 노르웨이의 운명이 앞으로 브뤼셀의 유럽연합 관료에게 지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혁신과 거리 먼 정부
마약, 범죄, 에이즈, 환경오염 등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개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어떤 문제는 여러 나라의 협력에 의해서만 해결이 가능하고, 어떤 문제는 지방 정부가 담당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제는 대통령이나 중앙 정부 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정부가 실패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이다. 우선은 부패한 공무원이 문제이지만, 공무원이 모두 청렴하다고 정부가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그 규모가 크고 관료적이기 때문에 사회 문제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우선 정부의 예산 주기가 1년이고 움직임이 경직되어 당장 필요한 사업이 있어도 행동이 느릴 수밖에 없다. 또한 정부는 부서 이기주의 때문에 부서간 협조가 필요한 사업에서는 더욱 더 의사결정을 못하게 된다. 그리고 정부 관리들은 효율화보다는 감사에 걸리지 않으려는 수동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위험이 있으면 새로운 일을 피하게 된다. 그러나 혁신에는 반드시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정부는 혁신과는 가장 거리가 먼 조직인 것이다.

예를 들어서 지금 대도시의 교통 문제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그런데도 도로 확장이나 건설, 지하철 건설 이외에 기존 시스템을 효율화하려는 노력이 매우 미흡하다. 정보 기술을 이용하여 신호등 체계를 고친다든가, 일방 통행을 확대한다든가, 교차로의 교통 흐름을 개선하는 노력이 안 보인다. 무질서가 매일 되풀이되는데도 경찰이나 시는 서울의 도로를 큰 차와 몰염치한 사람들이 득세하게끔 방치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무능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민간의 참여가 절실하다. 민간에는 영리 기관인 기업이 있고, 다음에 비영리 기관이 있다. 기업의 본업은 영리 추구이기 때문에 교육, 깨끗한 환경, 복지 등 이른바 공공재 공급 능력이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비영리 민간 부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에는 그동안 소비자 환경·여성 단체들이 그런대로 열심히 해 왔고, 최근에는 경실련과 같은 시민운동 단체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시민운동 단체가 활발히 움직이면 꼭 정부가 나서서 이들을 조작하여 군과 정부 조직이 같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기도하곤 하였다.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공익 재단 규제 풀어야
민간 부문에서 앞으로 중요한 기능을 발휘해야 할 기관이 공익 재단이다. 많은 공익 재단이 아직은 기업의 일부로서 그 위치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나, 앞으로 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고 상속세와 증여세가 강화되면 재단은 점차 전문화하면서 정부가 미처 손 못 대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런데 공익 재단마저도 정부의 규제 때문에 손발이 묶여 있는 형편이다. 출연하는 기업이나 개인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규제가 많다. 또한 출자에 대한 규제도 많으며, 재단의 재산 운용에 대해서도(예를 들면 주식 취득)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규제가 많다. 개인이나 기업이 일단 공익 재단에 재산을 출연하면 그 재산은 다시 돌려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이를 운용하는 데는 어느 정도 출연자의 의도를 살려줄 필요가 있다. 현재 공익 재단에 대한 규제는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출연자에게 인센티브를 전혀 주지 못하고 있다. 

정부 실패를 보완해줄 민간 비영리 부문에 대해서 정부가 지금처럼 규제만 한다면 이는 그 부문에서까지 정부 실패를 연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를 개혁할 좋은 아이디어는 있으나 돈이 없는 사람이 손 벌릴 데가 어디 있는가. 공익 재단의 역할은 바로 이러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데 있으나, 현재의 구조로서는 그것이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정부 실패와 시장 실패를 메워줄 비영리 부문의 필요성에 대해 더 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