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멜로, 그리고 욕망의 끝
  • 이세용(영화평론가) ()
  • 승인 1994.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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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미지>

 
영화 <데미지>
감독 : 루이 말
주연 : 제레미 아이언스, 줄리에트 비노쉬

루이 말 감독이 만든 <데미지>를 셀룰로이드로 만든 화폐라고 한다면, 한쪽에는 ‘포르노’라고 찍히고, 다른 한쪽에는 ‘멜로드라마’라고 찍힌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가 될 줄 뻔히 알면서도 관계를 맺는 중년의 사내와 젊은 여자의 정사 장면은 영락없이 포르노이고, 다른 장면은 멜로드라마의 정석을 따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흥행에 성공했고, 한국에서는 상영 전에 화제를 일으키는 데 성공한 이 영화는 감독의 말대로 ‘사회 규범 밖의 사랑’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준다. <데미지>에서 그려내는 여주인공 안나(줄리에트 비노쉬)와 사회적으로 완벽한 조건을 갖춘 중년 남자 스티븐(제레미 아이언스)과의 파괴적인 열정은 불륜을 찬양하기 위한 설정은 아니다. 스티븐이 ‘규범 밖의 사랑’을 함으로써 모든 것을 잃고 몰락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파멸로 처리된 결말을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변명은 어색하게 들린다.

만나자마자 자석에 이끌리듯 눈을 맞추는 남과 여, 젊은 여자의 아파트로 찾아드는 명망 있는 중년 남자의 미친 듯한 행위 묘사는 철저히 충격 만들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충격은 이야기 진행과 더불어 증폭되는데, 안나의 방에서 나오던 스티븐이 어린 딸에게 발각되는 순간을 거쳐 안나와 스티븐의 정사 광경을 아들 마틴이 목격하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욕망의 종착역에서 출발한 어떤 인생의 파탄을 그린 <데미지>는, 이런 충격의 모양새를 갖추고 효과를 배가하기 위해 연기파인 제레미 아이언스와 줄리에트 비노쉬를 벗겨서 끝장을 낸다. 포르노 전문 배우가 아닌 연기자들에게 대담한 행위를 시켜서 얻는 효과는 예상을 훨씬 웃돌 뿐 아니라 예술적이라는 착각도 갖게 한다.

욕정에 눈이 먼 남자와 욕망에 충실한 여자의 광란을 묘사하면서도 <데미지>는 관객의 체온을 데워주기보다는 놀라움과 걱정을 안겨준다. 그래서 ‘억압’이 문명 사회 속에서 교양 있고 점잖은 체하는 환경에 의해 통제되는 ‘현상’임도 조금은 드러내지만, 작품 의도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주책없는 인간의 욕망에도 불구하고 인류 사회가 유지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절대로’ 범해선 안되는 금기를 지켜온 데 있다. 따라서 며느리와 관계 맺는 시아버지의 패가 망신 교훈은, 이 영화가 아니라도 모를 사람이 없다.

가족도, 여인도 떠난 뒤 홀아비 궁상을 떠는 스티븐을 향해 ‘고생해도 싸다’는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결말도 상투적인 것 이상은 아니다.
                                                         李世龍(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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