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비 대신 문화에 투자를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4.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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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경향> 두 신문사 문화부장의 세계화 구상

중화(中華) 기러기 편대. 중국·대만·홍콩 경제가 한 덩어리가 되어 날기 시작한 것을 일컫는 서방 언론들의 표현이다. 세계 은행은 이 중화 기러기 편대가 2002년이 되면 세계 최대 경제권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바로 그래서 ‘중화 기러기 편대’라는 단어 하나조차도, 한국인에게는 의미심장한 것이 된다. 한반도는 중국(대륙 문화)과 미국(해양 문화) 사이에서 어떠한 진로를 설정해야 할 것인가.

최근 간행된 최병권 <문화일보> 부국장 대우 문화부장의 <세계 시민 입문>(박영률 출판사)과 최노석 <경향신문> 문화부장의 <젓가락으로 들어올린 지구>(동진출판사)는 탈냉전 이후 혼돈된 세계 질서 속에서 한반도와 한국인이 가야할 길을 일러주고 있다. 지금처럼 세계화라는 단어가 일상어로 굳어버린 마당에, 같은 시기에 파리 특파원을 지낸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주제의 책을 펴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러나 이 두 책은 구호로만 외치는 세계화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세계 시민 자격 생각해 볼 때
‘지금 지구촌 구석구석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가 <세계 시민 입문>에서 일차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곧 ‘과연 세계 시민으로서 한국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 최병권 씨는 “국가 생활 영역은 갈수록 축소되고 사회 생활 영역은 급속도로 확장되어 국경이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한국인의 생활도 국가 생활 영역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자연히 세계의 마당에 던져지게 된다. 세계 단위에서 생활하는 한국인은 세계 시민의 기본 자격에 대해 점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화를 강제하는 요인 뒤에 숨어 있는 실체는 무엇일까. 최씨는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만드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은 각국·각 지역 경제가 상호 침투하고 상호 의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범지구화 또는 세계화란 것이 사실은 미·일·서유럽 3자 간의 관계임을 알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가 주목하는 것은 80년대에 체결된 세계 거대 기업 간의 기업연합 중 92%가 이들 3자 사이에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뉴욕·런던·도쿄 증시가 세계 주식 거래의 80%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이들 3자의 ‘팍스 트리아디카’, 곧 초국가 자본이 주체가 된 기업연합이 변화의 실체인 셈이다. 그러나 최씨는 여기에 또 하나의 거대 변수인 ‘중화경제권’이 도사리고 있음을 주목한다.

따라서 이미 세계를 지배하는 초강자가 되어 있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 위치한 한반도는 이래저래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젓가락으로 들어올린 지구>는 한국이 256메가 D램 반도체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과, 젓가락을 사용하는 한국인의 손재주를 출발의 모티브로 삼는다. 이 출발점은 당연하게도 ‘언제까지나 세계사의 뒤편에서 서성대며 세계 문제에는 발언 한 번 못하는 2등 국민 3등 국가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자탄의 목소리지만, 곧 젓가락으로 세계를 들어보자는 웅변으로 변한다.

최노석 씨는 88년 대한 항공의 런던 취항 기념 리셉션장에서 당시 오재희 주영 대사가 영국 사람들에게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된다면 영국이야말로 파 웨스트(극서)가 될 것이다”라고 한 조크에서 가슴을 관통하는 영감을 받았다고 술회한다. 최씨는 강대국인 영국의 발상법대로 지금은 한반도가 파 이스트(극동)이지만, 영구 리즈 대학의 에이던 포스터 카터 교수가 <가디언>지에 기고한 대로 한국이 멀지 않아 ‘동방의 스위스’가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다. 그는 그러한 예증으로 건축가 장세양씨, 영종도 신공항, 백남준과 한복 디자이너 김숙진, 도자기, 바둑기사 이창호와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를 들었다.

이 책에서 그가 결론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문화가 무기다’라는 것이다. 그는 “해마다 우리가 지출하는 국방비가 GN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프랑스의 문화산업비 비율과 비슷하다. 무한 경제 전쟁 시대에 돌입한 지금 문화가 그 첨병 역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趙瑢俊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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