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해체
  • 박순철 (편집주간) ()
  • 승인 1994.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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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타임캡슐처럼 땅 속에 파묻고 ‘역사의 심판’은 미래의 누군가에게 편리하게 떠맡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폭파 해체는 구조물에 내장된 긴장된 힘을 단숨에 끊어놓는다. 구조물은 순식간에 힘을 잃고 파편더미로 주저앉는다. 남산 외인아파트가 폭파됐을 때 그 순간적 해체는 아름다움이었다. 먼지가 사라지자 남산의 모습은 그림같이 살아났다.

사람들은 통쾌함을 느꼈다. 지난해 2월 金永三 정부가 들어섰을 때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답답하게 막혀 있던 청와대 앞길이 활짝 열리고 음침한 음모의 모습으로 서 있던 안가들이 철거됐을 때 10년 묵은 체증이 뚫리듯 시원했다.

그 물리적 ‘열림’이야말로 새로운 시대가 찾아왔다는 실감을 주었고 문민 정부의 차별성을 도드라지게 했다. 그것은 61년의 불행한 쿠데타에서 시작돼 지루하게 계속되어 온 음울한 권위주의 정권들의 폐쇄성과 선명하게 대조됐다. 공직자 재산 공개라든가 그 후의 금융실명제 같은 조처들은 ‘열린 사회’ ‘열린 정부’의 상징이었다. 김대통령의 칼국수마저 6공 내내 모호한 긴장을 지속시켰던 안개 속 盧心이 지겨웠던 기억들에 대해 상쾌한 충격이 될 수 있었다.

실종된 법 뒤에 살아남은 정치 논리
사실 투명성은 민주적인 정부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기초 덕목이다. 그러나 투명은 내부의 정결이 전제이다. 도덕적이고 정직한 정부만이 자신 있게 내면을 열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초기의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웠던 평가는 그 도덕성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었을 뿐이다. 인기의 비밀은 새내기 정부의 효율성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개혁은 과거를 부정한다. 그것은 미래의 이름으로 과거의 힘을 해체하는 싸움이다. 그런데 새로운 정치 세력은 초반의 위세를 잃고 과거의 힘에 밀려 비틀대기 시작했다. 과거는 우리의 삶 전체였기 때문에 정교한 수술의 칼을 갖다대기가 어려웠다. 기술보다는 고통을 참을 수 있는 결의에 대한 테스트였다.

그 과거는 문민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는 3당 합당이라든가 대통령 선거전 같은 정치적 부채일 수도 있었다. 부실 시공된 다리나 아파트, 또는 세월과 함께 자라온 세금 도둑의 단단한 공모 조직일 수도 있었다. 가장 큰 테스트는 12·12에 대한 해법이었다. 문민 정부의 문민성이 걸린 시험의 결과는 황당무계했다. 검찰은 문민 정부가 일찍이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교묘하게 명명했던 12·12를 법적으로 군사 반란이라고 규정하고서도 피의자들이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는 등의 야릇한 이유를 들어 불기소 처분했다. 대명 천지에 법은 실종되고 정치 논리만 살아 남았다.

과거는 강고하게 버티고 섰다. 개혁은 악몽의 기념비처럼 현재를 옥죄고 있는 과거의 영향력 앞에서 적나라하게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과거의 힘들이 팽팽히 뻗치고 있는 권력 구도의 비밀은 여전히 감춰져 있다. 문민 정부의 투명성이 선도가 떨어져 가는 가운데 개혁 자체가 해체될 위기에 빠져 버렸다.

올해 12월12일은 특별한 날
어차피 개혁은 용도 폐기될 구호였던가. 12·12 처리를 놓고 정치 무대가 暗轉을 거듭하는 가운데 세계화가 차세대 이념으로 등장했다. 세계화는 과거를 직접 상대해 싸우는 도덕적 부담은 없다. ‘작지만 강력한 정부’를 내세운 정부 조직 대개편이 지향하는 목표도 효율적 정부이지 도덕적 정부는 아니다. 이렇게 김영삼 정부의 제2기는 미래를 향하고, 밖을 향해 ‘용감한 신세계’의 바다로 출범하고 있다. 어느 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대통령은 정부 조직 개편을 계기로 3년 임기의 대통령에 취임하는 각오로 임할 것이며, 그 국정 지표가 세계화 장기 구상이라고 한다.

문제는 세계화마저도 과거와 단절된 추상적 공간 위에 세울 수 있는 개념은 아니라는 데 있다. 과거는 서울 정도 6백년을 기념하는 타임캡슐처럼 땅 속에 파묻고 ‘역사의 심판’을 미래의 누군가에게 편리하게 떠맡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핵 쓰레기처럼 민감하고 위험하며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두고두고 고통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올해 12월12일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날이다. 15년의 공소 시효가 만료되면 법의 무력함은 법적 장치 속에서 공식화한다. 그러므로 79년 겨울의 그 사건을 돌이켜보는 어떤 통과 의례가 필요할지 모른다. 그해 겨울 어설프게 ‘서울의 봄’을 기다리던 민주 세력들은 어느 틈에 패배자로 떨어져 버렸다. 94년의 12·12는 군사 반란 세력에게 또 하나의 승리를 예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 시대가 겪는 제2의 12·12가 아닌가.

어쨌든 이제 우리는 세계화의 새로운 시대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려는 노력이라면 그것은 도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작지만 강력한 정부,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어내겠다는 대 변동 속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효율적인 정부가 법의 엄정한 집행과 그 밑바탕이 되는 국민의 도덕 감정의 강건함이 없이 불가능하다면, 이 또한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개념은 아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시대의 진정한 과제는 투명한 도덕적인 명제로 수렴된다. 그것은 결국 과거를 바르게 해체하는 것이며, 이를 통한 개혁의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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