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스펠드 몰아내기 제2차 ‘별들의 반란’
  • 워싱턴 · 정문호 통신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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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거물급 퇴역 장성들, “국방장관 퇴진” 한목소리

 
미국의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73)을 향한 ‘별들의 반란’이 심상치 않다. 군부의 존경을 받아온 퇴역 장성들이 근래 부쩍 한 목소리로 럼스펠드 장관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중 일부는 1기 부시 정부에서 현직에 있을 때에도 럼스펠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었다.

이들의 불만은 단순히 럼스펠드의 대이라크 군사 정책뿐만이 아니다. 이라크 문제나 군 개혁과 관련한 전·현직 군부 지도부의 비판적 의견 개진에 대해 ‘네까짓 것들이 뭘 아느냐’는 식으로 대응한 럼스펠드 특유의 오만한 태도 역시 이들의 불만 요인이다.

이라크 전쟁 작전 수립에 깊이 관여했던 예비역 육군 소장인 존 배티스 장군은 “럼스펠드 장관은 군부 지도자들을 제대로 대접하지도 않을 뿐더러, 이들의 의견을 존중하지도 않는다”라면서 “현재 군부 내에는 장관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팽배해 있다”라고 밝혔다. 그를 포함한 예비역 장성 예닐곱 명의 집단 ‘항명’에 대해 일단 럼스펠드 장관은 “과거 1·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 전쟁, 한국전쟁 때에도 이런 비판은 있었다. 결국은 수그러들 것이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게다가 국군 최고 통수권자인 부시 대통령도 이례적으로 럼스펠드 장관에 대한 신임을 공개적으로 표명해 외압에 의한 중도 하차는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집단 항명에 가담한 예비역 장성들은 사실 미군 내 최고 핵심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레고리 뉴볼드 예비역 해병 중장은 합참 작전국장을 지냈으며, 폴 이튼 예비역 육군 소장은 2003년 이라크 보안 병력의 훈련 책임자를 지냈다. 또 앤서니 지니 예비역 해병 대장은 중동을 관할하는 미군 중부사령부 사령관을 지낸 인물이다.

럼스펠드 축출 운동의 선봉장 격인 베티스 장군은 2003년 봄 이라크 전쟁 수행 당시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의 군사 보좌관을 지낸 뒤, 이듬해에는 이라크 현지에 파견되어 1사단장을 지냈던 군부 엘리트 출신이다. 국방부측은 특히 이라크 전쟁 계획과 집행에 앞장섰던 배티스 장군이 럼스펠드의 ‘저격수’로 나선 데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예비역 장성들의 불만은 당초 지난 3월 하순 폴 이튼 장군이 뉴욕 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럼스펠드 장군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는 이 기고문에서 럼스펠드가 전후 이라크 미군 배치와 관련해 무기의 첨단기술력을 맹신한 나머지 미군 현역 사병들을 너무 적게 배치해, 결과적으로 이라크 치안도 확보하지 못하고 미군 사상자만 불어나게 했다고 신랄히 비판했다. 이튼 장군이 이처럼 공개 비판에 나서자 다른 장군들도 합세했다.

특히 배티스 장군은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을 통해 “자꾸 반복되는 허술한 전략적 결정과 군부에 대해 오만하고 경멸하는 스타일로는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라면서 럼스펠드 장관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같은 비판에 대해 럼스펠드는 “장군 수천 명 가운데 매번 두세 명이 국방장관 하는 일에 못마땅하다며 사퇴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개판이나 다름없을 것이다”라며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시 신임 두터워 사퇴 가능성은 낮아

럼스펠드에 대한 사퇴론이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이라크 내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재소자들을 상대로 저지른 일부 미군 병사들의 학대·고문 사건이 터졌을 때에도 럼스펠드 사퇴론이 급속히 힘을 얻었다. 더군다나 공화당 소속의 존 매케인·척 헤이글 두 상원의원이 사퇴 불가피론을 들고 나오면서 럼스펠드의 장관 수명도 끝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럼스펠드도 마침 그해가 대선이 있던 해여서 재선을 노리고 있던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해 두 번이나 사퇴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아예 그의 사퇴를 전제로 후임 논의까지 일기도 했다.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이나 조 리버먼 민주당 상원의원이 물망에 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부시는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럼스펠드를 유임시켰다. 럼스펠드를 강제 퇴출시킬 경우, 이라크 실정을 시인하는 셈이 되어 곧바로 자신의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시는  이라크 전쟁이라는 ‘원죄’를 짊어진 럼스펠드와 한 배를 타야 할 ‘공동 운명체’인 셈이다.
 
 
럼스펠드에 대한 장군들의 원성은 비단 이라크 전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럼스펠드는 5년 전 장관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군부 지도자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군 개혁을 밀어붙였다. 그는 자신의 구상에 반대하던 일부 군 지도부 인사들을 가리켜 ‘냉전식 사고에 젖어 있다’며 공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의견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같은 오만함이 군부의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럼스펠드는 군 개혁과 관련해 냉전이 끝난 지금 미군은 병력의 규모보다는 질을 우선해야 한다며 첨단 무기 중심의 과감한 ‘경량화’를 추진했다. 실제로 럼스펠드는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군을 최소한의 병력만 투입시켜, 신속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자신의 구상이 옳았음을 입증하기도 했다.

 그러나 럼스펠드의 구상은 이라크 전쟁 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전후 양측 점령 지역의 질서 평정을 위해 군부가 50만 미군의 배치를 주장했으나 럼스펠드는 이를 묵살하고 12만5천명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럼스펠드는 전후 이라크 주둔 미군 규모와 관련해 가급적 소규모 투입을 원하던 자신의 뜻과 달리 수십만 명의 대규모 병력을 주창했다는 이유로 육군 참모총장인 에릭 신세키 대장을 전격 파면해 군부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번에 럼스펠드에 반기를 든 예비역 장성들은 이라크전쟁이 끝난 지 3년이 훨씬 넘도록 이라크 치안이 여전히 불안하고 미군 사상자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근본 이유를 현지에 배치된 미군이 태부족한 탓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또한 ‘9·11 테러’의 주범으로 꼽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을 아프가니스탄의 한 산악 동굴에서 생포하지 못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당시 아프가니스탄에 배치된 미군 병력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 모든 실책의 배후에 럼스펠드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아무튼 이번 사태는 군에 대한 민간인 통제권에 거스르는 전면적 도전이라는 인상을 줄 뿐 아니라 이라크 현지에서 복무하는 미군 병사들과 지휘관들의 사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예비역 장성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 이라크 현지의 최고 지휘관이었다.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 출신인 미국 보스턴 대학 앤드루 바체비치 교수는 “최근까지 이라크 전쟁에 개입했던 예비역 장성들이 아직 미군이 현지에 배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국방부 민간 수뇌부를 질타하는 것은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군 전문가들은 최고 통수권자인 부시가 럼스펠드를 엄호하는 한 그가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 현지에 파견된 미군 사상자가 계속 불어나고 미군의 이라크 철군 계획이 끝없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군부의 신임까지 잃게 된 럼스펠드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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