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도 하기 나름”
  • 파리·양영란 통신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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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비 갈린 두 사회당



스페인 장기집권 예약, 프랑스 실권 위기


지난 10월28일은 스페인의 사회당이 집권 10년을 기록하는 날이었다. 독재자 프랑코 총통이 사망한 지 7년째 되던 해인 1982년, 40세도 채 안된 펠리페 곤잘레스가 이끄는 스페인 사회노동당(PSOE)이 선거에서 전체 3백50의석 중 2백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며 정권을 장악했을 때 세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시 스페인은 후안 카를로스가 왕위에 올라 입헌군주국으로 되돌아간 지 얼마되지 않은 상태였다. 왕정복고에 바로 뒤이어 좌파정권이 들어선 것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게다가 한해 전인 1981년 프랑스에서 사회당의 프랑소와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 프랑스 사회당(PSF)이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던 마당에 서유럽 내에 사회당 집권 국가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된 것은 이변이 아닐 수 없었다.

집권 10년째를 맞은 스페인 사회당이나 집권 12년째에 들어선 프랑스 사회당은 집권기간 동안 두번의 국회의원 선거를 치뤘으며, 양당 모두 내년에 세번째 총선을 치른다. 내년의 선거를 놓고 관측자들은 스페인 사회당에 대해서는 승리를 낙관하는 반면, 프랑스 사회당에 대해서는 패배를 점치고 있어 두렷한 대조를 이룬다. 그렇다면 스페인 사회당의 장기집권 비결은 무엇이고 프랑스 사회당이 국민으로부터 점차 외면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페인 사회당이 집권 이후 추진해온 정책을 놓고 말한다면 그 기저에 깔린 이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1974년부터 당수직을 맡아온 세빌리아 출신 전직 변호사 펠리페 곤잘레스는 이데올로기에 투철한 관념론자라기보다는 뛰어난 실리주의자로 통한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중 하나인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스스로 정통사회주의자가 아닌 ‘이단’으로 지칭한 바 있고 부작용이 많은 ‘좌파의 이념적 보수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자신이 늘 투쟁해왔노라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1971년 이후 마르크스주의적 기반을 부쩍 강화시킨 프랑스 사회당이 81년 집권 후 현실의 벽에 부딪혀 어쩔 수 없이 사회주의 원칙의 일부를 포기(초기에 국영화했던 기업들을 재차 민영화한 것이 좋은 예다)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곤잘레스의 스페인 사회당은 집권 이전부터 탈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해왔다. 집권 초기 프랑스 사회당이 사회주의 이념을 충실히 좇아 이전의 우파정권과는 전혀 다른 정책을 펴기 위해 조바심을 냈다고 한다면, 스페인 사회당은 좌 · 우파의 이념적 대립을 떠나 일단 40년이라는 프랑코 독재 기간 및 그 후의 정치적 혼란기 동안 거듭 유린됐던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낙후된 경제를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일을 급선무로 삼았던 것이다. 이는 결국 전임 아돌포 수아레스 수상의 중도우파연합 정권이 추구했던 스페인 근대화 정책의 연장이나 다를 바 없었다. 스페인에서는 사회당 집권에 따른 기업체 국영화는 전력공사를 제외하고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86년 선거에 승리한 다음에는 프랑코 치하에서 국영화했던 기업들마저 사기업으로 전환시켰다.

EC 가입, 스페인 사회당의 가장 큰 업적

곤잘레스 수상을 필두로 하는 사회당 정부의 반사회주의적인 정책은 그에 그치지 ㅇ낳는다. 사회당은 야당 시절에는 반군국주의 , 반미주의를 기조로 스페인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입을 결사 반대했으나 집권 후 1985년 스페인의 북대서양조약기구 잔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는 기존 방침을 완전히 바꾸어 북대서양조약기구 잔류 찬성 캠페인을 벌였으며, 결국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나토 가입국으로 남게 되었다.

노동조합과의 관계도 스페인 사회당의 실용주의 노선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스페인 사회당은 사회노동당이라는 당명이 말해주듯이 전통적으로 노동자 계층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었다. 그러나 집권 이후 스페인 역사상 보기 드물게 몇차례의 총파업 시위가 잇달아 발생하자 1988년에는 이제껏 그들의 충실한 동반자 역할을 해온 사회주의 계열의 대표적 노동조합(UGT)과 결별하기에 이른다.

사회주의적이었건 자유주의적이었건 10년이라는 통치기간을 거치는 과정에서 스페인 사회당이 이룩한 가장 성공적인 업적은 유럽공동체(EC) 가입(1986)을 들 수 있다. 경제적으로 ‘서유럽의 병자’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었던 스페인은 유럽공동체 가입을 기점으로 비로소 실질적이고도 장기적인 회복기에 접어들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외국인 투자가 급증하고 실업률이 현저히 감소하는가 하면 유럽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자랑하게 되었다. 올 한해 동안 스페인이 유치한 국제규모의 행사는 세빌리아 만국박람회, 바르셀로나 하계 올림픽, 콜롬부스 아메리카 대륙 발견 5백주년 기념행사 등이다. 이 문화행사들을 통해 여태까지 국제무대에서 상대적인 고립감을 느껴온 스페인 국민의 체면도 어느정도 회복될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 위협이 그치지 않고 집권기간중 여러차례 사회당 인사들의 부패로 인하나 금융스캔들이 터지기도 해서 사회당의 이미지에 얼마간 손상이 간 것은 사실이다.

세계적인 불경기로 인해 성장을 거듭해온 스페인 경제도 요즘 들어 다소 주춤하는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사회당은 기적이라고까지 일컬어질 만큼 스페인을 유럽의 새로운 총아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하여 집권 10년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쉽게 희석되지 않는다. 10년 동안 같은 얼굴만 대하다보니 국민이 사회당에 식상한 점도 없지 않지만 곤잘레스 수상 개인을 놓고 보면 인기는 아직 건재하다. 현재 제1야당인 국민동맹(중도우파)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25%를 밑돌고 있는 상황이어서 차기 선거의 결과를 예측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프랑스 사회당, 진로 찾기 부심

이에 비해서 프랑스 사회당은 내년 선거를 앞두고 심한 정체성의 위기에 빠져 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20% 만이 사회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내년 선거에서 사회당이 패배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프랑스 사회당 집권 11년 동안 공과를 들여다보면 프랑스 사회당이 이처럼 낮은 점수를 받아야 할 만큼 실패만 거듭한 것은 아니다. 비록 집권 초기의 실책과 최근 몇년 동안 발생한 각종 스캔들 및 실업자 증가, 교육문제, 의료보험 문제 등으로 사회당 체면이 깍인 점은 있으나, 정치 · 사회 분야에서 사형제도 폐지, 지방분권제 가속화, 5주간 유급휴가제 채택, 경제 분야에서 프랑화의 강세, 무역수지 흑자, 인플레 억제 등 상당하나 업적을 남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사회당의 인기가 날로 떨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프랑스 유권자들이 사회당에 대해 갖는 불만은 ‘장기집권으로 인한 권력이 피폐’ 외에 ‘좌파로서의 입장 포기’,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장기적 비전의 부재” 등으로 요약된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사회당의 덕목으로 인식되어왔던 ‘노동자 권리의 대변자’, ‘저소득층 구제정책의 입안자’ 등의 가치마저 더이상 사회당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지적을 받게 되었다. 프랑스 유권자들은 사회당이 내세우는 본연의 가치를 비판한다기보다 그 가치를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사회당 정부가 점차 현실에 안주, 현상유지에 급급한 나머지 우경화해온 사실에 큰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사회당은 내년 봄으로 다가온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이 느끼는 이같은 배반감을 해소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지난 7월의 임시 전당대회에서는 내분을 수습하고 당의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하며 이를 위해 조속한 시일 내에 당을 혁신해야 한다는 합의를 끌어내기도 했다. 미셸 로카르 전 수상을 미테랑 대통령의 후계자로 추대함으로써 표면상 일단 당내 반대파를 잠재우긴 했으나 사회당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 수렴이 되지 않은 상태이다. 당의 뼈대를 유지하면서 개혁을 추구하자는 움직임과 당의 틀을 떠난 새로운 사회주의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와해와 더불어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자본주의 체제를 굳혀가고 있는 현실적 상황에서 사회주의 재정립을 위한 논쟁에 이처럼 연연해 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행위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에도 좌파와 우파는 구분해야 한다고 믿는 프랑스 유권자들이 아직도 상당수에 달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요즘 프랑스 사회당이 앓고 잇는 홍역도 언젠가 한번은 반드시 거쳐야 할 자기 확인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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