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양키본드’ 벽 뚫었다
  • 장영희 기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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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채권시장에 첫 진출… 재무구조 · 회계처리 방식 개선해야

한국 민간기업이 미국 월가에 진출했다. 월가로 불리는 미국 자본시장은 매우 까다로운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자국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국제신용도를 공인받은 최우량기업에만 문을 터놓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채권시장은 유럽시장에 비해 뚫기가 어려운 반면 규모 기간 금리 등 차입조건이 매우 좋다. 유로본드 시장이 차입규모가 통상 1억달러를 넘지 않는 ‘마이너 리그’라면 양키본드 등 미국 시장은 ‘메이저 리그’인 셈이다.

지난달 29일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골드만삭스사와 계약체결에 성공해 2억달러어치의 무보증 회사채(일명 양키본드)를 자사 신용으로 발행했다. 골드만삭스사는 미국 내 3위 증권사로 이 계약의 주 간사회사이다. 양키본드 발행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과 한국전력 포항제철의 전례가 있으나 순수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이다.

채권발행 조건 까다로운 미국 시장

삼성전자의 성공은 미국 시장 문턱을 넘으려는 기업들을 고무시키고 있다. 유리한 조건으로 차입하나 데다 앞으로 긍정적 영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양키본드는 10년 동안 금리변동 없이 연 8.5%의 표면금리가 적용된다. 발행수익률은 6.72%의 미 재무성증권 금리에 1.85%의 가산금리(스프레드 · 기준 금리와 실제 발행금리의 차이)를 더한 8.57%이다. 삼성전자는 산업은행(0.84%) 한국전력(0.90%) 포항제철(0.92%) 등에 비해서는 가산금리를 높게 받았다. 미국 증권관리위원회(SEC)에 등록해야 하는 공모방식 대신 이 절차가 필요없는 준공모방식을 택한 데다 삼성전자가 차입할 때 일시적으로 자금경색이 일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삼성전자 具長烈 국제금융부장은 “이 고정금리 수준으로 10년 동안 2억달러를 빌리는 것은 당분간 어떤 시장에서도 기대하기 어려운 좋은 조건이다”라고 자평했다. 삼성전자는 이 돈을 외국 금융기관에 예치해놓고 16메가D램 양산설비에 쓸 계획이다. 원화로는 바꿀 수 없는데 정부가 통화증발을 우려해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이 까다롭다고 불리는 이유는 우선 연결재무제표 등 복잡한 미국 방식의 회계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신용평가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평가기관이 가장 발달한 나라는 미국과 일본이다. 미국의 양대 기관은 스탠더드앤푸어사(1860년 설립)과 무디스사(1909년)이다. 스탠더드앤푸어사는 역사가 가장 오래되고 8천개의 공공기관과 2천개의 기업을 평가한 실적을 갖고 있다. 미국 시장 점유율이 99%나 되는 무디스사는 3만개 채권을 평가한 실적을 자랑한다. 일본은 JBRI사가 가장 권위있는 기관이다.

스탠더드앤푸어사와 무디스사의 등급은 달리 표현된다. 스탠더드앤푸어사(괄호 안은 무디스사)의 경우 25개의 등급 중 AAA(Aaa)가 최상등급이며 AA+(Aa1) AA(Aa2) AA-(Aa3), A+(A1) A(A2) A-(A3)가 각각 2, 3등급 단계이며 그 뒤를 B, C단계가 따르고 있다. 한국 정부는 5번째인 A+(A1)로 한국 기업은 매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 이상을 받을 수 없다. 미국 시장에서 BBB(트리플 B)이상의 등급을 얻지 않으면 채권발행이 어렵다. 재무부도 트리플B를 받지 못한 기업에는 승인을 꺼린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이 해외에 나가면 차입성공률도 극히 낮지만 요행히 성공해도 금리수준을 높여 한국 기업의 이미지를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스탠더드앤푸어사에서 A등급을 받았다. A+등급을 받은 포철 산엉ㅂ은행 수출입은행보다는 한단계 낮다. 삼성전자가 A등급박에 받지 못한 것은 재무구조가 좋지 않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경영자의 능력, 성장잠재력, 경영성과, 산업전망 및 중요도, 한국 내의 비중, 정부의 지원가능성 등 대부분의 평가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재무구조 부문은 좋은 평판을 얻지 못했다.

삼성전자 金東宇 자금담당 이사는 “이번 경험으로 재무구조 견실화와 회계처리의 국제적 표준화에 더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지적했다. 김이사는 또 “미국투자자들은 전반적으로 한국 기업이 그동안 일궈온 성과, 성장성, 잠재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재무적 안정성에는 우려를 표시했다”고 전했다. 따라서 미국 시장을 뚫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영여건을 극복하기 위해 부채비율을 줄이는 등 자기자본 충실화에 역점을 둔 경영자세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양키본드 발행 올해부터 허용

또 삼성전자측은 투자설명회 때 투자자들이 한국의 정치상황과 남북관계에 우려 섞인 질문을 쏟아냈다고 전했다. 이 계약에 정부대표로 참여한 재무부 국제금융과 尹汝權 사무관은 “정치상황 등 경제외적 변수들도 개선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면서 이 부문이 좋아지면 정부와 기업의 신용등급이 한단계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대기업들은 그동안 유로본드로 지칭되는 유럽 시장에서 돈을 꿔왔다. 장대높이뛰기를 해야 하는 미국 시장보다 차입이 수월했기 때문이다. 자사 신용으로 국제시장을 뚫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채권 뱅크론 등으로 금융기관이 조달한 돈을 빌리는 간접방식이었다. 한국 기업의 해외자금 조달은 삼성전자의 성공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포항제철 한국전력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주)유공 (주)대우 등 대표적인 기업들이 차입에 성공했을 뿐이다.

조달방식으로 보면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 사채(BW), 주식예탁증서(DR) 등의 주식연게 증권이 많다. 지난 85년 삼성전자가 CB를 발행함으로써 시작된 주식연계증권은 11월4일 현재 20억달러(40건)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CB가 13억달러(31건)로 압도적으로 많다. 정부는 주식과 관련없는 순수한 외화조달인 양키본드 발행을 올해부터 허용했다.

재무부 姜萬洙 국제금융국장은 “재무구조 등 경영상황이 견실하고 공공성이 강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해외 직접차입을 허용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강국장은 “기업의 차입여부는 전적으로 해당 기업의 신용에 달려 있다”면서 외국투자가가 ‘화사 가치’를 사도록 상품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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