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국내각과 내각책임제
  • 박권상(편집고문)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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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대통령은 헌법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 포부를 밝히고 찬반 시비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거국내각’이란 말이 나오고 ‘내각책임제’라는 공약이 부상하고 있다. 전자는 민주당 김대중 후보의 거듭된 공약이고, 후자는 국민당 정주영 후보가 선거공약으로 제시하겠다는 구상이다.

거국내각의 경우, 김후보는 “분열되어 있는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합칠 수 잇는 대화합의 정치”를 펴겠다는 것이고 그 수단으로 “승리하면 김영삼 민자당 총재, 정주영 국민당 대표 및 각계 지도자들과 거국내각 구성을 협의하겠다”고 공약하였다. 정대표 역시 거국내각 구성을 밝힌 바 있고 새로 태동하고 있는 새한국당과의 통합의 조건으로 “내각책임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우자”고 제의하였다.

정대표의 내각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정리된 것이 없으나 대통령이 혼자서 주요 국사를 결정짓는 권력집중의 대통령제 정부를 청산하나는 것은 분명하다. 이른바 ‘반김 세력’의 결집과 ‘새정치’를 표방하고 나선 새한국당 인사들이 권력분산형의 내각제를 선호하고 있어 두세력 간에 정주영씨의 기본노선과 합치되는 공통분모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선거 40일을 앞두고 두갈래의 세력이 극적으로 합당을 선언하여 김영삼씨의 민자당 및 김대중씨의 민주당에 대응하는 강력한 제3의 선택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인지는 매우 흥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거국일치 내각, 내각책임제 정부형태서만 가능한 개념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내각책임제가 공론화되고 있다는 시실이다. 김대중씨가 말하는 거국내각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으나 ‘거국일치 내각’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각책임제 정부형태에서만 가능한 개념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대통령제 정부형태하에서는 ‘내각’이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다. 행정부의 모든 것을 대통령이 책임지는 것이 대통령제 정부다. 대통령이 책임진다는 것은 그가 독자적으로 권한도 행사한다는 뜻이다. 총리 이하 각료들은 대통령의 뜻을 집행하는 보좌역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통령제의 나라에서 두개 이상의 정당이 구성하는 연립내각이라든가, 하물며 모든 정파가 함께 참여하는 거국내각이라는 개념은 성립할 수 없다.

우리 역사상 거국내각이란 물론 전례가 없다. 내각책임제의 나라인 영국의 경우, 제1차 대전과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로이드 조직의 거국내각과 처칠의 거국내각이 국민의 단결을 가져오는 위력을 발휘하였고 1930년의 세계적 대공황을 극복하는데 맥도널드의 거국내각이 국민적 호응을 받았다. 평상시 대립 경쟁하는 정파들이 비상시국을 극복하는 데 보수당 노동당 자유당 및 원외 인사까지 포함, 당면 정책을 조정하고 권력을 분담하여 단결되는 힘으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거국내각으로 국난을 극복한 사례는 제2차 대전 후의 오스트리아의 경험을 말할 수 있다. 전쟁이 끝나자 오스트리아는 미 · 소 · 영 · 불의 연합국이 분할통치하였다. 그러나 1945년 봄 연합군이 진주하자마자 오스트리아의 보수계인 인민당과 사회당 및 공산당은 거국내각으로 연합국 분할통치에 대응하여 10년 후에 영세중립국이 된다는 조건으로 점령군을 물리쳤고 좌우합작, 노사단합으로 경제적 안정 및 부흥을 가져왔다.

헌법개정 문제가 유권자 판단 자료 된 것은 큰 의미

우리의 경우, 민주당이 내건 ‘거국내각’이 성립하려면 우리의 헌법을 내각책임제로 개정한다는 의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적어도 지금의 헌법을 내각제로 운용한다는 것이 분명히 밝혀지고 다져져야 한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는데 국회의 동의를 먼저 얻어야 하고 각료를 임명하는 데 총리의 제청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원내 과반수 의석을 민자당이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김대중씨나 정주영씨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경우, 총리임명에 있어 민자당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따라서 야당이 지지하는 야당 총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정계개편이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겠으나, 총선거 때 표시된 국민의 의사를 파기하는 것은 ‘3당합당’처럼 부도덕이 수반된다. 그렇지 않는 경우 정부 구성에 있어 여야가 다같이 참여하는 거국내각이 출범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헌법을 내각제로 운용한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대통령과 총리가 소속을 달리할 수 있는 대단히 불안한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번 선거에서 헌법개정 문제가 유권자의 선택에 판단의 자료가 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 헌법은 6 · 29선언 후 여야가 충분한 배려 없이 만들어, 대통령은 직선하되 대통령의 권한은 내각제 요소로 대폭 제약한, 운용이 매우 어려운 누더기 헌법이다. 내각제로 운용함으로써 지역간 대립을 불식하고 대통령선거로 말미암은 국가적 에너지의 낭비를 막든가, 순수한 대통령제로 고쳐서 정 · 부통령제, 4년 중임제 및 결선투표제를 도입함으로써 헌정 운영을 원활히하고 지역 분열을 막을 수 있다. 다음 대통령은 헌법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포부를 제시하고 국민의 찬반 시비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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