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도전에 사법권 응전
  • 파리·양영란 통신원 ()
  • 승인 1994.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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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부패 수사, 행정부와 검찰 싸움으로 비화



 이 대신 잇몸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탈리아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아래 상자 기사 참조)가 사직서를 제출한 이후에도 부패와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12월13일 밀라노 검찰 소속 부패담당반 반장인 프란체스코 보렐리 검사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현 이탈리아 총리를 검찰청으로 소환했다. 검사 대리 2명도 배석한 이 자리에서 보렐리 검사는 세무감독관 매수 사건과 관련해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증언을 들었다. 부패 수사 과정에서 상당수 고위직 인사들이 연루되었다고 하나 현직 총리가 소환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인 만큼 이 사건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총리에 오르기(94년 4월) 전까지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커뮤니케이션 그룹의 총수였던 베를루스코니는, 자기가 총수로 재직할 당시 그의 기업 핀인베스트가 세무감사에서 혜택을 받고자 감독관을 매수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의 기업이 뇌물로 3억3천만리라(약 1억6천만원)을 지급한 사실은 이미 지난 7월에 밝혀졌으므로, 이번 소환에서는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이에 직접 관련되었는지를 밝혀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경찰과 헌병 3백여 명이 삼엄하게 검찰정을 에워싼 가운데 일곱 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 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측이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대해 어떤 조처를 취할지도 알 수 없다.

정부, 월권 · 불법 간섭 자행
 이 날 저녁 예정되어 있던 기자회견을 취소하고 텔레비전을 통해 직접 전달된 성명서를 통해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자기에 대한 혐의는 아무런 증거도 없으며, 모든 의심은 오로지 자기가 핀인베스트의 총수였으므로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알고 있으리라는 가정에만 근거를 두고 있다고 분개했다. 그는 또한 이 사건이 공정재판을 가장한 쇼이며, 부당한 재판을 보여주는 한바탕 연주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변론이 얼마 만큼 설득력이 있는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총리에 임명된 뒤에도 자기의 기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않고 있는 그의 양다리 걸치기로 말미암아 집권 7개월 동안 그가 제시한 법안들은 번번이 베를루스코니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한 입법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가 제안한 부패 사건 관련자의 구류를 제한하는 법안이야말로 개인의 이익과 국가 이익 사이의 혼돈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지난 7월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92년 이래 이탈리아와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부패 사건 관련자에 한해 구류 조처를 폐지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이미 구류 처분을 받은 사람들 외에 때마침 수사 대상에 오른 핀인베스트 계열 회사 책임자들의 구류도 방지할 요량으로 제안한 이 법안은 사법계는 물론 국민들로부터 극심한 반발을 샀다. 밀라노 부패담당반 소속 검사 가운데 4명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시민들의 반대 시위가 열기를 더해가지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열흘 만에 법안을 철회하는 굴욕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건을 전후해서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친동생을 비롯한 측근들이 부패 사건에 연루되어 사법 심사 대상에 오르기 시작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로서는 혹 떼려다가 혹 붙인 셈이다.

 정부측이 사법부에 압력을 가한 또 다른 예가 있다. 지난 10월 중순, 이탈리아 법무부는 핀인베스트 경영진의 제소에 따라 감찰관 4명을 밀라노 검찰청에 파견했다. 부패담당반의 수사 방식에 무리가 있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피에트로 검사도 무려 6시간이나 감찰관에서 심문을 받아야 했다. 이탈리아 헌법이 검찰측에 행정부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보장해 주고 있음을 감안할 때, 법무장관의 이같은 조처는 완전히 불법 간섭 행위이다. 사법권에 위협을 가하려는 월권이라는 사법부측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정부측은 11월 말 다시 한번 사법권에 도전했다. 12월5일 밀라노 법정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던 세무 공무원 공판을 브레시아 재판정으로 전격 이전토록 결정한 것이다. 사법 행위를 정치 도구화하려는 밀라노 검사들의 과열 때문에 공정한 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피에트로 검사가 공정 수사를 위해 전격 사직한 데 맞서 정부측도 법무부 감찰원 전원이 일괄 사퇴하는 등, 양자의 힘 대결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
파리·梁永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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