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基澤 민주당 대표
  • 김재일 부장대우 ()
  • 승인 1994.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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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지도체제 아니면 안된다”

 지난 16일 오후 북아현동 자택에서 만난 이기택 민주당 대표는 심한 감기 몸살 때문인지 다소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는 사진 찍기는 물론 인터뷰를 한사코 거부했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최근 일련의 상황 전개와 더불어 이대표와 김대중 아·태 평화재단 이사장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진 것으로 비친다. 따라서 이번 주말께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회동에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참을 실랑이한 끝에 그는 ‘어디 질문서나 좀 보자’고 했고, 마침내 ‘그럼 한번 해보자’면서 입을 열었다. 한번 입을 열자 그는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김대중 이사장과 언제 만나십니까?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하실 겁니까?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곧 만나게 될 걸로 봅니다. 자연스럽게 만나는 거니까 모든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겠지요. 저는 당대표라는 처지에서, 그 분은 경험을 가지고 계시는 정치 원로에다가 또 우리 당과는 불가분의 관계이니까, 넓게는 국내외 정세 전반에 대해서, 좁게는 실타래처럼 얽힌 당내 문제에 대해서 그분의 생각을 물어볼 수도 있고 여러 가지를 논의하겠지요.

전당대회는 조기에 열리게 됩니까?
적어도 당내 분위기가 전당대회를 빨리 열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힌 것 같아요. 당 분위기가 표류하고 있으니까 전당대회를 통해서 당의 지도력을 확립하는 것이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자치 선거를 대비해 바람직한 것 아니냐, 그런 뜻에서 다수 당원들이 조기 전당대회를 바라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지요.

이대표는 강력한 단일 지도체제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왜 그래야 합니까? 그것을 실현을 가능성이 있습니까?
지도체제라고 하는 것은 국가나 사회, 정당 조직의 구조적인 특성을 반영합니다. 우리 민주당의 경우 통합 정당이라는 측면을 감안한다 해도 역사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는 지금의 순수 집단 지도체제로는 안됩니다. 지금의 민주당 지도체제가 비효율적이라며 강력한 단일 지도체제를 원하는 국민과 민주당원이 많습니다. 누가 되든 대표에게는 상당한 결정권을 줘야 합니다. 현재는 모든 것을 합의하여 결정하게 돼 있습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의 순수 집단 지도체제에 대해 당원들은 진절머리를 내고 있고, 국민들도 비판하고 있습니다. 단일 지도체제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 그쪽으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전당대회에서 동교동이 이대표를 밀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그런 확신을 가져 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당내 최대 계파인 그쪽에서 독자 후보를 내면 몰라도 당내 여러 가지 역학 관계로 볼 때 (저를) 밀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3년쯤 전에 신민당과 통합한 것이…사실 신민당이 바로 동교동 아닙니까. 통합 정신을 보더라도 당연히 밀어 줄 수도 있는 건데, 그러나 (동교동이) 꼭 지원할지 안할지는 저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만약 동교동이 밀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민주당에 계파도 있고 여러 군소 세력이 있는데 여기에 홀로서기란 말은 적합하지 않다고 저는 얘기해 왔습니다. 여러 군소 세력과 합해서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고 당내 주류를 형성하고 하는 것인데, 밀어주면 대단히 고맙겠지요. 지금까지도 우리는 주류로서 일해 왔습니다. 요즘 뭐가 좀 이상한 것 같지만 사실 이상해질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그런 관점에서 전당대회를 내다보고 있고, 또 제가 꼭 밀어 달라거나 그것을 확신한다 그런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우리는 주류니까 특별히 깨어져야 할 이유가 없다면 원상대로 가는 게 옳지 않느냐는 거지요.

당 일각에서 공동 대표제 말도 나옵니다만.
(단호한 어조로) 그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수권 정당이라면서 공동대표제를 한다는 것은 국민이 웃을 일입니다. 순수 집단 지도체제를 해서도 사실 성공작이라고 평가하기 어려운데 거기서 한발짝 더 후퇴하는 거지요. 과도기라면 몰라도 지금은 적절치 않습니다. 그 안은 소신을 가지고 내놓은 것이라기보다는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온 걸로 봅니다.

12·12관련자 기소 투쟁은 앞으로 어떻게 됩니까?
앞으로도 계속해야지요. 적어도 5·18까지는 계속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처음 시작할 때 제1단계는 12·12공소시효 만료 때까지로 잡고 그때까지 검찰의 결정이 번복되지 않으면 5·18까지 투쟁하기로 한 겁니다. 군사반란죄가 재판도 받지 않고 그냥 역사 속에 묻히면 민족 정기가 훼손되고 역사가 왜곡됩니다. 우리가 몇 번 투쟁했다고 해서 할 것 다 했다고는 결코 생각지 않습니다. 저 자신 이 문제만은 싸울 수 있는 마지막 시간까지 싸워서 바로잡을 겁니다.

정치란 명분이 중요하지만 현실이기도 한데 그 투쟁에서 눈에 드러나는 성과가 없었잖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무슨 말입니까. 천만의 말씀이지요. 왜 성과가 없어요. 사실 이 질문에 대답하려고 인터뷰에 응했어요. 민주당이나 제가 국회를 보이콧하고 장외 집회를 하면서 국민들로 하여금 12·12관련자에 대한 기소 유예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알게 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성과가 어디 있습니까.

청와대측은 이대표의 결의에 찬 투쟁을 무시하는 듯했고, 오히려 이대표와 김이사장 간의 갈등이 더 크게 부각된 측면을 즐기는 듯이 보였습니다.
김이사장 때문에 그랬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도 않고, 꼭 그렇다고도 할 수 없어요. 다만 우리 당이 12·12투쟁에 일사불란하게 단합된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당론이 결정됐는데도 거기서 이탈해 병행 투쟁을 주장한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청와대가 좋아한 겁니다. 그건 우리 당의 잘못이지요. 만약에 우리 당이 처음에 당론을 결정할 때의 그 투지를 가지고 임했더라면 청와대가 우리에게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결국은 누구를 탓하기 전에 당 대표로서 제가 당을 챙기지 못한 데도 일단의 책임이 있고, 싸움 도중에 당내에서 적전 분열한 것도 크게 반성할 문제라고 봅니다.

여하튼 초기의 충천했던 12·12 투쟁 분위기가 많이 꺼진 것 같습니다. 이대표가 외통수로 너무 멀리 나아가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수습에 어려움은 없습니까?
분위기가 꺼져 버린 것이 아니냐고 볼 수도 있겠는데, 정기 국회를 끝까지 외면해 버릴 수는 없잖아요. 국회에 등원했기 때문에 장외 투쟁을 좀 늦춰야 하는 이유가 있고, 또 날씨가 너무 춥지 않습니까. 연말 연시에다가 정부조직법이나 세계무역기구 가입 등 중요한 국사가 걸려 있어서 잠시 템포가 늦어졌을 뿐이지 결코 분기탱천했던 의지가 약해졌다거나, 또 언제까지는 약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입니다. 적어도 1월 초순이 지나고 나면 제가 어떤 처지이든지 12·12투쟁을 계속할 것이란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처리되지 않고 있는 의원직 사퇴서를 언젠가 돌려받을 가능성이 있습니까?
그거야 국회의장이 알아서 하겠지요. 국회의장의 소관 사항인데, 과거의 예를 보면 반려하려고 하겠지요. 그러나 저는 어쨌든 돌려받지 않습니다. 한 당의 대표로서 12·12를 바로잡기 위해 의원 직을 버린 것은 국민에 대한 약속이고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투쟁에 바친 제물이지, 일시적 흥분이거나 정치인이 흔히 쓸 수 있는 인기 전술이 아닙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도 저는 절대로 돌려받지 않을 것입니다.(그는 이대목을 강하게 써달라고 부탁했다)

최근 청와대측이 영수회담을 타진한 데 대해 이대표측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청와대측이 영수회담을 다시 제의하면 받아들일 겁니까?
지금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12·12가 주의제가 되고 국정 전반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하자고 하면 만날 것입니다. 그러나 12·12를 빼고 다른 국정에 대해서만 논의하자고 한다면 만날 생각이 없습니다.

97년 대통령 선거 출마에 어느 정도로 강한 집념을 가지고 있습니까?
너무 직설적인 질문이어서 대답하기가 어렵군요. 제가 대권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집념은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때가 되면 가질 수 있는 것이고, 문제는 자기가 그만한 위치가 되느냐 이겠지요. 대통령 후보는 누가 됐을 때 시대가 바라는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는가에 따라 정해져야 합니다. 저도 그 중 한 사람이겠지요. 국민으로부터 기대와 인정을 받도록 꾸준히 노력할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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