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이 남긴 것
  • 김훈(사회부장) ()
  • 승인 1994.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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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정부가 도마뱀처럼 과거의 꼬리를 잘라서 미래로 던져버리고 ‘세계화’로 나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94년의 시대사적 특징은 개혁의 후퇴와 사회의 저변을 이루고 있었던 관리 불가능한 국면들의 폭발적 분출이라고 할 수 있다. 전대미문의 흉악 범죄와 세금을 원천 횡령하는 도적들이 날뛰는 사회를 향해 이영덕 전 총리는 거의 매일같이 ‘도덕성 회복’을 부르짖으며 온갖 자선모임에 참석했고, 한강 다리가 무너지고 가스저장소가 폭발한 폐허 위에 대통령은 ‘세계화’의 깃발을 꽂고 정부 조직을 개편했다. 교회와 사찰들은 인간의 죄업을 참회하는 기도모임을 잇달아 열었고, 대학들은 심성이 황폐해진 청년들에게 〈명심보감〉을 앞세워 도덕성 교육을 강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정부가 세계화의 내용과 방향이 어떤 것인지를 국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한 적은 없다. 국민들은 세계화의 깃발 아래 이제 권력의 주변에서 엄청난 파란이 벌어질 것이며 권세가들의 운명이 바뀌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조짐, 그리고 새해에는 세계화라는 구호를 귀에 못이 막히도록 들어야 한다는 확실한 예감을 지닐 수 있을 뿐이다.

불기소 처분 안에 주저앉은 ‘개혁’
 도덕적으로 우기에 봉착한 사회는 어떠한 목표를 향해서도 전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사회는 이미 생활화한 부도덕과 타락을 확대·심화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김영삼 정부가 내걸었던 정치 목표인 ‘개혁’은 도덕성 회복이나 세계화라는 구호의 내용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개혁과 도덕성 회복과 세계화는 같은 목표를 향한 여러개의 바퀴일 터이다. 정치 권력은 끝없이 인간의 삶의 내용과 지향성을 구호화하고, 그렇게 구호화한 지향성을 다시 성화(聖化)하려는 속성을 갖는다. 정치적 언어가 대체로 뻔뻔스러움을 특징으로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개혁은 과거를 향한 것이며, 도덕성 회복은 이 타락한 현재를 향한 것이며, 세계화란 미래를 향한 또 다른 구호라는 삼분법으로 인간의 역사는 구획되지 않는다. 김영삼 정부의 ‘개혁’은 과거에 저질러진 죄악과 오류들 중에서 현재의 권력에까지 위해를 끼치고 있는 요소들에 국한되고 말았다는 혐의를 받아 마땅하다. 12·12 군사반란자들을 기소하지 않는 정권의 태도가 그 모든 혐의를 명백히 입증한다. 국민들은 ‘군정 종식’을 절규하던 대통령을 선택했고, 대통령이 외치던 군정 종식은 그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영광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군사반란자들을 기소하는 실천에 의하여 역사적으로 매듭지어질 일이었다.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절규함으로써 대통령이 되었지만,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군정 종식을 실천할 수도 절규할 수도 없는 것이다. ‘개혁’의 모든 전망과 의미는 이 불기소 처분의 한계 안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뻔뻔스런 과적 차량들이 질주하도록 방치한 것이 한강 교량 붕괴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듯이 94년의 검찰과 헌법재판소와 대통령은 그들 자신이 엄청나게 무거운 과적 차량이 되어 미래사의 교량 위를 통과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공자도 그가 살던 당대를 타락한 시대라고 믿었다. 〈명심보감〉이든 유불선(儒佛仙)의 그 어떤 경전이든 좋은 ‘말’을 앞세워 도덕성을 회복하자는 주장은 아무리 선한 시대에도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옳은 말이 모자라서 세상이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옳은 말이란 언제나 너무 많고,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저버린 옳은 말의 산더미 속에 묻혀 있다. 지금 모자라는 것은 옳은 실천이고, 실천의 체험이고 그것들의 총화로서의 옳은 역사에 대한 국민적 경험을 공유하는 일이다.

능동적 의지 없이 미래는 새로워지지 않는다
 범죄자들이 무상의 영광을 누리고 또 그 영광과 권세의 그늘 아래서 구축된 질서가 여전히 사법의 정의보다도 더 강력한 시대에 〈명심보감〉을 외우는 청년들의 독경 소리는 또 얼마나 공허하고 쓸쓸할 것인가. 좋은 ‘말’들은 역사의 현실 위에 정착하지 못하고 신기루처럼 흩어져 허공을 떠다니는 것이다. 그런 공허함은 개혁과 도덕성 회복과 세계화를 삼분법으로 분리했을 때의 공허함과 같은 것이고, 그 공허함 위에서 한강 다리는 무너지고 가스 저장소는 폭발하는 것이다.

 세계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직은 명료하게 알 길이 없다. 지하철 객차 안에 붙은 정부의 선전물은 한국 농부가 덴마크 농부를 경쟁 상태로 삼는 자세가 세계화를 지향하는 국민의 태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일은 세계화가 개혁과 도덕성 회복의 연장선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혁파해야 할 죄업들과 청산해야 할 과거를 모두 미래 역사의 몫으로 돌려놓고, 이미 오염시켜 버린 미래를 세계화할 수는 없다.

 과거에 결박되어 있는 운명은 국민이 선택한 문민정부의 가슴 아픈 모습이지만, 국민은 정부가 도마뱀처럼 과거의 꼬리를 잘라서 미래로 던져버리고 세계화로 나아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미래의 시간은 언제나 새로운 것이지만, 그것은 개발되자 않은 가능성일 뿐, 인간의 능동적 의지가 없으면 시간은 새로워지지 않는다. 외인아파트를 철거한 쾌거와, 그 철거의 바탕이 된 각성과 뉘우침을 94년의 교훈으로 삼는다. 새해에, 아파트가 물러간 자리에 수목이 무성하기를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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