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문화로 돌아가자”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1995.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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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ㆍ음악ㆍ학술 ‘동질성 찾기’ 행사 잇따라…대부분 한국인이 주도



 한국과 일본ㆍ중국 등 동북아시아인들이 자신의 문화 적 동질성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ㆍ중ㆍ일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 한 문화공동체가 자기들 내부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한편 무엇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아시아 국가들이 자기네 문화를 아시아라는 지역권 내의 공동체적 문화로 연대하는 국제 행사가 줄을 이은 것은, 아시아가 유럽연합과 북미자유무역협정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권이라는 인식의 확산과, 지난 세기에 아시아를 지배해온 서구 지향성 논리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아시아로 돌아가자는 일본지식인의 움직임과 7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한국의 ‘우리것 찾기’ 문화 운동을 그 배경으로한다. 지난 한 해에만도 서울에서는 문화 예술 각 분야에서 아시아가 연대하는 문화 행사가 많이 생겼는데, 이들은 모두 아시아 지역을 순회하며 열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서구 일변도 벗어나 지역 문화 재창조”
 국제극예술협회가 주관한 제1회 베세토연극제와, 아시아 춤의 원류를 주제로 삼은 제1회 아시아 북춤 심포지엄, 제1회 아시아ㆍ태평양 전통음악 축제 등이 서울에서 잇달아 열렸으며, 지난6월에는 아시아 오케스트라가 창단되었다. 아시아 민족 악기가 모여 악단을 만듦으로써 서울국립극장 대극장에 아시아의 소리가 사상 처음으로 울려퍼진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ㆍ일본ㆍ중국 음악가들이 모여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진 아시아 오케스트라는 한국의 해금ㆍ대금ㆍ아쟁이 일본의 사쿠하치ㆍ샤미센. 중국의 얼후ㆍ비파 등 50여 전통 악기와 어울려 세 나라의 민속악을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연주했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문화예술 행사는 아시아의 민속 악기끼리 서로 만나거나 이웃나라의 민족음악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매우 두드러졌다. 아시아민족악단 창단을 비롯해 한국ㆍ몽골ㆍ일본 전통 악기의 만남을 시도한 유라시안 에코즈의 연주가 열렸으며, 11월에는 아시아ㆍ태평양 민족음악학술대회와 전통음악 축제가 열렸다.

 이 중에서도 아ㆍ태 민족음악 축제 및 학술대회는 ‘아시아 음악을 아시아 고유의 방법론으로 연구하자’는 취지로 아시아 8개국 음악가 2백여명이 서울에 모였는데 단일 행사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었다. 아ㆍ태민족음악학회 세미나에서는 서양 음악 문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는 대한 문제가 깊이 거론되었는데, 중국 쪽에서 “극히 일부의 서양 음악만이 필요할 뿐”이라는 강경론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음악 평론가 송혜진씨는 “지금까지의 동양 음악은 서양인의 이국 취미를 만족시키는 주변 학문”이었다고 전제하면서 “구미 일변도로 형성된 아시아 지역 문화를 재창조하는 바탕이 마련된 셈”이라고 말했다. 일본 음악 집단의 창설자로서 아시아 오케스트라의 공동 단장인 미키 미노루씨 역시 아시아 오케스트라 창단을 ‘아시아인의 동질성 확립’ 에 두고 있다.

 근대화ㆍ서구화 과점에서 부정적 가치로 매도되던 유교가 긍정적 가치로 평가되기 시작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서구와 대립하는 세계가 유교문화를 중심으로 하며 구축될 것이라는 관측이 구체적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움직임의 축은 지난 10월11일 북경에서 창립된 국제유학연합회라 할 수 있다. 세계30개국 유교학자가 참석한 가운데 중국 북경 21세기호텔에서 열린 국제유학연합회의는 유교문화부흥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 행사는 중국 정부가 적극 후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중국정부가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유교문화 부흥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유학연합회의는 이광요 전 싱가포르 총리를 명예이사장으로, 한국의 최근덕 성균관장을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최근덕씨에 따르면,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은 각 나라 대표를 접견하는 자리에서 “유학이

21세기 미래사회를 주도하는 사상이 될것“이라고 말했다. 유학연합회는 곧 북경에 유학연합센터를 건립하여, 이곳을 중심으로 연구기금을 조성하고 <국제유학연합회보> 같은 계간지를 발행하는 등 연구 활동을 펴나갈 계획이다. 최관장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이미 유학센터 건립 부지로 북경 시내에 있는 땅 6천평을 내놓았다고 한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아시아 문화 돌아보기’움직임을 대부분 한국인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창립된 주요 아시아 예술단체들이 모두 서울에서 창립 행사를 가진 것은 물론 한국이 유교 사상 부흥을 앞장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이 앞으로 한자 문화권의 중심적 역할을 맡게 되리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최근덕씨는 “북경유학대회를 결성하기 위한 회의가 한국과 중국에서 모두 네 차례 열렸는데 모두 한국 학자들이 주도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기가 이 대회의 이사장으로 선출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고 있다. 아ㆍ태 민족음악 축제를 개최한 권오성 교수(한양대ㆍ국악)는 “한자 문화권의 전통 음악을 비교ㆍ연구하는 데 한국이 세계 민족 음악 학계를 주도한다는 기대 효과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진정한 세계화는 견고한 지역화 통해서만
 유교적 가치와 서구적 가치의 차이를 강조하는 것은 오늘날 아시아 문화의 본질을 들여다보는데 가장 중요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이광요는 미국 <포린 어페어즈>와의 회견에서 “문화는 숙명”이라고 말해 구미 지식인으로부터 경계의 대상이된 바 있다. 아시아 문화와 구미 문화의 본질적 차이를 강조하면서 개인이 가족의 연장선상에 존재한다는 유교적 질서를 아시아 문화의 뿌리로 보는 이광요 전 총리의 주장은 아시아 지역 국가들로부터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시아 국가의 동질성을 유교 문화의 바탕에서 보거나, 동아시아의 경제다이내미즘을 설명하는 요인으로 유교 문화를 중시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중국의 중화제일주의, 싱가포르ㆍ말레이시아 일대의 유교 전통과 가부장적 질서 재평가, 북한의 조선민족제일주의 등 아시아 지역 간에 구미지향 일변도의 문화에 대응하는 문화 운동이 발화하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우리 사회의 문화적 지표를 어느 곳에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을 번역한 박홍규 교수(영남대ㆍ법학)는 한국의 박사 중 90%가 미국 박사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특히 인문ㆍ사회과학 분야박사들은 대부분 오리엔탈리스트이다”라고 말한다. 이 때의 오리엔탈리즘은 물론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방식이자 지배방식’이다. 그가 보기에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의 지리적 식민지확장주의ㆍ인종차별주의ㆍ자민족 중심주의와 연관돼 대두한 지배 양식이다. 연극 평론가 심정순 교수(숭실대ㆍ영문학)가 “아시아 문화는 어느 의미에서 아프리카 문화보다도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형편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한백연구재단의 아시아포럼 2005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갈등과 경쟁을 통해 발전하는 근대 서구 문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화합과 공생의 아시아라는 신곡을 만들어내야 한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스스로를 아시아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은, 진정한 세계화는 지역화를 통해야 완성된다는 자각을 전제로 한 것이다. ■
金賢淑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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