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섬 덕적도 “돈벼락도 싫다”
  • 경기 덕적도ㆍ김 당 기자 ()
  • 승인 1995.01.0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민들, 핵쓰레기 처분장 ‘굴업도 선정’에 반발…‘정치적 결정’ 도전 받아

정부는 지난 12월22일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 추진위원회(위원장 이홍구 국무총리)와 원자력위원회(위원장 홍재형 부총리)제236차 회의를 잇달아 열어 경기도 웅진군 덕적면 굴업도를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비롯한 핵폐기물 종합관리시설 후보지로 최종 선정했다. 정부는 또 후보지 확정과 함께 덕적도를 중심으로 한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지구 개발계획을 확정해 공고했다. 이로써 그동안 정부의 최대 현안 가운데 하나이던 핵쓰레기 처분장 선정 작업은 88년 12월 원자력위원회가 제221차 회의에서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 중장기계획을 확정한 이래 꼭 6년 만에 일단 매듭을 지은 셈이다.

 이 날 김시중 전 과기처장관의 기자회견 형식으로 발표된 후보지 선정 배경 설명에 따르면, 굴업도가 처분장 터로 선정된 이유는 △균열이 적은 응회암 단일 암체로 구성돼 있는 등 우수한 지질 조건을 갖추고 있고 △수심이 깊어 항만 건설에 유리하며 △다른 지역에 비해 주민들의 시설 유치 의향이 높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유를 근거로 앞으로 굴업도에는 2002년까지 △중ㆍ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영구 처분장 △사용후핵연료 중간 처리장 △2천~3천t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항만 등 관련 시설이 세워진다.

 또 정부의 개발 계획에 따르면, 굴업도와 그 모섬인 덕적도 주변지역은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의 추진 및 시설 주변지역의 지원에 관한 법률’ 과 그 시행령에 의해 파격적 액수의 ‘당근’을 지원받는다. 이를테면 우선 △주민 대표로 구성되는 재단법인을 통해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총 5백억원 규모의 지역발전기금이 조성되고, 이와는 별도로 △시설 건설 기간에 해마다 50억원씩 △시설 운영 기간에는 해마다 30억원씩 지원된다. 건설 기간을 7년으로 잡았을 때 건설 기간중 직접 지원비는 3백50억원이고, 운영 기간을 30~50년으로 잡으면 운영 기간중 직접 지원비는 9백억~1천5백억원 규모이다. 이중 70%는 처분장 터가 속한 덕적면에, 나머지 30%는 인접 면의 몫이다. 한마디로 덕적도 주변이 돈으로 덮이는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배경설명과 개발계획, 파격적인 지원방침에도 불구하고 핵쓰레기장 건설에는 지역주민과 시민ㆍ환경 단체의 반대 및 경제ㆍ기술적 어려움 등이 산적해 있다. 이같은 어려움은 어쩌면 정부가 핵쓰레기장 선정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ㆍ과학기술적 선택 기준을 배제하고 정치적 선택쪽으로 선정 방침을 바꾼 때부터 예정된 것이다.

“굴업도는 최적 후보지 아니다“
 정부는 굴업도를 핵쓰레기장으로 선정한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홍보하고 있으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만한 근거는 별로 없다. 과기처는 91년 12월 한국자원연구소에 의뢰해 전국 2백10개 섬 지역과 2백92개 임해 지역, 90개 폐광 지역에 대해 기술적 타당성 조사를 벌인 결과 이번에 최적 후보지로 선정된 굴업도를 포함한 섬ㆍ폐광지역에 모두 부적격 판정을 내린바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굴업도를 후보지로 선정한 근본적인 배경은 ‘주민의 반대가 없는 곳을 후보지로 정한다’는 정부의 내부 방침만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는 무사안일한 차선의 선택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핵쓰레기장을 선정하는 실무작업을 떠맡은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 기획단’(기획단ㆍ단장 한영성 과기처 차관) 관계자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즉 극심한 지역 이기주의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기획단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굴업도가 후보 지역으로 꼽힌 결정적 배경은 정부의 핵폐기물 관리 방침이 변한 데 있다. 즉 정부는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 중장기계획을 확정한 이래 줄곧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중ㆍ저준위 영구 처분장과 사용후핵연료 중간 저장소)과 연구 시설을 함께 건설한다는 원칙을 고수해 왔으나, 지난해부터 이같은 동일 부지 접근 개념을 재검토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원연구소의 부적격 판정은 동일 부지 기준으로 볼 때는 타당한 결론이었지만, 그때도 굴업도는 처분장만 건설할 경우에는 적당한 곳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나중에 분리 부지 기준으로 재검토했을 때는 후보 지역 10개(임해 지역 7, 섬 지역 3)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그동안 섬 지역에 처분장 터를 선정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원자력위원회에서 분리 부지 체계에 관한 사전 양해를 받아놓았고, 원자력 위원회는 이를 12월22일 제236차 회의에서 정식 의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같은 중요한 정책의 변화가 선정이 확정될 때까지 공개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결과적으로 울진ㆍ 영일은 굴업도를 선정하기 위한 ‘들러리’였다는 비판을 뒷받침해 준다.

 또 정부는 굴업도의 입지(암반)조건이 역학ㆍ구조적으로 안전하고 지하수에 의한 오염 가능성도 없어 기술적으로도 적정하다고 밝히고 있으나. 굴업도에 대한 지질조사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된 바 없다. 한편 주요 선정 배경의 하나인 항만 건설 부분은 그 부근 물속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덕적도 주민들부터가 “믿기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덕적도에서 43년째 고기를 잡아온 천광북씨(57)에 따르면, 굴업도 인근 해역은 바닷물이 세차게 빠지는 사릿발 때면 길이 2백m 쯤이나 등이 보일 정도로 수심이 얕고 암초도 많아 정부가 발표한 2천~3천t급은 커녕 20-30t짜리 어선도 다니기 힘든 곳이다. 따라서 정부 발

표대로 3천t급 접안 시설을 설치하려면 바닷속 땅을 깊이 파고 방파제를 길게 내야 하므로 막대한 건설비를 바다에 쏟아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수송거리 멀어 재앙 부를 수도 
 정부가 굴업도를 핵쓰레기장 후보지로 선정한 것은 육상 수송보다는 해상 수송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런데 주민들이 처분장 설치를 반대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해상 수송의 경제 ㆍ기술적 어려움이다. 일반 쓰레기 처리비용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쓰레기 처리가 점점 광역화하는 데 있다. 따라서 운반비를 줄이려면 발생원으로부터 가까운 곳에서 처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가동되는 원전 9기 중 7기(폐기물 발생량으로 보면 전체의 70%)가 동남 해안에 있고 2기(영광 원전)만 서해안에 위치한 실정에 비추어, 굴업도는 발생원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처분장이어서 해상 수송에 따른 운반 비용이 많이 든다.

 또 수송 거리가 멀면 그만큼 운반 도중 사고가 날 가능성이 많다. 주민들은 특히 태풍 ㆍ해일 같은 예측하기 어려운 재난 사고나 인천항을 드나드는 다른 선박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덕적도는 물론 수도권을 비롯한 서해안 일대가 ‘죽음의 바다’로 바뀔 것을 우려한다. 굴업도 인근 해역은 비교적 파도가 높은 데다가 기상 조건이 나쁠 경우 연구ㆍ기술진의 접근이 어려워 위험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인천에서 덕적도까지는 75.2km이고, 덕적도에서 굴업도까지는 13km이다. 현재 인천~덕적도 배편은 빠른 배(파라다이스호)와 일반 배(코모도호)가 각각 하루 1회씩 왕복 운행한다. 빠른 배는 1시간, 일반 배는 3시간 걸린다. 덕적도~굴업도 배편(새마을 6호)은 격일에 1회 운행하는데, 소요시간은 4시간이다. 그나마 주의보(파고 3~4m 이상)만 발동해도 객선이 뜨지 못할 정도로 결항률이 높다. 덕적도 출신으로 23년째 굴업도에서 산다는 이성근씨(59)는 자기가 처분장 유치 동의서를 낸 첫째 이유도 교통 사정이 좋아지지 않겠느냐 하는 기대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인천에서 6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해상 수송 등 지리적 여건이 좋다는 정부의 발표는 ‘제 논에 물대기’식 설명인 셈이다.

주민 의사 무시한 ‘밀실 행정’
 덕적도 주민들이 반대 주민이 적을 것이라는 정부 예상과 달리 핵쓰레기장 건설을 ‘결사 반대’ 하는 근본적인 배경은 주민 의사를 무시한 비밀 행정에 있다.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 결사반대 덕적면 투쟁위’(투쟁위) 허선규씨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12월2일 <경인일보>가 굴업도를 핵쓰레기장 후보지로 선정했다고 처음 보도했을 때만 해도 아무 말 없다가 12월15일 일부방송이 같은 보도를 하자 다음날 느닷없이 기획단 관계자를 덕적도에 보내 유치 설명회를 갖고 주민들을 설득하려 했을 뿐, 그 전까지 단 한번도 주민 의사를 물은 적이 없으리만큼 정부는 지역 주민을 철저히 무시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당초 계획과는 달리 ‘핵쓰레기 따로, 연구단지 따로’ 건설하기로 한 것도 앞으로 새로운 불씨가 될 전망이다. 허씨는, 지금 당장은 건설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더 커서 문제 삼지 않고 있지만 나중에 공청회 등 주민의견 수렴 과정에서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할 것이라고 밝혀, 정부의 도덕성과 관련해 뜨거운 쟁점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오른쪽 딸린 기사 참조).

투쟁위 “섬 주민 거의 반대” 주장
 정부가 덕적면에 지원키로 약속한 막대한 자금은 지역 발전 및 주민 복지 사업에 쓰인다. 거기에는 덕적도 서포리 국민관광지 개발, 방파제 선착장 건설, 주택 개량 및 생활환경 개선, 의료 시설 설치, 지역 거주 자녀에 대한 학자금 지원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의 정서는 한마디로 돈벼락을 맞아도 핵쓰레기는 싫다는 것이다. 고기잡이와 낚싯배 대여를 생업으로 삼는 장만석씨는 “덕적도를 돈으로 깔아본들 뭐하냐, 발전만 한다고 잘 사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주민들의 정서는 “덕적도의 핵김, 핵게를 누가 사먹겠느냐”는 항변과 ‘서해안 시대 온다더니 핵쓰레기 웬말이냐’ 라는 투쟁구호 속에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이같은 당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반대 의사는 완강하다. 투쟁위에 따르면, 현재까지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에 반대하는 서명을 한 주민 수는 4백30여 명이다. 주민등록상 덕적도 주민 수는 1천3백여 명이나, 이 중 아이들을 제외하고 또 섬 지역 특성상 여름한철을 빼놓고 인천 등지에서 생활하는 유동 인구 4백~5백명을 빼면 서명자 수는 사실상 주민 전체 의견을 반영한다는 것이 투쟁위측 주장이다. 주민 반대가 적은 곳을 선정한다는 정치적 선택이 도전을 받고 있는 셈이다. ■

경기 덕적도ㆍ김 당 기자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