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에 울린 김영삼 개각
  • 안병찬(편집인ㆍ주필) ()
  • 승인 1995.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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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앙텔레비전 제2방송은 한국 개각을 톱뉴스로 보도했다. 이만하게 한국을 보도하는 데서 중국인들의 관심을 짐작한다.”



 서울과 북경 사이의 항공 노선이 처음으로 열리던 날은 김영삼 정부가 조직 개편에 따른 전면 개각을 발표하기 하루 전이었다.

 화북평원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북경은 한냉 고기압 앞에 노출되어 겨울 바람이 세차다. 이 노선을 처녀 비행한 대한항공 651편 탑승객으로 북경의 공항인 ‘수도 국제 기장(機場)’에 닿고 보니, 간밤에 엷게 내린 눈으로 성에가 낀 듯한 겨울 풍경이다.

 누구나 북경이 지척의 땅으로 바짝 다가섰음을 새삼 실감한다. 북경에서 두 시간 거리인 서울 노선은 중국 국제항공공사가 운행하는 35개 국제 노선 가운데 근접성에서 단연 으뜸이다. 폭삭 내려앉은 성수대교 탓으로 교통 체증이 심하여 이동하는 데 세시간씩 걸리는 서울 시내 강북과 강남 사이보다도 가깝다는 은유법이 통할 만한 거리이다.

 북경 노선이 열리던 날 북경 주재 황병태 대사는 수도 국제 기장을 세번 왕래하면서 북경과 서울 사이 ‘통항(通航)’을 기념하는 테이프를 끊었다. 대한항공과 중국국제항공 그리고 아시아나항공 세 편이 이 날 북경-서울 노선에 각각 첫 취항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은 입각후보자로 거명된 황병태 대사한테서 떨어지지 않았다.

2000년 향한 중국의 다짐
 통항 기념일 다음날 점심 시간 직후부터 한국 특파원 13명은 대사관에 집결하여 서울의 개각 발표를 기다렸다. 워싱턴과 일본에서 한국 특파원들이 그런 것처럼 북경 주재 한국 특파원들은 본국의 정치 파도가 중국에까지 밀려와 주중대사가 어떻게 자리를 바꿀까, 궁금증을 품은 채 뉴스를 잡으려고 대기한 것이다. 막상 개각의 뚜껑이 열리고 주중대사 이름이 보이지 않자 당황한 쪽은 특파원들이었고, 당사자인 황대사는 끝내 표정을 드러내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한국 개각에 대한 중국 당국의 공식 반응이 나을 리는 없었다. 다만 비공식적으로 중국측이 한국 대사 향방에 신경을 쓰는 듯하다는 관측은 없지 않았다. 결국 중국측 태도는 중국 중앙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졌다. 개각 하루 뒤인 토요일 밤, 중앙 텔레비전 제2방송은 한국 개각을 머리 뉴스로 보도하면서, 새로 외무부장관이 된 공로명 주일대사를 비추었다. 특히 그가 도쿄의 한국 특파원들에게 둘러싸여 취임 소감을 말하는 장면이 강조되었는데, 이만하게 한국 정정을 보도하는 데서 중국인들의 관심의 크기를 짐작케 된다.

 북경은 지금 2000년을 향한 실천 방침을 구체화하고 있다. ‘2000년 북경을 더욱 아름답게(2000年北京更美好)’라는 구호와 함께 중국 정부는 당원과 공무원의 발상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92년 등소평의 남순강화 이후 당은 ‘개방 확대, 개혁 심화’ 라는 8자 구호를 걸고 당을 향해 찬송가만 부르던 과거의 유산을 빨리 털어내고 더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는 습관을 익히라고 촉구했다.

 성탄 전야 인민대회 당에서 열린 전국당위원회 비서장 및 판공청주임연석회의에서 강택민 당주석과 이붕 총리 등 영도층이 당원과 공무원을 향해 다짐한 9자 방침은 ‘참이야기를 말하라, 실정을 보고하라, 정황을 정확히 파악하라(講眞話, 報實情, 呱落?實)’는 내용이다. 최근 빈발하는 후진국형 대형 사건ㆍ사고 앞에 무기력한 김영삼 정부가 심기일전을 꾀해 서둘러 개각을 했으니 중국 정부의 이런저런 다짐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발해만 해역에 경제권 형성 예상
 지척에 있는 중국은 95년 경제 사업 목표치를 경제 성장 9%, 물가상승 9%의 ‘쌍구(雙九)’로 잡아놓고 있는데, 성장 달성은 무난하겠지만 물가 상충은 10~15%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 시장경제의 가장 두드러진 증상은 소비자 개념 도입과 활성화로도 나타난다. 중국은 10년 전 중국소비자협회를 구성한 후 현 단위 이상에 2천5백80개지부를 두고 2백만건의 소비자 불만을 처리하여, 손실 보상액이 인민폐 8억위안(약 8백억원)에 달한다는 통계다. 사실 중국에서도 소비자가 상제(上帝),즉 하늘로 추앙받는 시대의 문턱에 들어섰다. 백화점은 ‘민간 편의를 위한 서비스(便民服務)’를 내걸어 종업원으로 구성된 공산청년단이 편민복무대를 차려놓고 고객 불만을 처리하고 있다. 소비자 봉사를 중국 사람들은 ‘물을 마시면 원천을 생각하라 (飮水思源)’고 표현하고 있다. 그만큼 중국 시장경제는 거세게 바뀌고 있다. 서울은 북경과 함께 상해ㆍ청도ㆍ심양ㆍ천진ㆍ대련을 모두 합쳐 중국의 여섯 도시와 항공 노선을 개설하여 어떤 외국보다 연결 도시가 많게 되었다. 그만큼 중국을 향한 한국의 국제 경쟁력이 커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위에 바닷길이 있다. 페리 항로는 기존의 천진ㆍ위해ㆍ청도 항로에 더하여 멀지 않아 대련과 연태 항로가 생기면 발해 만 해역이 말 그대로 한ㆍ중 내해로서 경제권을 형성하게 된다. 발해 경제권이 앞으로 황해 경제권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아시아ㆍ태평양 경제권으로 확장되는 계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한ㆍ중 관계 낙관론의 큰 그림이다. 한국의 정치 정세가 북경에 울리는 소리를 통해서도 북경이 서울에서 두 시간 지호간이라는 현실을 깨닫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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